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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영석은 세계 탐험계의 스티브 잡스였다

조국의 산하는 단풍에 덮였는데 ‘국민 산악인’ 박영석은 이역만리 눈에 묻혔다. 한국 산악의 미래를 이을 신동민·강기석 대원도 같이 묻혔다. 18일 전 3인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8091m) 남벽 신(新)루트를 개척하던 중 눈사태를 만나 실종됐다. 가족과 대한산악연맹 구조대는 이들이 사망했다고 단정하고 어제 현지에서 위령제를 지냈다.

 박영석은 도전과 기록의 사나이다. 그는 히말라야 8000m급 14좌에 올랐다. 세계 7대륙 최고봉도 등정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남극점에 이어 2005년 북극점에 도달했다. 세계 최초로 ‘탐험 그랜드 슬램(14좌+7대륙+남·북극)’을 이룬 것이다. 그러고서도 그는 히말라야에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겠다며 나섰다. 한국 산악인 후배들을 위해 ‘히말라야의 길’을 열겠다는 것이었다.

 1953년 세계 최초로 힐러리 경이 에베레스트를 등정했다. 그 후 박영석만큼 탐험의 지평선을 넓힌 이는 없다. 그는 세계 산악계의 스티브 잡스였다. 세계는 얼마 전 잡스를 잃었고 이제 박영석이라는 또 다른 천재를 떠나보낸 것이다. 세계인의 슬픔이다.

 고산(高山)만큼 위험과 솔직하게 만나는 곳은 없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히말라야는 눈사태와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진 틈), 돌연변이 날씨가 도전자들을 위협한다. 그런데도 박영석은 동네 뒷산처럼 그곳을 찾았다. 그는 평소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지금 세계의 젊은이들은 갈수록 팍팍해지는 인간사에 좌절하고 분노하고 있다. 그들에게 박영석의 도전은 위로와 격려 그리고 용기가 될 것이다.

 한국의 산악인들은 실종된 산악 영웅들을 찾으려고 매우 위험한 구조활동을 벌였다. 본국의 구조대가 직접 나서고 이렇게 오랫동안 구조를 포기하지 않은 사례는 드물 것이다. 고소증, 눈사태, 산사태, 크레바스… 이런 것들도 산악인의 우정을 막지는 못했다. 그들은 ‘1% 가능성’이라는 박영석의 목소리를 기억한 것이다.

 도전과 실종 그리고 수색. 박영석은 마지막 드라마를 보여주고 히말라야의 품에 안겼다. 히말라야여, 그의 영혼을 거두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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