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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벽화든, 비디오아트든 예술은 눈물을 먹고 큰다”

서울 소격동서 25일 만난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는 “태어나고 죽고 하는 인생사 모두가 중요하지만 자식들에게 살아온 지식을 전수해 주면서 삶이 이어진다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우리 모두는그렇게 서로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왼쪽 작품은 ‘아버지와 딸’(2008).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예술가는 사람들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60)가 자주 언급한 단어는 ‘눈물’이었다. 3년 전 인터뷰 때도 “예술가의 임무는 세상의 독성, 부정적 에너지를 제거해 좀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비올라의 장기는 물과 불의 이미지를 통해 삶과 죽음이라는 철학적 화두를 풀어내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해 그의 작품 ‘트리스탄의 승천’ ‘불의 여인’ 두 점을 소장했다. 각각 바위에 누워 있던 남자가 떨어지는 물방울을 맞으며 하늘로 올라가고, 불바다 앞으로 한 여인이 천천히 넘어지는 이미지다.

비올라는 24일 서울 소격동 기무사 터에 공사 중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현장에서 배순훈 미술관장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서울관에 그의 두 작품을 영구 설치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다음 날 본지가 그를 단독으로 만났다. 그는 이에 앞선 19일 일본에서 일본예술가협회가 선정하는 프리미엄 임페리얼 예술상을 받았다. 영국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 일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 등과 함께다.

 -수상을 축하한다. 상금 1500만엔(약 2억1800만원)은 어떻게 쓸 참인가.

 "일부는 동일본 대지진 성금으로 기탁할 예정이다. 이번 일본 방문길에 참사 현장에 갔다. 자연이 이렇게 끔찍한 짓을 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너무 슬퍼 눈물이 났다.”

 -환갑이 됐다. 공자는 나이 60을 ‘이순(耳順)’이라고 불렀다.

 "하하하, 최상의 상태다. 내 작품의 다음 국면을 구상할 에너지로 충만하다. 나는 작품을 통해 젊은이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 자연 재해, 금융 위기, 질병 등 문제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여러 종교는 자기들이 어떻게 다른가만 얘기하고 있는데, 그보다는 같은 점이 뭔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 구세대들이 저질러놓은 많은 잘못으로 젊은이들이 힘들 수 있다. 그러나 숲에 큰 나무가 넘어지면 그 자리에 비로소 햇빛이 비치면서 어린 잡초들이 처음으로 빛을 맛볼 수 있다. 젊은이에게 강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얘기한다. 우리에겐 젊은 예술가들의 창의력이 필요하다고. 그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테니까.”

 비올라는 젊어서 선불교에 심취했다. 1980년 일본에서 18개월간 지내면서 화가이자 선승(禪僧)인 다이엔 다나카와 교류하기도 했다. 이날도 팔에 염주를 걸고 나타났다.

 -선불교의 영향, 절제된 화면으로 본질을 꿰뚫는 메시지를 던져왔다. 최근 타계한 스티브 잡스가 생각난다.

 “잡스와 나를 비교하는 건 좀 그렇다. 우리 시대 예술가들에겐 대단한 기회, 정확한 모멘트가 있었다. 새로운 미디어를 가지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다. 1970년을 전후해 비디오가 보급됐을 때 아마 전세계 100여 명 정도나 이걸로 예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거다. 40년 후인 지금은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매체가 됐다.”

 -카메라는 보이는 것만 찍는데, 당신 작품에는 인간의 내면이 변하는 그 보이지 않는 순간이 담겨 있다.

 “(손가락 두 개를 꼽으며)예술과 기술, 이 두 가지의 공존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역사 이전의 사람들도 동굴에서 망치로 쪼거나 물감을 찍어 그림을 그렸다. 변하지 않는 것은,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늘 추구해 온 내용은 인간의 조건, 우리의 기원 같은 문제다.”

 -스토리도 없이 이미지와 음향뿐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당신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간 가까운 이들을 떠올렸다는 사람도 있다.

 “한반도도 그렇지만 전세계에선 나쁜 이들이 벌어진다.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울 수 없는 이들이다. 느끼지 못하니까 그럴 것이다. 우는 것은 일종의 우주적인 표현이다. 우린 슬플 때만 우는 게 아니다. 갓 태어난 아기도 울고,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본 사람도 운다. 예술가는 사람들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백남준
 그는 70년대 미국에서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인 백남준의 조수로 일했다. 백남준은 74년 뉴욕주 시러큐스의 에버슨 미술관 전관에서 ‘TV부처’‘TV정원’ 등을 전시했다.

 -백남준과 추억이 많겠다.

 “에버슨 미술관에선 1주일 내내 밤낮없이 작품 설치를 한 뒤 마지막으로 ‘TV정원’을 손봤다. 온 미술관 바닥에 풀숲을 만들고, 그 중간중간 TV 모니터를 놓았다. 대규모 작업이라 새벽 4시에야 완성됐다. 백남준의 제안으로 모두들 미술관 발코니에 올라가 이 작품을 내려다보기로 했다. 거기서 문득 천장을 올려다보니 종일 내리던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달이 나와 있었다. 나는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봐요 남준, 달이 나왔어요’ 했다. 그는 달을 가리키며 ‘저게 고급 예술(high art)이야, 내 것은 저급 예술(low art)이지’라고 말했다.”

글=권근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빌 비올라(Bill Viola)= 1951년 미국 뉴욕 태생의 비디오 아티스트. 뉴욕주 시러큐스 대학교 졸업. 비디오 아트 1세대.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대표 작가로 전시했다. 97년 미국 휘트니 미술관에서 중간 회고전을 열었고, 이 전시는 4년간 미국과 유럽의 6개 미술관을 순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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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