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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손자·며느리 다 모였다, 텐트 불빛 아래

옥천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저녁식사 중인 여한복씨 가족. 직장생활로 바쁜 여씨의 두 아들은 못 왔지만 오랜만에 4대가 모인 캠핑이 모두 즐거운 표정이다. 왼쪽부터 아내 최옥례(54)씨, 손녀 여하은(1)양, 아버지 여봉진씨, 어머니 김춘자(69)씨, 여한복씨, 손녀 여하랑(3)양, 며느리 정소희(29)씨.


중앙일보·(사)밝은청소년 주최 ‘옥천 너와두리 행동캠핑’



부슬비가 내린 지난 금요일 정지용(1902∼?) 시인의 고향 충북 옥천에 내려갔다. 자욱해진 안갯속을 더듬으며 청성면의 외딴 마을로 접어들었다. 가을비에 신이 난 개구리가 자꾸 길목을 가로막았지만, 때 묻지 않은 자연이 되레 반가웠다.



이 깊은 산속은 중앙일보와 (사)밝은청소년이 21∼23일 진행한 ‘행동캠프’의 첫 번째 장소다. 행동캠프의 ‘행동’은 ‘행복한 동행’의 줄임말. 팍팍한 일상 속에서 단절되기 쉬운 가족관계를 캠핑으로 도탑게 다지자는 게 행사의 취지다.



첫 행동캠프가 열린 옥천군 청성면 한두레 권역은 옥천 시내에서도 자동차로 30분을 더 들어가야 하는 오지였다. 농산물 공동 판매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청서면 일대 7개 이(里)를 합쳐 구성한 한두레 권역은 ‘너와 함께’라는 뜻의 ‘너와두리’라는 브랜드를 출범했다. 이번 행동캠프 공식 명칭이 ‘옥천 너와두리 행동캠핑’이 된 까닭이다.



글=나원정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임성윤군 가족이 미술상담 시간에 그린 그림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가족의 단란한 한때를 그렸는데, 각자 상상한 장면이 다르다. (왼쪽부터)성윤군, 김채영씨, 임정배씨.
# 떡메 치고 죽마 타고



21일 밤부터 22일 아침까지 100여 가족이 캠핑장에 속속 들어섰다. 금요일 오후 퇴근하고서 전국 각지에서 출발하는 참가자를 배려해 모든 프로그램은 22일 오전 시작됐다. 리드미컬한 빗소리를 들으며 옥천에서 첫날밤을 보낸 가족은 22일 오전부터 인절미와 곶감 만들기, 올갱이(‘다슬기’의 충북 방언) 생태체험 등의 농촌 체험 프로그램에 부지런히 참여했다.



 22일 아침. 캠핑장에 점점이 박힌 텐트가 하나 둘씩 열렸다. 아침 공기가 차갑고 눅눅해도 아랑곳하는 사람이 없었다. 간밤에 텐트에 떨어지던 빗소리가 좋더라는 감상만 오고 갔다. 경기도 수원에서 아빠·동생과 함께 왔다는 이소정(15)양도 “이 정도는 비도 아니에요”라며 가뿐하다는 듯 웃었다. 주말마다 가족과 함께 교외로 나가는데, 프로그램이 마련된 캠핑은 처음이라 도리어 신이 났단다.



 오전 11시부터 열린 농촌 체험 프로그램에서 가장 흥겨워한 놀이는 떡메 치기였다. 체험을 돕던 옥천 주민이 차진 인절미에 콩고물을 묻혀 입에 넣어줬다. 아기 새처럼 모여든 아이들 틈에서 소정양도 냉큼 맛을 봤다. 손수 땀 흘려 만들어서인지 더욱 고소하고 쫄깃쫄깃했다.



 볏짚을 엮어 삶은 달걀 꾸러미를 만드는 짚풀공예 체험도 유난히 인기를 끌었다. 소정양 동생 소미(12)양도 짚풀공예에 푹 빠졌다. 볏짚 엮는 일이 서툰 아이들은 아예 삶은 달걀만 집어 먹었지만, 아무도 꾸지람을 하지 않았다. 죽마를 타고 진흙이 튀도록 뛰어도, 갓 부화한 올갱이를 손바닥에 마음껏 올려놔도 괜찮았다. 아이들이 가족뿐 아니라 주민들과 어울려 낯선 체험을 자유롭게 즐기도록 하는 게 바로 행동캠프의 묘미였다.



이동민씨(46·가운데) 가족이 짧게 개조한 죽마를 타고 전래놀이를 체험 중이다. 왼쪽이 딸 소미양, 오른쪽이 소정양이다.
# 4대가 반한 고향의 맛



점심때가 되자 지역 농산물 판매부스가 바빠졌다. 캐고 나서 한 달을 숙성시키면 달콤한 진액이 흐른다는 호박고구마와 알이 굵은 대추가 인기다. 호두곶감말이를 직접 만들어 시식하기도 한다.



 갑자기 어디선가 진한 육수 냄새가 풍겨온다. 한두레 권역 운영위원장을 겸임한 임상철(61) 무회리 이장과 주민들이 환영의 뜻으로 돼지를 잡았다며 수육을 권했다. 육질이 쫄깃쫄깃하고 비계 부분의 맛이 진하다. 함께 내놓은 올갱이국도 아욱에 된장 풀고 올갱이를 한 움큼 넣고 끓여 구수하다.



 대전에서 온 김채영(40)씨는 돼지 수육 쪽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김씨는 “껍질에 털이 좀 남아 있긴 한데 맛이 각별하다”며 입맛을 다셨다. 풍광이 좋은 개천가에 텐트를 친 여한복(54)씨 가족은 상다리가 휠 만큼 식탁을 푸짐하게 차렸다. 부모님과 며느리, 어린 두 손녀까지 4대가 모였기 때문이다. 아버지 여봉진(75)씨가 “지금은 경기도에 살지만 고향은 경북 상주인데, 상주가 옥천이랑 멀지 않아 오랜만에 옛맛을 되새길 수 있어 좋다”고 말하자, 아들 한복씨가 “행동캠핑 모집공고를 보자마자 신청했다”며 “세대를 초월해 참여할 만한 프로그램이 다양하고 알차다”고 대꾸했다.



# 우리 가족 이런 모습 처음이야



오후부터는 시네마테라피와 미술상담, 푸드테라피로 구성된 가족 특성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가족 테마 영화를 보고 저마다 가족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며 평소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부모와 자식, 부부간의 사소한 일면을 깨우치고 이해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캠핑장 한쪽 한두레 권역 도농교류센터 강당에서 김채영씨를 만났다. 엄마 키를 훌쩍 넘은 아들 임성윤(13)군, 남편 임정배(45)씨와 함께였다. 맨 앞자리에 나란히 앉은 김씨의 가족은 심리치료사가 편집해온 영화 7편을 보며, 영화에 나오는 가족의 장단점을 짚어나갔다. 곧이어 미술상담 시간에는 세 사람이 각자 가족의 모습을 그렸다. 짐짓 장난하는 듯 엄마를 그리지 않은 성윤군에게 상담가가 진지하게 조언했다. “무의식 중에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이 있나 봐요.” 이후 성윤군 얼굴에서 미안한 기색이 가시지 않았다.



 저녁식사를 마치자 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의 구수환 감독의 강연과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를 영상으로 감상하고, 포크록밴드 나무자전거의 콘서트가 시작됐다. 아침부터 내린 비로 쌀쌀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누구 하나 공연장을 떠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손에서 손으로 전해진 노란 양초가 캠핑장에 내린 어둠을 초롱초롱 밝혔다. 마지막 날인 23일은 대부분의 가족이 일찌감치 캠핑장을 나설 예정이었다. 간단한 체험 프로그램 외에는 아직 둘러보지 못한 보청천이며 주변 경관을 거니는 일만 남아 있었다. 몇몇 가족은 “예상보다 옥천이 수려하다”며 체류 일정을 하루 이틀 더 늘리기도 했다.



●행동캠프 자연의 품에 안겨 호젓하게 지내는 캠핑도 가끔은 지루하다. 부모가 술자리를 벌이면, 아이들은 따로 겉도는 불상사도 간혹 있다. 중앙일보와 (사)밝은청소년은 진정한 의미의 온가족 캠핑 문화를 만들고자 행동캠프를 출범했다. 이번 옥천 행사에서 선보였듯이, 기존의 캠핑 방식에 가족상담 프로그램과 토크콘서트 등 문화 행사를 곁들였고 지역주민이 주도하는 농촌 체험 프로그램과 지역 농산물 판매부스도 마련했다. 네이버 카페 ‘행복한 동행(Cafe.naver.com/happydonghaeng)’에서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밝은청소년 02-776-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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