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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시와 소설이 읽혀야 하는 이유

신준봉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출판가에 스티브 잡스의 바람이 거세다. 그의 자서전 『스티브 잡스』 말이다. ‘거센 바람’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태풍 수준이다. 좀처럼 깨지지 않을 것 같던 『해리 포터』의 종전 일일판매량 최고기록(3500부)을 지난주 발매 첫날에 가볍게 갈아치웠다(4700부). 열혈 팬들에게만 사랑받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아이들과 함께 서점을 찾는 주부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자식에게 읽혀 잡스처럼 괴짜여도 화려한 각광을 받는 천재로 키우고 싶은 모성이 발동한 것일까. 어쨌든 자서전 『스티브 잡스』는 ‘애플 TV’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의 최고의 ‘유작(遺作)’ 자리를 지킬 것 같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죽은 잡스가 태평양 건너 정보기술(IT) 강국 한국의 출판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잠깐 훑어봤을 뿐이지만 『스티브 잡스』는 매력적인 책이다. 무엇보다 부하 직원들을 사정없이 짓밟은 일화들이 인상 깊다. 견디다 못한 직원들은 해마다 잡스에게 가장 용감하게 맞섰던 직원을 뽑아 상을 주기도 했단다. 살아남기 위한 부하 직원들의 응전을 지켜보며 일종의 처세서 같은 재미도 느꼈다.

 『스티브 잡스』를 뒤적이다 책상 위에 놓인 시·소설책에 눈길이 갔다. 착잡하다. 잡스가 호령하는 세상에 누가 시·소설을 볼 것인가?

 얼마 전 시인 A와 나눈 대화는 더 우울했다. 40대 중반인 그는 1990년대 후반에 등단했다. 10년 넘게 시를 쓰고 있고,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리는 진정성 있는 시편들로 적지 않은 사랑도 받고 있다. 그런 그가 점치는 ‘시의 미래’는 뜻밖에도 암울했다.

 “시의 역할이나 위상은 앞으로 현저하게 약해질 겁니다. 아마 소수만 관여하는 전문적인 영역이 될지 모르겠어요. 물론 마음의 안정을 얻거나 인간 내면의 모습을 확인하려는 이들이 시를 찾긴 하겠죠. 하지만 언젠가는 아무런 실제적 효용이 없는 일도 인간은 할 수 있다는 하나의 표지로 시가 전락할 수 있다고 봐요.”

 A의 이런 진단은 설득력 있다. 체감한 결과일 테니 말이다. 물론 그가 조만간 시를 그만두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인생은 살 만한 것인지, 세상은 살 만한 곳인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시에서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도 굳세게.

 충성스러운 문학 독자들에게 응원이 될 만한 글을 찾아봤다. 평론가 김우창의 산문집 『시인의 보석』에 실린 ‘문학의 즐거움과 쓰임’이라는 글이 눈에 띈다. 김씨에 따르면 인간의 내면은 “온갖 무정형적 충동과 소망과 정서”가 서린 혼란스러운 공간이다. 한데 사람들은 문학작품을 읽으며 혼란스러운 내면에 질서를 부여하고 자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즐거움도 따른다. 그래서 문학은 재미있으면서도 의미 있는 읽을거리다.

 혹시 잡스에게 혼쭐난 직원 중에도 그런 이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시와 소설을 읽으며 위안을 받고 자신을 돌아본 경우 말이다.

신준봉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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