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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차라리 뒷북이라도 울려라

예영준
중앙SUNDAY 차장
며칠 전 한 후배로부터 들은 얘기다. 결혼 날짜를 받아둔 예비 신랑을 축하하기 위해 고교 동창생 아홉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장밋빛 꿈에 부풀어 있어야 할 예비 신랑은 의외로 풀이 죽어 있었다. 가정을 꾸리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그는 녹록지 않은 현실의 벽에 부닥쳐야 했다. 30대 초반의 5년차 공인회계사인 그가 모아둔 결혼자금은 1억8000만원. 교통 편한 곳에 전셋집 한 칸이라도 얻고자 서울 강북을 샅샅이 누볐지만 결론은 이랬다. “갈 곳이 없더라.”



 비슷한 탄식들이 나머지 친구들의 입에서도 터져나왔다. 신혼생활을 원룸 오피스텔에서 시작했다는 친구도 더러 있었다. 참석자 모두 학창시절 한눈팔지 않았고 세칭 명문 대학을 나와 남들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간 지 5~6년씩 됐지만 전셋집 한 칸 구할 형편이 안 된다는 것이다. 번듯한 직장을 가진 젊은이들도 이러할진대 그렇지 못한 사람, 대학 졸업과 동시에 기약 없는 비정규직 인생으로 내몰린 이른바 ‘88만원 세대’의 분노와 좌절은 오죽하랴는 생각도 들었다. 나를 포함한 40대들은 직장생활 10년이면 어렵지 않게 ‘내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동창생들의 화제는 코앞으로 다가온 10·26 재·보궐 선거 얘기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그들에게 나경원이냐 박원순이냐의 선택은 처음부터 무의미했다. 오직 하나, 박원순이 과연 잘 해낼 것인가 여부에 의견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그들이 박원순을 선택한 건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었다. 4년 전 대선에선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던 사람들이고 한나라당 표밭인 영남의 고교 동창생들인데도 한나라당은 버림받고 있었던 것이다.



 후배에게 물었다. 이런 현상이 한나라당만의 책임일까, 소위 진보정권 10년 동안에도 심화돼 온 문제 아닌가. “맞는 말씀, 만약 박원순이 민주당이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겁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젊은이들이 대안을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안철수든 누구든 간에….” 그러면서 반문했다. “선거는 시작 전부터 결판이 나 있었는데 언론만 몰랐던 것 아닙니까. 이제야 2040세대의 좌절에 관한 기사를 쏟아내는 걸 보면 뒷북이란 생각도 듭니다.”



 과연 언론만 몰랐을까. 지난주 한나라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위해 수없이 전화를 걸었다. 누가 휴대전화 컬러링(통화대기음악)으로 애국가를 띄웠고, 누가 걸그룹의 최신가요를 골랐는지 외울 지경이 됐다. 제법 많은 의원과 선거 결과를 놓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중 젊은 세대들의 분노와 좌절을 한나라당의 패인(敗因)으로 짚은 사람은 딱 한 명, 초선의 L 의원밖에 없었다. 그보다는 친이·친박 입장에 따라 주판알을 퉁기거나 내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펼쳐질 당내 세력 싸움에 더 관심이 많았다. 선거 전은 물론 선거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바닥 민심에는 눈과 귀를 돌리고 있다는 얘기다. 뒷북조차 못 울리는 집권 여당, 새삼 L의원이 딱하게 느껴졌다.



예영준 중앙SUNDAY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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