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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Focus] 미국 NBC 엔터테인먼트 부사장 에드윈 정

에드윈 정(Edwin Chung·35) 미국 NBC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부문 부사장을 서울 상암동에서 만났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에 이어 마련한 ‘할리우드 멘토 세미나 2011’에서 멘토 역할을 하러 왔단다. 확실히 젊다. 해외에서 성공한 한국인은 많지만 분야도, 나이도 젊다. 할리우드리포터지(紙)도 그를 ‘35세 미만 영향력 있는 문화산업 간부 35인’으로 뽑았다. 실제로 에미상을 휩쓴 ‘30록(30 Rock)’ ‘오피스(The Office)’ 등을 비롯해 ‘윌앤드그레이스(Will&Grace)’ ‘라스베이거스(Las Vegas)’ 등 잘나가는 NBC 드라마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할리우드 넘버원 생존법칙’은 부모님에게 35년 동안 들어온 말과 정확히 일치한다. 세계 최강 무적의 비법, ‘남보다 더 열심히 해라’.

글=이소아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그 나이에 부사장이라니 대단하다.

 “하하. 미국에선 다 이렇다. 직급 체계가 한국과는 많이 다르니까. 열심히 하면 누구나 오를 수 있는 자리다.”

●미국 방송계의 가장 큰 이슈는.

 “아무래도 수익률 문제다. 5년 전부터 TV 시청률은 떨어지고, 쇼 제작비는 연간 6%씩 올라가고 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까지 반영하면 비즈니스 전체가 빡빡하다. TV 방송은 지금 이대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변해야 한다. NBC뿐만 아니라 ABC, CBS, 폭스 등 모든 방송국이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고 있다.”

●할리우드에선 어떤 장르가 잘나가나.

 “올가을 시즌부터 30분짜리 코미디가 진짜 잘된다. 항공기 승무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팬암(Pan-Am)’ ‘플레이보이클럽’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도 ‘업 올 나이트’ ‘뉴걸’ ‘라스트맨 스탠딩’ 등의 시청률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

●왜 그럴까.

 “아마 경제가 어렵기 때문일 거다. 사람들이 어려운 현실에서 탈출해 잠시라도 잊고 웃고 싶어 하니까.”

●잘되는 코미디와 드라마는 뭐가 다른가.

 “코미디는 그냥 웃기면 되는 게 아니다.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아, 내 삶, 내 친구랑 비슷하구나. 이런 게 반영돼야 사람들이 편안하게 웃는다. 주인공이나 인물들한테 애정도 느끼고….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스토리 자체가 좋아야 한다. 그리고 캐릭터들이 아주 매력적이어야 한다.”

●역시 캐릭터가 중요한가.

 “드라마건 쇼건 코미디건 TV를 본다는 것은 내 집으로 캐릭터를 매일, 매주 초대하는 것과 같다. 영화는 두 시간 보고 나면 끝인데 이건 계속 보는 거니까. 그만한 시간을 투자할 명분, 가치를 줘야 한다. 희망을 느끼든지, 웃는다든지, 미스터리를 푸는 과정을 즐긴다든지 강력한 매력이 있어야 한다.”

 에드윈은 미국 명문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다. 여기까지는 똑똑한 이민 1.5, 2세대와 다를 바 없는 ‘정통 수재’코스다. 실제로 많은 한국계 학생이 의사,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부모님이 이렇게 고생하셨으니까 우리는 안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성공해 효도하고 싶었다. 대신 생각은 사뭇 달랐다. ‘부모님이 이렇게 고생하셨으니까 난 결코 안전한 길만 걸으려 해선 안 된다’고 굳게 다짐했단다.

●어쩌다 이 길로 가게 됐나.

 “어릴 때부터 TV 프로들을 정말 좋아했다. 부모님이 영화를 보여주고 동화책을 읽어줄 때마다 상상이 끊이지 않았다. 글짓기도 좋아하고 언제나 창조적인 데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좋아해도 실제 직업으로 하기는 어렵던데.

 “솔직히 한국계 미국인은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 부모님이 돈도 없이 미국에 와 우리를 위해 몇십 년 동안 일을 몇 가지씩 하면서 고생했는데 음악, 스포츠, 연극 이런 거 한다고 하기가 미안하다. 그래서 법조인이나 의료인이 되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좀 다르다. 부모님이 열심히 해오신 덕에 더 많은 선택권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실패가 두렵다고 무조건 똑같이 사는 게 답은 아닌 거 같다.”

●‘안전한’ 직업을 택했으니까 다른 민족보다 빨리 성공한 것 아닌가.

 “분명 그런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런 안전지향적 성향 때문에 스포츠나 음악, 엔터테인먼트 부문에서 성공을 못한 면도 있다. 스스로 제한하는 ‘셀프 리미팅(self limiting)’인 셈이다. 이제 확실히 바뀌고 있다. 한국인이라고 할리우드에서 못하란 법이 없다.”

●미국 방송계는 살벌할 거 같다.

 “다윈의 ‘적자생존’ 법칙으로 굴러간다. 영화나 드라마, 음악 쪽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똑같은 열정, 재능을 가진 사람이 많아서 일을 두 배, 세 배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본인도 그렇게 했나.

 “미친 듯이 일했다. 여기는 적자생존인 동시에 아주 민주적인 분야다. 고생을 한 만큼 성과를 얻게 된다. 남들보다 특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얼마나 자발적으로 열심히, 필사적으로 일하느냐, 열정을 갖느냐의 문제다. 안 그러면 오래 못 버틴다.”

 그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발을 들여놓은 건 1998년 월트 디즈니의 영화제작 재정담당 사업기획을 맡으면서다. 그러다 제작 자체를 배우고 싶어 베리 레빈슨 감독 밑에서 1년 동안 무보수로 온갖 잡일을 자청했다. 레빈슨은 ‘레인맨’ ‘굿모닝 베트남’ 등을 만든 유명한 감독이다. 돈보다 경험이 훨씬 귀한 바닥이라 가능한 얘기다.

●이 일이 왜 좋나.

 “창의적인 사람들과 함께 일하니까. 어렸을 때 TV나 동화책 속 좋아하는 캐릭터를 흉내 내며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이제 그 스토리를 내가 만들게 된 거다. 정말 흥분된다. 내가 옛날에 그랬듯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TV쇼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요즘은 어떤 스타들이 대중에게 어필하나.

 “1980년대에는 실베스터 스탤론이나 아널드 슈워제네거처럼 근육질 액션 히어로들이 잘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흥미로운’ 배우, ‘훌륭한’ 배우를 찾는다. 단순히 잘생기기만 해선 안 되고 지적이면서 무게감과 깊이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영화 ‘노트북’에 나오는 라이언 고슬링이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그렇다. ”

●친한 배우는.

 “켄 정(Ken Jeong)과 친하다. 프로듀서에게 쇼에 섭외해 달라고 했을 정도로 켄 정의 코미디 팬이다. 존 조(John Cho)도 같이 작업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던 친구다. 이제 미국의 주요 방송국에서 배우가 동양인인지 서양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재능이 가장 중요하다.”

●롤 모델이 있나.

 “배울 사람은 아주 많다. 스티븐 스필버그, 클린트 이스트우드, J J 에이브럼스 등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영화나 TV프로그램을 만든다. 그들은 성공이 아니라 자기의 열정과 영감을 좇아간다. 돈은 따라오는 거다. 내가 만나본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아이 같은(childlike)’ 사람들이었다.”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우와, 이거는 잘못 얘기하면 주변 사람들이 상처받겠다. 내 친구가 드라마 ‘가십걸’을 만드는데…(웃음) 옛날 명작 중 ‘사인필드’ ‘코스비쇼’ ‘웨스트 윙’ ‘ER’을 정말 좋아한다.”

●한국도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들이 생겨나면서 채널 수가 늘고 있다.

 “미국에 ‘크림은 항상 위로 떠오른다(Cream always rises to the top.)’란 말이 있다. 커피에 크림을 부으면 위로 떠오르듯 아무리 채널이 많아져도 뛰어난 프로그램은 결국 시청자의 사랑을 받을 거다. 채널 수가 늘어나는 게 옛날 마인드로는 부정적일 수 있겠지만 시청자나 스타 입장에선 더 많은 선택권, 기회가 생기는 거니까 산업 전체엔 좋은 일이다.”

●도대체 엔터테인먼트가 뭘까.

 “기쁨(joy)과 해방감(escape)이다. 이 두 가지는 인간을 서로 연결해준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짐바브웨든 사람들은 감정을 느끼고, 사람을 사귀고, 이야기를 나누고, 여행을 떠난다. 가장 훌륭한 영화나 드라마는 뭔가 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그런 프로다.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고 말하게 하는 것,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 몰래 좋아해온 여자에게 ‘사실은 좋아해’라고 말하게 하는 것, 10년 전 크게 싸우고 연락을 끊고 사는 형에게 전화해 ‘그땐 내가 미안했어’라고 하는 거다. 인간성을 자극하고 고무시키는 것!”

●꿈이 야심 찰 것 같다.

 “하하하. 아닌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덜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타이틀이나 회사 이름, 돈에 연연하기 싫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멘토 프로그램도 그래서 좋아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변화가 빠르고 치열해 내가 앞으로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리에 있는 동안에는 많은 한국인에게 말해주고 싶다. ‘헤이, 내가 할 수 있으면 모두 할 수 있어요’라고. 힘들어 죽겠는데 우리는 왜 지금 ‘이’ 일을 하고 있을까.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겐 이 일이 중요하다고 느끼기 때문 아닐까?”

What Matters 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늘 내 옆에 계신다는 그 느낌이다. 할리우드에서 일하든 다른 곳에서 일하든 산다는 건 힘든 거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두면 자기가 실행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일할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가족 간에 어떤 결정을 내릴 때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j칵테일 >> “한국 배우들, 영어만 된다면 …”

에드윈은 한국 방송·연예계에 관심과 애정이 넘쳐났다. 그만큼 아쉬움도 많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 배우를 많이 알고 있나. 김윤진은 알 것 같고.

 “김윤진? 당연히 안다! 배용준, 이병헌, 원빈, 비, 송혜교, 신민아…한국 드라마는 거의 다 본다.”

●미국에서도 뜰 수 있을까.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언어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세계 시장에서 가진 매력을 다 보여주려면 영어를 어느 정도 자유롭게 해야 한다.”

●틈새시장이 있을 것 같은데.

 “물론 성룡이나 이연걸도 영어는 완벽하지 않지만 환상적 무술로 커버가 된다. 하지만 이건 일상적 연기가 아니다. 10분의 1에 해당하는 상황이다. 이병헌이나 비도 액션연기가 최고지만 무술만 하면 역할이 너무 제한적이다.”

●언어만 되면 한국 배우가 미국 TV의 주연도 될 수 있다는 얘긴가.

 “당연하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보면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너무나 매력적이고 카리스마가 있다. 카메라는 거짓말을 안 한다. 그건 한국TV나 미국 TV나 똑같다.”

●조언을 한다면.

 “할리우드에서 인정받으려면 자신만의 관점과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 인간관계도 아주 중요하다. 이 바닥에 아시아계 미국인은 5%, 한국계 미국인은 고작 0.9%밖에 안 되니까. 다행히 지금 할리우드엔 다양성에 대한 압력들이 있다. 아시아계 배우들이 게스트가 아니라 의무적으로 등장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앞으로 액션 가이(Action guy)나 술집 주인 말고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한국계 배우들이 점점 늘어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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