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남녀의 밀고 당김...전후 정비석 소설은 ‘남녀 탐구생활'

1 소설 『자유부인』표지.2 1956년 영화 ‘자유부인’ 포스터.
소설가 정비석의 신문 연재 소설 ‘자유부인’은 어떻게 1950년대 한국 사회를 뒤흔들어 놓을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각종 문학전집은 정비석의 대표작으로 왜 30년대 단편 ‘성황당’만 수록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 ‘자유부인’의 성공요인은 또 무엇일까.
이 같은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학술대회가 22일 서강대 정하상관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됐다. 대중서사학회(회장 이정옥 숙명여대 교수)가 주최한 ‘정비석 탄생 100주년 기념-정비석의 문학세계와 위상, 대중적 소비와 메커니즘’이다. 6명의 발제자와 6명의 토론자가 정비석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하루 종일 발표와 토론을 이어 갔다.

작가 한 명을 이렇게 여러 연구자가 다양한 각도에서 집중 분석하는 경우는 학계에서 드문 일이다. 이 학회 이영미(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겸임교수) 교수는 “2009년 김내성 탄생 100주년 기념 세미나에 이어 이런 방식은 두 번째”라며 “단행본으로 출간된 정비석의 장편소설 28편을 모두 읽으며 1년 가까이 준비했다”고 밝혔다.세미나는 이 교수의 발제로 시작됐다. ‘정비석 장편연애·세태소설의 세계 인식과 그 시대적 의미’다. 그의 소설이 대중의 높은 인기를 받았다면 당시 시대 흐름에 매우 부합했다는 것인데, 50년대의 시대적 요구는 무엇이었으며 그것을 만족시킨 정비석의 능력은 또 어떤 것인지에 초점을 맞췄다.

3 영화배우 김지미와 담소 중인 정비석 작가.4 극단 신협의 연극 ‘자유부인’.5 1981년판 ‘자유부인’ 개봉을 앞두고 주연을 맡은윤정희·최무룡·남궁원씨 등이 고사를 지내고 있다.
이 교수는 “정비석은 부와 애욕에 적극적인 인물을 부정적이지 않게 형상화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으며 이는 분단과 전쟁이 일단락돼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 분위기, 미국적 세련됨과 그 생활방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사회를 이끄는 새로운 인물형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성과 물질에 대한 욕망을 전면화한 여성들, 돈과 권력을 바탕으로 여성의 성을 탐하는 남성들의 이야기를 기본으로 정치적 부패나 세대 갈등 같은 사회 문제를 결합해 당대의 세태를 입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았다.

사실 이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적나라한 단면이기도 하다. 작가는 인간이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기초적 욕망으로 움직이는 개별적 존재이며, 이 세상은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인간들의 힘이 부딪쳐 경쟁하고 싸우고 거래하는 곳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그려 냈다. 특히 돈이나 권력 같은 ‘힘’의 근원으로 성(性)을 꼽았다. 그의 소설세계는여성이 자신의 성을 무기처럼 움켜쥐고 남성과 밀고 당기는 ‘힘겨루기’를 하는 곳이라고 분석한 이 교수는 그의 애정세태소설을 두고 “50년대판 ‘재밌는 TV 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이라고 설명했다.

6 1956년 영화 ‘자유부인’의 한 장면.
애정소설이 60년대 이후로는 시들해지는 이유에 대해 이 교수는 “발전주의·실용주의·성실·절제·헌신·계몽 등의 태도는 정비석 연애소설이 지닌 가치였는데 박정희 정권이 이를 60년대 지배 이데올로기로 삼으면서 대중의 관심이 멀어지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중앙 일간지, 지방 일간지, 종합 오락잡지, 여성지, 전문지 등 한꺼번에 여러 곳에 연재하는 괴력을 과시했던 작가는 자신이 싣는 매체의 독자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신문에 연재된 그의 장편 연애소설의 타깃은 대도시에 사는 교육받은 성인 남성층이었다. 반면 여성 월간지 ‘여원’에 연재된 ‘산유화’ 같은 작품은 여성지 독자를 고려해 진실한 사랑에 더욱 비중을 뒀다.

동국대 이선미 연구교수는 “신문 연재를 통해 각종 사회적인 문제를 나열해 매 사건 독자들이 사회의 실상을 알아 가는 계기와 무수한 메타 담론이 벌어지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래서 소설의 서술자는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기보다는 사회적 문제를 던지는 발제자”라고 지적했다.

정비석의 50년대 히트 소설들은 영화계에도 단비가 됐다. 정비석의 소설 중 영화화된 작품은 16편 정도인데 반복 제작된 경우도 많아 총 작품 편수는 22편이다. 연재가 끝나기도 전에 영화화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춘향전’ 같은 시대극에 치중하던 전후 국내 영화계에 그의 작품은 ‘현대극’ 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현대적 감각이 요구되면서 영화계의 신진 인력이 대거 발탁됐고 그로 인해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가 시작됐다고 중앙대 이길성 강사는 말했다. 56년작 ‘자유부인’은 당대 최고의 촬영감독이었던 한형모 감독의 연출작이며 ‘여성의 적’은 김한일 감독의 데뷔작, ‘유혹의 강’은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유두연 감독 데뷔작이었다. 그는 “한국 영화 최초로 크레인을 사용해 역동적인 스크린을 보여 줄 수 있었던 것도 ‘자유부인’의 폭발적인 성공 요인”이라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고려대 최애순 강사는 “전집에서 정비석은 ‘자유부인’의 작가가 아니라 ‘성황당’의 작가, 대중문학가가 아니라 김동리·황순원과 함께 토속세계를 그리는 순수문학가, 50년대 작가가 아니라 30년대 작가로 기록되고 있다”며 그 이유로 대부분 단편 위주로 구성되는 전집의 특성과 당대 문단 권력과의 사이에서 특유의 무채색으로 살아간 작가의 태도 등을 꼽았다.


◇정비석 주요 연보
-1911년 5월 21일 평북 의주 출생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졸곡제’ 입선
-193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성황당’ 당선
-1939년 첫 장편 ‘금단의 유역’
-1942년 첫 단행본 『청춘의 윤리』
-1954년 서울신문에 ‘자유부인’ 연재
-1956년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 개봉
-1956년 첫 역사소설 『역사소설 연산군』 출간
-1974년 조선일보에 ‘명기열전’ 연재
-1980년 ‘성황당’ 원작, 이대근·정윤희 주연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개봉
-1981년 한국경제신문에 ‘소설 손자병법’ 연재
-1991년 10월 19일 별세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