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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홀 불이 꺼졌다 … 관객들은 음악을 보았다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가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연주 후 기립박수를 치고 있는 청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공연장의 불빛이 모두 꺼졌다. 캄캄한 어둠의 적막을 넘어 아름다운 선율이 선뜻 다가오기 시작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 주제곡 ‘오버 더 레인보(Over the Rainbow)’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비로소 마음이 열렸다. 객석은 숨소리조차 멎었다. 연주자와 청중 사이엔 음악 이외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연주가 끝나자 공연장은 다시 밝아졌다. 그제야 눈을 뜬 청중은 마치 기다린 듯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상재 단장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카네기홀(잔켈홀)에서 개관 121년 만에 첫 ‘암전(暗轉) 무대(조명을 모두 끈 상태에서 이뤄어지는 공연)’가 펼쳐졌다. 한국에서 온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에 의해서였다. 2007년 세계에서 처음 창단된 ‘하트시각장애인 체임버오케스트라’(Hearts of Vision Chamber Orchestra)다. 9명의 시각장애인과 10명의 비장애인 단원은 서로 숨소리와 악기 소리만으로 박자를 맞췄다. 연주 시작 때 클라리넷 연주자이자 시각장애인인 이상재(44) 단장이 내는 ‘하나 둘’ 구령이 유일한 신호였다.

 시각장애인 단원은 감각만으로 호흡을 맞춰야 해 각자 연주 부분만이 아니라 전곡을 암기해야 했다. 19명이 연주하기 때문에 누군가 한 음정만 놓쳐도 금세 표가 날 수밖에 없었다. 공연이 3시간 넘게 이어지자 단원들은 연방 땀을 닦았다. 마지막으로 한국 아리랑과 미국 포크송 연주가 끝나자 관객은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다.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가 카네기홀에 서기까지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10년 준비 끝에 이 단장 주도로 2007년 창단했지만 늘 경제적 어려움에 쫓겼다. 피나는 연습을 했지만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창단 2년 만에 해체 위기로까지 몰렸다. 단원들은 오기가 났다. “해체할 때 하더라도 큰 무대에 한번 서보기나 하자”고 뜻을 모았다. 공연 실황을 담은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각계에 필사적으로 오케스트라를 알렸다. 그런데 뜻을 세우니 기적이 일어났다.

 우연히 이들의 공연 모습을 본 미국 뉴욕의 음악가들이 감동했다. 뉴욕필하모닉의 미셸 김 부악장은 카네기홀에 이들을 적극 추천했다. 연주자를 고르는 데 까다롭기로 유명한 카네기홀도 이들의 연주 모습에 반했다. 안전사고와 테러 우려 때문에 한 번도 허용한 적 없었던 암전 무대도 허락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CO)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을 앞세워 이들을 돕고 나섰다.

 단원들의 항공료 마련을 위해 지난달 1일 시작한 크라우드 펀딩은 지난 20일 목표액인 500만원을 채워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연주가 끝난 뒤 이 단장은 “너무 힘들어 이제 오케스트라를 접어야겠다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오늘 공연으로 다시 힘을 얻었다”며 “단원들이 자랑스럽다”고 감격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하트시각장애인 체임버오케스트라=2007년 3월 창단한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 실내 관현악단. ‘세상을 볼 수는 없지만 세상에 희망을 보여주자’는 정신으로 창단했다. 미국 피바디 음악대학에서 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 음악박사 학위를 받은 이상재 음악감독이 단장을 맡고 있다. 시각장애 연주자 12명과 객원 연주자 7명으로 이뤄졌으며 그동안 100차례 이상 공연했다.

◆크라우드 펀딩=예술가가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의 창작 프로젝트를 공개한 뒤 일반 대중으로부터 소액기부 형식으로 모금하는 프로그램.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을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셜펀딩’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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