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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다친 김에 브람스·쇼팽 다시 공부

3년 만에 내한하는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
‘머레이 페라이어 작품번호 1번’. 가상의 작품이지만 한때 있었을 음악이다. 1970년대 이후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페라이어(64)는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엔 피아노 연주보다 작곡을 더 했다. 작품들은 이제 남아있지 않지만, 스물두 살 정도까지도 작곡가를 꿈꿨다”라고 말했다.



내일 내한공연 머레이 페라이어
‘세계 최고 피아니스트’ 명성
물흐르듯 부드러운 사운드

 페라이어는 72년 세계적 권위의 영국 리즈 국제콩쿠르 우승자다. 당시 동년배 피아니스트들이 그의 출전 소식을 듣고 대부분 포기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 당대의 거장이었던 루돌프 제르킨(피아노), 파블로 카잘스(첼로) 등이 인정했던 압도적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콩쿠르에 나가기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피아노만 전문적으로 치는 길은 망설여졌다. 그보다는 무대 위에서 즉흥적으로 나오는 음악, 내가 직접 만드는 음악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이들의 출전 포기 소문은 들었지만 한번도 확인한 적이 없다”라며 웃었다.



 이처럼 창작자를 꿈꿨던 그는 뉴욕 매네스 음대에서 작곡·지휘를 전공했다. 작곡을 접은 건 20세기 이후의 현대 음악에 대한 실망 때문이다. “나와 언어가 달랐다. 조성이 사라지고 어려워지기만 하는 현대음악과 화해하기 힘들었다.” 피아노로 마음을 굳힌 그는 세계적 콩쿠르에서 우승을 했고, 지금껏 50여 장의 앨범을 내놨다.



 승승장구하던 페라이어는 90년 위기를 겪는다.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다쳤고, 이후 뼈의 모양이 변하면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다. 90년대 후반 바흐를 녹음하며 재기했지만 2005년 부상이 재발했다. 미국·영국에서 예정됐던 공연이 줄줄이 취소됐다. 이렇게 잊혀지는 듯했던 페라이어는 2년 만에 무대로 완벽히 돌아왔다.



 무대에서 보이지 않았던 동안, 그는 부단히 싸우고 있었다. “첫 번째 부상 때는 바흐의 거의 모든 작품을 이론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다. 부상이 재발했을 땐 브람스·쇼팽 등 그 동안 내가 쉽게 대해왔던 작곡가들을 새롭게 공부했다”고 했다,



 2008년 내한해 특유의 ‘물흐르 듯 부드러운’ 사운드를 들려줬던 페라이어는 29일 오후 2시 다시 서울 예술의전당을 찾는다. 바흐·브람스·쇼팽 등 힘든 시절 그가 함께했던 작곡가들의 작품을 모두 들을 수 있다. “나쁜 일에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그의 말이 떠오를 무대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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