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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석이 무조건 찾겠다, 1년·2년·20년 걸리든 …”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박영석 대장과 신동민·강기석 대원의 분향소에서 1일 한 조문객이 조의를 표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1일 오전 1시, 고 박영석(48·골드윈코리아) 대장의 영정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1층 입국 게이트 앞의 분위기는 침통했다. 이인정(66) 대한산악연맹 회장도 함께 귀국했다. 이 회장의 결연한 목소리가 침묵을 깼다.

 “(고 박영석 대장의 시신을) 무조건 찾는다. 1년이든 2년이든 20년이든 (빙하에서) 보일 때까지 찾겠다.”

 수색은 박 대장을 기리는 의미에서 안나푸르나 등반과 함께 진행될 계획이다. 이 회장은 “범산악인 팀을 꾸리겠다”고 했다. 산악계에서는 “박영석의 탐험 인생은 동국대 산악부에서 시작됐으니 그쪽에 기회를 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데 의견이 모이고 있다. 시기는 미정이지만 엄홍길 대장은 “몬순이 오기 전에 가급적이면 이른 봄이 좋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박 대장 일행 수색은 일본의 산악 영웅 우에무라 나오미(1984년 실종) 수색 사례를 참고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매킨리(6194m)에서 등반 중 실종된 우에무라를 찾기 위해 수색 팀을 여러 차례 꾸렸다. 그의 모교인 메이지대학이 주축이 됐다. 2006년에는 NHK가 나서기도 했다. 그는 세계 최초의 5대륙 최고봉 등정자다.

 공항에는 노장 산악인들도 모였다. 77년 에베레스트 원정대, 91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원 등이다. 이명수(67)씨는 “영석이는 산사나이 중 산사나이였다”고 했다. 정우섭(64)씨는 “영석이와 함께 등반하던 시절이 그립다”고 했다. 고 고상돈(당시 29세) 대원을 정상에 올린 ‘77에베레스트원정대’는 귀국 후 영웅 대접을 받았다.

 산악계는 박 대장 일행의 실종을 계기로 똘똘 뭉쳤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현장을 지휘한 대한산악연맹 김재봉(54) 전무는 “(박 대장을 구조하기 위해) 다투어 네팔로 가겠다는 선후배들의 성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산악인의 의리는 죽지 않았다”고 했다. 수색 활동에는 내로라하는 국내 산악 인이 대거 참여했다. 현장에 가지 못한 엄홍길(51)·오은선(45) 대장은 안타까운 마음을 본지에 전했다.

 고 박영석 대장은 국내 산악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박 대장과 엄홍길 대장의 활약은 젊은 산악인들을 자극했다. 남선우(56) 한국등산연구소장은 “10년 전에 비해 등산학교가 두 배 늘었다”고 했다. 또 “저변이 늘어난 만큼 개성과 자유를 표출하기 위해 히말라야 고산을 찾는 등반가가 늘었다”고 덧붙였다. 실력 또한 우수하다. 이인정 회장은 “한국 등반가는 히말라야 베이스캠프 어딜 가나 어깨를 펴고 다닐 만큼 세계적으로 실력과 강인함을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글=김영주·홍지연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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