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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137) 연재를 마치며

젊은 시절부터 책을 놓지 않았던 신성일. 2005년부터 2년 동안 옥고를 치르면서 독서로 힘든 시간을 버텼다. 또 108배, 냉수마찰로 건강을 지켰다. [중앙포토]


오늘로 연재를 마친다. 지난 6개월 내 얘기를 들어주신 중앙일보 독자들에 감사 드린다.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전달하려 했다. 사실 사는 게 힘겹더라도 최소한 감방보다 낫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것만도 큰 행복이다. 2005년 2월 24일 밤 11시 40분 대구지방검찰청에서 구속적부심이 떨어지자 교도관이 내게 수갑을 채웠다. 사진기자 7~8명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폭풍인생 신성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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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들, 수갑 찬 것 찍으려고 하지? 이거 찍어봐.”



 나는 수갑 찬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사진기자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25일 새벽 대구구치소로 이동했다. 소지품과 양복을 영치시키고, 청색 구치소복으로 갈아입었다. 나는 독방을 요구했다. 병렬 복도를 한참 걸어갔다. 오른쪽 감방 수감자들이 기웃거리는 걸 느꼈다. 복도에 책꽂이가 있었다. 틱낫한 스님의 『화』를 빼어 들고 맨 끝 골방에 이르렀다. 교도관이 말했다.



 “이 방이 얼마 전까지 문희갑 시장이 있던 곳입니다.”



 엄청나게 추웠다. 구속 첫 날 잠을 자지 못했다. 감방에는 24시간 형광등이 켜져 있다. 교도관이 감시하고, 수인이 자해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다. 스위치도 없고, 형광등이 천장 높이 달려있다.



 물품도 마음대로 살 수 없다. 지급 받은 것 이외의 신발·내의·담요 등은 가족이 매점에서 사서 넣어준다. 담요는 100% 화학섬유 제품이라 먼지가 많이 일었다. 감옥을 온통 뿌옇게 만들었다. 교도관들은 복도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같은 기간 서울교도소에 수감됐던 정대철 의원이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을 보내왔다. 『오체투지』도 인상 깊게 읽었다.



 ‘닭장 버스’로 불리는 호송차를 타고 검사에게 불려갈 때 매우 수치스러웠다. 호송차 창문은 촘촘한 격자 철창으로 덮여 있다. 밖을 구경하기 힘들다. 호송차로 20~30명이 함께 이동한다. 포승줄에 묶이고 수갑을 찬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굴욕이었다. 빨리 교도소에 가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후원금을 받은 것을 두고 검사는 대가성 수의계약으로 결론 내렸다. 구형 8년에 실형 5년이 떨어졌다. 대구구치소 생활 두 달 만에 대구 달성군 화원교도소로 옮겨졌다. 그 곳엔 독방이 없다고 했다. 교도소 측의 배려로 감방 속의 감방이라 할 수 있는 ‘징벌방’에 들어갔다. 화원교도소에선 헤비메탈 같은 뽕짝이 귀가 찢어지게 울려 퍼졌다. 완전히 미칠 것만 같았다. 정상이던 혈압이 185~187까지 올라갔다. 이후 병사(病舍)로 옮겨갔다. 지금까지 혈압약을 먹고 있다.



 2006년 봄 의정부교도소 독방(1.31평)에 들어갔다. 교도소장이 벽에 3단 책꽂이를 달아주었다. 황석영의 『장길산』, 이문열의 『삼국지』 등을 미친 듯이 읽었다. 매일 아침 108배, 『반야심경』 260자 쓰기, 냉수 마찰로 건강을 지켰다. 원예반에서 국화도 길렀다.



밖에서 구명운동이 벌어졌다. 열린우리당 의원 대부분이 서명해주었고, 동부이촌동 주민, 해외동포도 힘을 모았다. 특히 엄앵란의 노고가 대단했다. 구속 2년 만인 2007년 2월 21일 특별사면을 받고 출감했다. 교도소 정문을 나서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한마디 해달라고 했다.



 “공짜밥 잘 먹었소. 법무부 장관 고맙소.” <끝>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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