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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조선 후기 이상과 현실 사이, 김훈 꾹꾹 눌러쓰다

시간은 강입니다. 사람은 그 강을 저어가는 사공입니다.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 달의 책’은 11월 키워드로 ‘옛사람 오늘 사람’을 선정했습니다. 조선시대 인물을 다룬 세 권의 소설을 골랐습니다. 시대와 장소는 먼 옛날이지만 선인이 남긴 향취는 오늘의 그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사실과 상상력의 결합, 그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운명이기도 합니다.

흑산(黑山)
김훈 지음, 학고재
407쪽, 1만3800원


한국소설의 ‘외부’, 한국소설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독특한 음역(音域), 한국문단의 스타일리스트…. 화려한 수식어 만큼이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소설가 김훈(63)의 새 역사소설이다. 서점에 깔린 지 일주일 만에 베스트셀러 종합 10위권에 오르며 그의 흥행력을 입증하고 있다.

김훈
 김씨로서는 네 번째 역사소설이다. 그래선지 작품의 짜임새가 한결 견고해진 느낌이다. 『칼의 노래』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평이하게 따라가고, 『남한산성』이 조선 조정이 청나라에 굴복하기까지 산성 안에서의 농성 기간을 제한적으로 다뤘다면 『흑산』은 하급 무관 박차돌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 축을 긴장감 넘치게 보여준다.

 소설은 1801년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신유박해를 전후한 조선 사회의 혼란상을 다룬 작품이다. 마부 마노리(馬路利), 노비 육손이, 관노(官奴)의 딸 아리, 마포의 새우젓 장수 강사녀(姜詞女), 궁녀였다가 쫓겨난 길갈녀(吉乫女) 등 천주교를 믿게 된 민초들이 한때 신자였으나 생존을 위해 배교한 박차돌에게 쫓긴다.

 이런 중심 이야기 축에 좌천된 엘리트 정약전의 행로가 보조 이야기 축으로 끼어든다. 천주교에서 세상 개혁의 싹을 보았으나 현실 권력에 의해 좌절된 채 흑산도로 유배가 자연과학의 세계에 빠져들어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남기는 약전의 내면에서 당대 지식인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지난주 소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김씨는 “이번 소설은 특별한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고 자평했다. 그만큼 수 많은 주인공들이 거의 동등한 역할을 부여 받고 소설에 등장해 명멸한다. 따라서 굳이 주인공을 꼽으라면 탐욕스럽고 아둔한 당대 위정자들에게 고통 받았던 민초 전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이런 독법은 김훈 소설의 일부에 대한 설명일 뿐이다. 그의 소설의 미덕은 단순히 줄거리나 품고 있는 메시지에 머무르지 않는다. 긴장감 넘치는 문장으로 묘사하는 인물 내면의 불안과 번민, 사물이나 사태 너머 진실의 세계에 어떻게 해도 도달할 수 없다는 비극적인 상황 인식, 이런 것들이 오히려 그의 개성이다. 강하게 감정이입된 풍경 묘사는 그 자체가 인물 내면을 보여주는 지적도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접근할 때 김씨 소설은 한층 풍성하게 읽힌다. 가령 다음 같은 문장이 그렇다.

 “정약현은 두 줄기 강물이 만나서 더 큰 물을 이루어 흘러가는 물가의 고향 마을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 물의 만남과 흐름은 삶의 근본과 지속을 보여주는 산천의 경서(經書)였다.”(64쪽)

 “사람이 사람을 안을 때, 마음의 기쁨과 몸의 기쁨이 합쳐져서 조바심치는 일은 꽃이 피고 해가 뜨고 강물이 흐르는 것과 같을 것이라고, 먼저 잠든 명련 곁에서 황사영은 생각했다.”(93쪽)

 소설과 산문의 경계를 지워버리는 김씨 특유의 문장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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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