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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백두산 호랑이

호랑이에게 잡혀 먹은 영혼을 창귀(<5000>鬼)라고 한다. 『사물이명록(事物異名錄)』 ‘신이 호상귀(神鬼虎傷鬼)’편에 따르면 창귀는 호랑이의 사역을 받으며 그 앞잡이 노릇을 한다고 전한다. 호랑이에게 잡혀 먹는 호환(虎患)이란 말도 있지만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아주 가깝게 여겼다. 한국 사찰의 산신각(山神閣)은 단군(檀君) 할아버지가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는 곳이다. 그 이유에 대해 고려 인종 원년(1123년) 사신으로 온 송나라 서긍(徐兢)은 『고려도경(高麗圖經)』 ‘화상도(和尙島)’조에서 설명한다. “화상도의 산속에는 호랑이〔虎狼〕가 많다. 옛날 불자(佛者)가 거기 살았는데 짐승이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면서 호랑이가 불자 수호 역할을 했다고 전한다. 3세기 무렵의 기록인 『위서(魏書)』 ‘물길국(勿吉國)열전’에는 “도태산(徒太山 : 현재의 백두산)은 위나라 말로는 대백산〔大白〕이라고 한다”면서 “산에는 호랑이·표범·곰·이리〔虎豹?狼〕가 있는데 사람을 해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7세기 무렵의 『북사(北史)』 『물길(勿吉) 열전』에는 “그곳 풍속에 이 산(백두산)을 심히 경외(敬畏)해서 산꼭대기에서는 오줌을 누어 더럽히지 않고 산에 오른 자는 오물을 거두어 갔다”면서 “산 위에는 곰·범·이리(熊?豹狼)가 있는데, 모두 사람을 해치지 않고, 사람도 감히 죽이지 않는다”고 달리 전한다.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북사』 기록은 동이족(東夷族)이 호랑이를 친근하게 여기는 정서를 말해준다. 곰과 범이 사람이 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단군사화(檀君史話)의 원형도 여기 있다. 백두산에 올랐다가 들렀던 이도백하(二道白河)의 한 식당에서 호랑이 뼈로 담갔다는 호골주(虎骨酒)를 팔고 있었다. 어디에서 났느냐고 물어 보니 근처 동물원에서 죽은 호랑이 경매할 때 샀다고 대답한다.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그날 술이 취하지 않은 것을 보면 진짜였던 것 같다.

 흑룡강성 밀산(密山)시의 한 저수지에서 발견된 호랑이 사체가 사냥용 덫에 걸린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보도다. 왠지 필자도 그 덫을 놓은 데 가담한 것 같아서 뒤늦게 꺼림칙한 생각이 들지만 아직도 백두산에는 진짜 호랑이가 있다는 생각에 반갑다. 엔도 기미오(遠藤公男)는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라는 책에서 일제 당국이 조직적으로 호랑이를 말살시켰다고 전하고 있다. 진짜 백두산 호랑이 보존 방법을 고민할 때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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