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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2. 서쪽에서 온 마을 (10)

전추산은 공중에서 날아온 매가 가온의 어깨에 내려앉았다고 말했다. 매사냥은 어디서나 흔한 일이다. 잘 길들여진 고려의 매는 몽골이 요구하는 공물 가운데 하나였다.

 “가온이도 매사냥을 하나?”

 “아뇨.”

 가온이 매의 발목에서 뭔가를 떼어내는지 부스럭거렸다. 매로 사냥을 하는 게 아니라 통신을 하는 것 같았다.

 “김승 촌장이 쪽지를 보냈나 보지?”

 “오늘 밤 철야기도를 하시겠답니다. 새벽에 보자시네요.”

 내 깜냥에는 날카로운 추리라고 여겼는데 가온은 태연하다. 나는 김승이 다시 괘씸해지기 시작했다. 김승은 이쪽 사정을 죄다 알고 있다는 얘기다. 내가 눈이 멀어서 마을에 들어온 것, 인보의 죽음, 내가 하는 수사에 대해서 낱낱이 전달받았을 것이기에. 그러면서도 당장 내려오지 않고 시간을 끄는 건 무슨 꿍꿍이속인가.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먼 곳에 있는가?”

 “원효굴요.”

 원효굴은 이 나라 골골에 수십 군데나 된다. 이곳에도 같은 이름의 다른 동굴이 있다. 해동의 성자 원효대사는 벌레였다. 좀벌레가 고목을 파고들어가 사는 것처럼 원효대사는 바위 속에 굴을 파고 들어앉아 지독히 수행했던 공부벌레였다. 높은 산 인적 끊긴 바위굴이 대사의 거처였다. 소리를 질러 사람 대신 메아리가 대답해야 비로소 거기다 똬리를 틀었다. 수행이 끝나 세속 도시에서 도를 펼칠 때, 대사는 가장 화려한 곳과 가장 번잡한 곳을 섭렵했다. 공주가 사는 궁궐과 저잣거리를 거칠 것 없이 누볐다. 가장 깊이 들어가 웅크려 본 자가 가장 앞선 세상을 보고 길을 만들었다. 다른 수행자가 걸어 보지 못한 길이었다.

 김승은 왜 하필 원효굴에서 철야기도를 하는 것인가.

 “그 쪽지 좀 다오.”

 가온이 내게 쪽지를 내밀었다. 나는 휴대용 먹물과 붓을 꺼내 김승이 보낸 쪽지 뒤에 간단히 적는다.

일이삼왕(一二三往)

 삼이일래(三二一來). 지밀(指密).

그대 한 걸음 두 걸음 갔던 길로 되밟아 오라.

 그 어떤 감정도 배제하고 담백하게 쓴 내용이다. 엉뚱하고 교활한 작자 김승에게 처음으로 보내는 글이 지나치리만큼 깔끔하다. 눈이 보이지 않아서 힘 있게 휘갈겨 쓰지도 못했다. 그가 보면 소금 간에 숨이 죽어 버린 파김치 같은 글씨로 보이리라. 숨이 죽은 게 어디 글씨뿐이랴. 눈밭의 댓잎처럼 청청하던 내 결기 또한 시나브로 풀어져 버리고 있었다.

 나는 가온에게 쪽지를 건넸다. 매의 발목에 쪽지를 묶은 가온이 그 매를 날렸다. 바람을 일으키며 날아가는 매를 향해 사자견이 컹컹 짖었다.

 “서둘러 올라가 보세. 말은 어디 있나?”

 “비탈길이 좁고 험해서 말이 못 가요.”

 전추산이 잘라 말했다.

 “그럼 걸어서라도 가 봐야지. 인보가 밟았던 길인지도 모르는데.”

 “날이 저물어 가니까 내일 다시 옵시다.”

 탁연이 제안했다.

 “지금 가겠소.”

 나는 누가 말린다고 내 의지를 꺾을 사람이 아니다. 코앞에서 새로운 단서를 찾았는데 날이 어두워진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나는 기필코 향기의 발원지를 찾아갈 셈이었다. 인보를 유인했을 문제의 향기가 아닌가. 유도화 말고도 다른 독이 사인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의혹을 남겨 두고 이대로 내려가서 어떻게 내가 편히 잠자겠는가.

 “쌍둥이는 대장간에 말들을 맡기고 횃불 두 자루를 만들어 따라오라.”

 그렇게 지시한 전추산이 내 무릎 앞에 대뜸 등을 들이댔다.

 “업히셔요. 벼랑길에 돌부리가 많아서 위험해요.”

 전 장군의 등과 어깨는 산처럼 우람하고 실팍했다. 나를 업은 장군이 가풀막을 성큼성큼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등짐 없이 홀가분한 몸으로 걸어도 힘겨운 길이었다. 뒤따라오는 가온과 탁연의 밭은 숨소리를 들어 보면 안다. 장군은 용력이 대단한 사내였다. 결코 왜소하다고 할 수 없는 나를 업고도 곧잘 간다. 중이 제 몸뚱이 하나 건사 못하고 남의 등에 업혀서 산에 오르는 게 멋쩍다. 그나마 황소 같은 이 사람을 진작 알아보고 장군이라고 불러 왔던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눈이 멀고도 사람을 제대로 알아봐서 가까스로 체면이 섰다.

 “중이 중생을 업어야 하거늘 중생이 중을 업었구나.”

 나는 남 말하듯 두런거린다. 마음이 불편해서 해 보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온 이래 언제 중이 중생을 업은 적이 있었나 싶다. 중생이 늘 중들을 업고 시봉해 왔다. 중들의 뒤에는 금불상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중들은 그저 업보를 말하고 구원 장사를 했다. 중생은 피와 땀을 절집에 보태고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중생의 살림살이는 점점 궁핍해지는데 절집은 대궐처럼 커져만 갔다.

 중생은 미혹과 미망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니까 중생이다. 중생이 미혹과 미망을 버리고 저마다 자성을 찾는다면 중들은 설 자리가 없다. 중생이 참된 나를 찾아 모두 부처가 돼 버리면 불교는 망하고 만다. 포교 대상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불성을 지닌 모든 것을 부처로 만드는 일이 불교의 목적이다. 불교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무(無), 없어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불교가 그 자체까지도 없어져야 이 세상이 극락이 된다. 불교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종교가 없어져야 인간의 마을이 천국이 된다. 참 종교인만 사는 세상에는 종교가 필요 없게 된다. 강을 건넜으면 뗏목은 버리고 가는 것이므로.

 뗏목이 땀을 흘린다. 가파른 고개를 넘어가는 인간 뗏목이 땀을 흘린다. 그 뗏목을 타고 가는 이 얼치기는 눈먼 감찰이다. 전 장군의 등과 목덜미에서 흥건히 솟아난 땀내를 맡으면서도 내가 놓치지 않는 게 하나 있다. 인보가 유혹당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바로 그 향기다.

 “무술을 배우던 한참 때는 말씀이죠. 산을 겅중겅중 건너뛰어 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눈밭에 누워 있으면 불덩이 같은 심장 때문에 눈이 다 녹아 버리면 어쩌나 우려했어요. 펄펄 날아다니다가 목이 마르면 또 걱정거리가 생겼어요. 샘물에 엎어져 쭉 들이켜면 바닥까지 말릴 것만 같았거든요. 그래서 적당히 마시고 말았다니까요. 호랑이나 멧돼지쯤은 맨주먹으로 때려잡으려 들었고요.”

 숨을 거칠게 몰아 쉬면서 전 장군이 말한다. 순박하고 호쾌하다. 웃음이 나온다. 사내라면 열아홉, 스무 살 무렵에 그런 때를 겪는다. 장군의 꿈을 꾸는 것이다. 그러다가 세상 돌아가는 꼴을 깨닫게 되면 스스로 그 꿈을 접고 난쟁이가 된다.

 지금 이 나라에는 꿈이 없거나 꿈을 지워 버린 사람들만 살고 있다. 그 사람들은 이름 모를 산이나 바닷가 비탈에 비집고 들어가 나무처럼, 돌처럼 살아간다. 꿈이 온전한 사람들이 소수 있긴 하다. 하나같이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다. 세상은 점점 기울어 가는데 그들은 더 많은 돈, 더 큰 권력을 원한다. 대다수의 절망에 뿌리박은 그들만의 꿈은 욕망과 다름없다. 욕망은 그 속성상 견제가 없으면 탐욕으로 이어진다.

 “상현달에서 쨍그랑 소리가 나네요.”

 가온이 등 뒤에서 말한다. 얼마나 쾌청하면 달에서 쇳소리가 난다고 할까.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시각이 닫히면 청각이 더 예민하게 열린다지만 때로는 시각이 열려야 청각이 따라 열리는 경우도 있다.

 내 감각은 점점 무뎌져 간다. 아니 마비돼 간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버텨 보지만 얼마나 더 버텨 낼지 모르겠다. 길섶의 갈잎에 내 다리가 스치면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뒤쪽에서 달음박질 소리가 울린다.

 “왜 이렇게 늦은 게야? 하나는 맨 앞으로 와!”

 언제 앞장섰던 것인지 탁연의 볼멘소리가 앞에서 울린다.

 쌍둥이의 횃불이 도착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그 불빛을 감지하지 못한다. 나는 빛과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흑암이 내 안을 채우고 혼돈이 덩굴처럼 뻗친다.

 전 장군이 발을 멈춘다. 나는 어깨를 다독이며 그만 내려 달라고 한다. 장군의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달빛이 더울 때도 있네요.”

 그가 내 바짓가랑이를 잡았던 손 하나를 얼른 떼어 땀을 훔쳐낸 다음 다시 잡는다. 백 근이 넘게 나가는 내 뼈와 살, 배 속에 든 똥과 오줌을 그가 짊어지고 뚜벅뚜벅 올라간다. 충직한 사람이다.

 쏴아-.

 바람 소리가 난다. 거센 바람 소리다.

 “다 왔습니다. 여기서부터 저 아래 폭포까지는 내리막길이랍니다.”

 “폭포?”

 “폭포 곁 산막이 누이 집이지요.”

 전 장군이 나를 반석 위에 내려놓는다. 거센 바람 소리는 폭포 떨어지는 소리였던 것이다. 낙차가 크고 수량이 많은지 소리가 우렁차다. 저 아래로 이백 보쯤만 내려가면 냇가에 산막이 한 채 있고 그곳에서 가온의 어머니가 산다고 한다. 왜 이런 데서 혼자 사는지 묻지 않는다. 저마다 앞을 다퉈 깊고 험한 데로 가서 목숨을 보전하는 시절이므로.

 어제 초저녁 인보는 여기에 왔을 게다. 유도화보다 더 강렬한 향기를 쫓아서. 그런데 더 이상 향기가 나지 않는다. 거센 폭포 소리 때문에 후각이 무뎌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차갑고 축축한 물보라에 향기가 녹아 든 것일 수도 있다. 약초골까지 멀리 가는 향기는 위로 솟구쳤다가 골짜기를 따라 흐른 것이리라. 나는 심호흡을 한다. 이끼 낀 고목에서 나는 냄새 같은 게 맡아진다. 내가 따라왔던 향기와 사뭇 다른 냄새다.

 “조심조심 걸어 내려가 보시죠.”

 전 장군이 손을 잡는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 손을 털어 낸다. 그 듬직하던 손길이 나무뿌리처럼 메마르고 시체처럼 싸늘하게 느껴졌다. 무엇인가 무겁고 칙칙한 것이 내 속으로 파고든다. 뒷골이 당기면서 푸른 불빛이 번뜩인다. 아찔하다. 경련이 일어난다. 나는 신음 소리를 내고 만다. 그러다 그만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린다. 자존심을 걸고 앙버티던 결기가 모래알처럼 부서져 버린다. 천하의 지밀이 이렇게 무너지다니.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왜 그러십니까?”

 “승정 어른! 승정 어른!”

 일행이 내 이름을 외치는데 그 소리가 꿈결처럼 아득하다.

 “어서 들춰 업고 산막으로!”

 “옴짝달싹도 안 하는데요.”

 “무슨 얘기야?”

 “바위에 달라붙어 버린 것처럼 꼼짝도 안 해요.”

 “지밀 승정! 지밀 승정!”

 사람들의 외침이 마치 벌떼가 윙윙거리는 소리처럼 울린다. 뭐라고 대꾸하고 싶은데 혀가 꼬이고 굳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내 말은 신음 소리로 변해 버린다. 반석 위에 쓰러진 내 초췌한 모습이 보인다. 이렇게 혼이 뜨는 것인가. 모든 것이 정지돼 있고 내 의식만 간간이 끊겼다 이어진다.

 나는 극한 상황에서 오던 길 쪽으로 손가락을 뻗는다.

 “도로 내려 가자고요?”

 나는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인다. 전 장군과 쌍둥이 형제가 나를 일으켜 세운다. 허깨비처럼 가뿐히 들린다. 전 장군이 나를 업는다. 나는 정신을 놓아 버린다.

 “옴 소마니 소마니 훔 하리한나 하리한나-.”

 두어 시진 만에 깨어나며 내가 뱉은 주문이었다. 마귀를 항복시키고 지옥문을 닫는 진언이었다.

 “아직도 헛소리네요. 거 봐요. 귀신 들린 거라니까요.”

 어느 늙은이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한여름 밤에 장작불을 땐 것인지 방이 쩔쩔 끓는다. 내 숙소의 방과 마루에 마을 사람들이 가득하다. 전 장군과 쌍둥이가 내 팔다리를 주무른다. 눈에는 더운 물수건이 덮였다. 약물에 적신 물수건이다.

 “그렇게 안 봤는데 참 무모한 사람이로고.”

 꼬장꼬장하고 강퍅한 성정의 의원 영감이다.

 나는 숨을 몰아서 내뱉는다.

 “신경을 그렇게 곤두세우고 댓바람부터 밤중까지 함부로 쏘다니면서 눈이 떠지길 바라는 거요? 폭포가 내뿜는 장기(<7634>氣)에 혼절했던 거 아오?”

 그가 땀으로 범벅 된 나를 일으켜 앉혀 탕약을 먹이려 든다. 나는 손을 뻗어 거절한다.

 “모두들 돌아가시오. 나는 내일 날이 밝는 대로 포구에 나가 강도 가는 배를 탈 거요. 인보 스님 시신이나 소금에 절여 주시오.”

 이런 약이 다 무슨 소용인가. 이미 지옥에 떨어진 몸인데. 의원 영감은 내가 혼절한 까닭을 폭포가 내뿜은 장기에서 찾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다른 이들은 멀쩡한데 왜 나만 그런가. 나는 분명 보았다. 아주 이물스러운 존재가 나를 찾아왔다. 지금까지 눈이 보지 못한 것, 귀가 듣지 못한 것, 손이 만지지 못한 것, 마음에 떠오르지 아니한 것이 나를 장악해 버렸다. 가온이라는 계집아이 말이 옳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거부한다. 눈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서 바로 철수하는 것이다. 나는 불가항력 앞에서 두 손을 든다. 더 버텨 내지 못하고 항복한다. 나는 이제 감찰로서의 소명의식도 미련도 없다. 나는 마귀를 잡으러 왔다가 도리어 내가 사로잡힌 패배자다. 내 목에 차고 있는 금강저는 저들이 차고 있는 십자가에 대적하지 못했다. 나는 지옥의 순례자, 여기서 살아 돌아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김종록
일러스트=이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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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