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고개 드니, 타는 가을

올 해는 예년보다 단풍이 늦어 중부지방에서는 10월말에도 단풍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남도 단풍 1번지인 내장산 단풍은 다음달 초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이는데 이미 많은 등산객들이 내장산을 찾고 있다.




올해는 단풍 소식이 한참 늦었습니다. 예년이면 10월 초만 돼도 채 물들지 않은 단풍잎 꺼내 보이며 가을이 왔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올해는 이미 단풍이 한창 내려온 10월 말이 돼서야 처음으로 단풍 소식은 전합니다. 세상 누구보다 먼저 산야로 달려나가 임박한 새 계절을 보여드리는 게 여행 기자의 업이지만, 올해는 많이 늦었습니다. 여기엔 남모를 깊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여행기자의 1년은 철 따라 피고 지는 꽃과 함께 흘러가는 것일지 모릅니다. 뚝뚝 떨어지는 동백 바라보며 하염없이 한숨만 짓고 돌아서는 2월을 시작으로 올해도 어김없이 봉우리를 터뜨린 순천 금둔사 홍매를 기특한 눈길로 올려다보고, 산수유꽃 흐드러진 구례 산동마을에서 샛노란 봄을 호흡한 뒤, 벚꽃비 내리는 섬진강에서는 봄밤을 앓고 철쭉나무 사이에서 볼이 붉게 물들고 나서야 봄이 제 수명을 다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연초부터 소위 ‘꽃 장사’를 접었습니다. 2월 강진 백련사에서 시커멓게 얼어 죽은 동백을 지켜보고서 덜컥 겁이 났습니다. 날씨의 심술을, 그 요사스러운 변덕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겠다고 지레 포기한 것입니다. 아니 기후는 진즉에 변해 버렸는데, 자연의 변화를 채 감지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느꼈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이겠습니다. 하여 올해는 눈물 머금고 꽃에는 눈길 한 번 돌리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가을이 임박했습니다. 기상청은 올해도 단풍 예보를 발표했지만 여행 기자는 솔직히 믿지 않았습니다. 일기예보만 믿고 떠났다 허탕만 치고 돌아온 기억이 올해는 유난히 많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전국 방방곡곡에 전화를 걸어 단풍 소식을 수집했습니다. 한데 모두 제각각이었습니다. 누구는 여름 장마가 길어 단풍이 이를 것이라 했고, 누구는 9월에도 기온이 30도가 넘었는데 단풍이 제때 오겠느냐며 시큰둥하게 말했습니다. 누구는 일교차가 커 단풍이 곱겠다고 했고, 누구는 가을 가뭄이 길어 잎사귀가 채 물들기도 전에 말라 버릴 것이라고 차갑게 답했습니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여행 기자의 시름도 늘어갔습니다.



 그리하여 단풍이 온 나라에서 울긋불긋한 소요(騷擾)를 일으키는 10월 말이 돼서야 단풍 소식을 전하게 됐습니다. 적어도 오보(誤報)는 피하자는 궁색한 계산의 소산입니다. 본래 여행 기자는 계절을 앞서 살아갑니다. 봄을 실감하기 전에 봄을 노래하는 게 여행 기자의 계절 감각입니다. 단풍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 올해는 예외가 됐습니다. 소식이 늦어 죄송합니다만, 뜻밖의 소득도 있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단풍 한복판에서 단풍을 맞는 호사를 누려본 것입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남도에 내려가면 11월 중순이 지나도 단풍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단풍은 물론 꽃은 아니지만, 꽃처럼 지기 직전에 가장 곱습니다.



 글=손민호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태그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