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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서명’ 상표화 법원서 제동, 제임스 딘 상표는 허락

파블로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
1973년 93세로 세상을 떠난 스페인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는 살아 있을 때 이미 20세기 최고의 작가로 온갖 찬사를 받았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 살면서 쏟아져 들어오는 엄청난 수입으로 온갖 사치를 누렸다. 그는 가난한 화가였던 젊었을 때부터 홍등가를 누볐으며 작고하기 얼마 전까지도 많은 젊은 여자와 스캔들을 일으키며 세계적인 바람둥이로 명성(?)을 떨쳤다. 심지어 나이 들어서도 자기보다 40여 년이나 어린 소녀들과도 성적 관계를 맺는 등 지금 기준으로 봐도 상당히 지나칠 정도로 자유롭게 살았다.

그는 일찍 스페인을 떠나 파리에서 활동했는데, 스페인 내전 중에 독일 공군이 자행한 양민 학살을 비난하기 위해 37년 ‘게르니카’를 제작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나치는 이른바 ‘퇴폐’미술을 혹독하게 탄압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퇴폐미술의 대가이자 게르니카의 작가인 피카소는 나치 점령군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나치의 보호 아래 미술에만 몰두하던 피카소는 나치가 연합군에 쫓겨나자 나치 부역자라는 비난을 받게 됐다. 그러자 그는 이번에는 느닷없이 공산당에 가입해 소련 정부의 보호 아래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그 후 그는 평생토록 공산당 당원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도 소련을 찬양해 62년에는 소련 정부로부터 레닌 평화훈장을 받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그가 공산당 당원으로 특별히 적극적인 행동을 한 것은 아니며 또 사치스럽고 방종한 자신의 사생활도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1년 게르니카에 필적할 만한 정치적 그림을 하나 더 그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분명하게 보여 줬다. 그것은 마치 프란시스코 고야의 ‘1814년 5월 3일’을 연상시키는 ‘한국에서의 학살’이었다.

이 그림은 한국에서 일어났다는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고발한 작품이지만 정치적 프로파간다 성격이 너무나 진해 어쩐지 프랑스 소설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연상시킨다. 어릴 때 우리는 이 소설을 교과서에서 읽으면서 감동받았었지만 사실은 프랑스가 빼앗은 남의 땅에서 그동안 주민들에게 강제로 실시해 온 프랑스어 교육을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것을 상당히 왜곡한 소설이라고 한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그 당시에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으며 지금까지 한국전쟁에 대해 왜곡된 인상을 주고 있다. 피카소는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우리나라에 오지 않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한참 뒤인 97년 피카소 유족들이 피카소의 이름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일어났다. 생전에 피카소가 자주 쓰던 서명을 우리나라에서 어느 회사가 상표로 등록한 것을 무효로 해 달라는 주장을 한 것이다. 우리 대법원은 작가의 서명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의 것으로서 그의 미술작품에 주로 사용해 왔고 또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그 서명과 같은 상표를 다른 사람이 무단으로 출원 등록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것은 유명한 화가의 서명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것은 그 화가의 명성을 떨어뜨려 그의 저작물들에 대한 평가는 물론 그 화가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대법원은 우리나라에서 피카소 서명을 사용하는 것이 프랑스에 있는 유족들이 고인에 대해 느끼는 추모의 마음을 해치므로 허락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우리 법원은 미국의 영화배우 제임스 딘의 이름에 대해서는 다른 판결을 내린 바 있다. 97년 어떤 회사가 제임스 딘의 이름을 의류 상표로 등록한 것에 대해 미국의 상표권자가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자 우리 법원은 저명한 고인의 이름을 사용한 상표가 공공의 질서 또는 선량한 풍속을 문란하게 할 염려가 있다거나 수요자를 기만할 염려가 있는 상표가 아니라고 하여 미국 측 원고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임스 딘은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51년도 할리우드 영화 ‘대검을 꽂아라’에 용감하게 싸우는 미군 병사 역할의 단역으로 출연해 영화계에 데뷔, ‘이유 없는 반항’ ‘에덴의 동쪽’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가 요절한 최고의 청춘 스타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던 제임스 딘보다 한국전쟁의 성격을 왜곡한 피카소는 우리 법원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뭐, 괜찮다. 우리는 대범한 국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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