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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안철수, 정치판에 나서라

김진국
논설실장
박원순 서울시장은 출마를 오래 준비했다. 7월 19일 백두대간 종주에 나서면서 하산(下山) 이벤트로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하려는 계획까지 세웠다. 산을 내려오기 직전까지도 회견 날짜를 조율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토요일인 9월 10일 돌아오려 했다고 한다. 그러다 일요일자 신문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당황했다.

 지리산 사정과 안철수 원장 변수로 박 시장은 5일 앞당겨 귀경했다. 다음 날인 목요일 안 원장과 함께 후보 단일화 기자회견을 할 수 있었다. 미디어 활용능력을 봐도 박 시장은 아마추어, 안 원장은 프로라는 인상을 준다. 박 시장은 신문 발행일도 고려하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1주일도 안 되는 시간에 엄청난 바람을 일으키고 사퇴해 버린 것이나, 박 시장에 대한 지원을 미루며 호기심을 극대화한 뒤 선거 이틀 전 편지를 전달하며 힘을 실어준 안 원장의 선택은 절묘했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이 “프로 중의 프로 같다”고 평가할 만했다.

 박 시장도, 안철수 원장이 평소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 깜짝 놀랐다고 측근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단일화 협상을 위해 만나보니 안 원장이 준비를 굉장히 많이 했고, 내년 대통령 선거에 반드시 나올 것 같더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안 원장의 멘토였던 윤여준 전 의원이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과도 일치한다. 이런 전망이 아니라도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야권에서 안 원장을 빼놓고 대선 후보를 논의하기는 어렵게 됐다. 그런데도 안 원장은 아직 “학교 일 하기도 벅차다”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정치인 같은 말만 하고 있다.

 ‘나꼼수’의 김어준씨 어법으로는 ‘재수 없을 수, 있는’ 처신이다. 김씨는 『닥치고 정치』란 책에서 조국 서울대 교수가 정치에 참여한 자신의 모습을 ‘아직’ 상상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 데 대해 “자신의 마음을 마치 3인칭 관찰자처럼 묘사하는, 우아한 객관적 기술의 정점에 있는 표현”이라고 꼬집었다. 정치를 하면 한다, 안 하면 안 한다고 하면 되지 누릴 것은 다 누리고 우아한 포지션도 잃지 않겠다는 것은 ‘재수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안 원장은 지도자가 될 굉장히 좋은 이미지와 업적, 품성을 갖고 있다. 박 시장에게 편지를 전한 것처럼 출마를 선언할 가장 효과적인 시점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지금 서둘러도 이르지 않다.

 정치권에 새로운 인물들이 참여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유권자 입장에선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다른 분야에서 좋은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반드시 좋은 정치인이 되는 건 아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이슈는 나경원 후보의 ‘1억원 마사지’다. 나 후보를 귀족 이미지, 반(反)서민 성향으로 낙인찍었다. 그런데도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여태껏가려지지 않았다. 박 시장과 관련한 의혹도 마찬가지다. ‘진실’은 없고 ‘이미지’만 남는다. SNS의 전파 속도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선거가 깜짝쇼가 돼버릴 수 있다. 검증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정치인으로서의 품성을 평가하기 위해선 더욱 그렇다. 본인들이야 신비주의로 버티고 싶겠지만 유권자는 아니다.

 정책을 준비할 시간은 더 부족하다. 나라 살림이건, 자치단체의 살림이건 이미지로만 꾸려갈 순 없다. 비전과 구체적 정책이 있어야 한다. 혼자 만드는 것도 아니다. 정당을 새로 만들건, 기존 정당에 들어가건 정당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여론의 검증을 받고, 다른 경쟁자와의 정책대결을 거쳐야 집행단계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정책은 현실에 발을 디뎌야 한다. FTA 같은 당장의 국가적 현안에 입을 다물고 있다가 선거 때 갑자기 남을 비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정치 지도자가 논평가와 다른 건 사명감과 책임감이다.

 주변 인물은 더욱 중요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초 스스로 386의 ‘개혁 도구’라고 말했다. 국정 개혁의 주체가 대통령이 아니라 주변 측근이란 말이다. 그만큼 주변 인물의 성향이 중요하다. 박 시장의 자문조직은 당선된 뒤에야 드러났다. 대중적으로는 매우 낯선 인물들이다. 그들을 검증할 시간은 전혀 없었다. 대통령 후보는 그래서는 안 된다. 안 원장에게는 이미 상당한 정도의 자문세력이 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안 원장이 내년 대선에 나설 생각이라면 지금도 늦었다. 아직 망설인다면 그 결단을 서둘러야 한다. 눈치만 보다 뻐꾸기처럼 남의 둥지에 밀고 들어가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비상식’의 기존 정치판을 뒤집어엎어 새로 짤 생각이라면 시간이 더욱 부족하다.

김진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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