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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공인 우대

조선은 임진·병자호란을 겪고도 문신 위주의 정치 관념을 바꾸지 않았다. 이를 답답하게 여긴 효종은 재위 3년(1652) 5월 “옛사람이 ‘밭갈이는 남종에게 묻고 길쌈은 여종에게 물으라’고 했다”며 “우리나라는 비국(備局 : 비변사)의 낭청(郎廳 : 실무자)을 뽑을 때도 힘있는 자를 뽑지 않고, 단지 글자나 아는 서생(書生)을 뽑는다”고 비판했다.

 옛사람이란 공자로서 『논어(論語)』「자로(子路)」편에는 번지(樊遲)가 “농사일을 가르쳐달라〔請學稼〕”고 청하자 공자는 “내가 농사일은 늙은 농부만 못하다〔吾不如老農〕”고 사양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조선이 일본에 뒤떨어지게 된 계기도 공인(工人)을 비롯한 생산자 천시(賤視)에 있었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 사람들의 귀국 의지는 신분에 따라 달랐다. 양반 사대부 출신들은 귀국하고 싶어 했다. 남용익(南龍翼)이 효종 6년(1655) 일본에 갔다 와서 기록한 『부상록(扶桑錄)』의「문견별록(聞見別錄)」에는 일본에서 문사(文士)로 활약하던 전주(全州)가 본관인 이전직(李全直)이 등장한다. 그의 부친 이진영(李眞榮)은 경상도 영산(靈山) 출신이고, 조부 이공제(李公濟)는 성균진사를 역임한 양반이었다. 이전직은 부친이 병오년(선조 39년: 1606) 포로들이 귀국할 때 귀국하지 못한 것을 ‘불행(不幸)’이라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러나 인조(仁祖) 2년(1624) 회답부사(回答副使)로 갔던 강홍중(姜弘重)의 『동사록(東?錄)』에는 막부(幕府)에서 귀국을 허용해도 거부하는 조선 사람이 많았다고 전한다. 그중 이문장(李文長)은 “조선의 법이 일본만 못하고 생계도 심히 어려워 살 수 없기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조금도 이익이 없다”고 귀국 거부를 선동했다. 일본은 조선 출신 도공(陶工)들을 비롯한 공인들을 크게 우대했다. 반면에 조선은 감언이설로 귀국을 종용하다가 막상 귀국하면 과거처럼 천시했다. 이것이 소문 나자 백성들의 귀국 거부가 잇따랐다.

 말로는 북벌(北伐)을 외치면서도 무사는 천시하고, 전문 기술자 선발 시험은 잡과(雜科)로 천시했던 나라의 국세(國勢)가 부진했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부와 경제단체들이 고졸 채용을 늘리기 위한 업무협약(MOU)를 체결했다는 소식이다. 근래 대학은 배우는 것도 없는데 등록금만 비싸다는 비판을 받는다. 졸업장이 아니라 기술 있는 공인(工人)을 우대하면 고질적인 교육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된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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