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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3일 서울대병원서 ‘산악인장’

30일 안나푸르나 위령제에서 박영석 대장 영전에 술잔을 올리는 아들 성우(21·왼쪽)씨와 이한구 대원.
박영석(48·골드윈코리아) 대장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열흘 동안이나 수색했지만 그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코리안신루트를 목표로 안나푸르나 남벽에 도전한 박 대장은 지난 18일 “상황이 어렵다”는 교신 이후 연락이 끊겼다. 함께 등반한 신동민(37·영원무역)·강기석(33·골드윈코리아) 대원도 안나푸르나 남벽 빙하에 남겨졌다. 대한산악연맹은 29일 “수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30일 오전, 안나푸르나 남벽 해발 4800m 베이스캠프에서는 실종된 박 대장 일행을 추모하는 위령제가 열렸다. 대한산악연맹 이인정(66) 회장과 카트만두에 대기 중인 가족들은 이날 오전 7시(현지시간) 헬기를 이용해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위령제는 침통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지난 11일 정상 공격을 앞두고 무사 귀환을 바라며 라마제를 지냈던 초르텐(티베트 불교의 탑) 앞에서 돌아오지 못한 대원들의 넋을 기렸다. 영결식은 다음 달 3일 서울대병원에서 ‘산악인장(葬)’으로 치러진다.

신동민 대원(左), 강기석 대원(右)
 박 대장 일행을 찾기 위한 구조 노력은 이례적일 정도로 대규모로 이뤄졌다. 사고 소식 뒤 곧바로 셰르파 네 명이 현장에 급파됐으며, 국내 산악인들도 속속 달려갔다. 유학재(50)·김형일(43)·김재수(50)·김창호(42)·진재창(45)·강성규(44)·구은수(41) 등 내로라하는 국내 산악인 10여 명이 안나푸르나로 달려갔다. 특히 2차 구조대는 “장갑 한 짝이라도 찾겠다”며 빙하 내부를 샅샅이 뒤졌다.

 박영석은 불굴의 산악인이었다. 숱하게 실패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박 대장은 이번 안나푸르나를 포함해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를 37번 시도했다. 그중 21번이나 고배를 마셔야 했다. 특히 1991년 에베레스트에서 추락해 안면이 함몰되는 부상을 입고도 6개월 뒤 재도전했다. 93년 마침내 정상을 밟았다. 이후 2001년 K2(8611m) 등정을 끝으로 8000m 14개 봉우리를 모두 올랐다. 그래도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2005년엔 북극점에 도달해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산악인 김창호씨는 “박 대장은 무릎 연골이 다 닳도록 탐험을 멈추지 않았던 진정한 모험가였다”고 했다.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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