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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ISSUE] 보기만 해도 행복한 생활용품 알레시

알레시 ‘안나 지’ 시리즈 중 스크루 제품.




예술적 생활용품의 선두주자, 이탈리아 ‘알레시’ CEO 알베르토 알레시
“주방에 깃든, 비싸지 않은 예술품 … 우리의 목표다”

‘대량 생산 소비재로 예술을!’ 이탈리아 생활용품 브랜드 알레시의 모토다. 흔한 병따개 하나도 알레시가 만들면 다르다. 사람들이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장용으로 사 모을 정도다. 알레시의 3대 CEO 알베르토 알레시를 만나 그 까닭을 짚었다.





‘두고 보기 위해’ 사는 주전자가 있다. 실제보다 작은 크기로 줄인 ‘미니어처’ 이쑤시개통과 병마개도 있다. 실제 쓸모라곤 없지만 인기는 높다. 이를 ‘작품’으로 여기고 사 모으는 매니어가 많아서다. ‘예술품’ 대접을 톡톡히 받는 생활용품들. 이탈리아 브랜드 ‘알레시’는 이런 ‘예술적 생활용품’의 선두주자다. 3대째 알레시를 이끄는 CEO 알베르토 알레시(65)를 만났다. 만난 장소는 중국 베이징이었다. 지난달 말 중국 정부가 ‘베이징 디자인 위크’ 행사의 하나로 ‘알레시 특별전’을 열고 그를 초청했다. 그는 “평범한 물건에 예술적 요소와 시적 감수성을 더한 디자인이 좋은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디자인에 시적 감수성이라니.



“예술을 봐라. 회화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이를 통해 마음이 움직이기도 한다. 생활용품 디자인에 이런 시적 요소를 불어넣어야 한다는 것이 내 디자인 철학이자 원칙이다.”



① 알레시 가족이 필리프 스타크의 레몬즙 짜개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가운데 앉은 사람이 알베르토 알레시의 아버지 카를로.(뒷줄 오른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알베르토의 사촌 스테파노, 미켈레, 삼촌 에토레, 사촌 알레시오와 알베르토 알레시. 1970년대 찍은 사진이다. ② 살바도르 달리(왼쪽)와 함께 갈고리 모양 장식을 단 빗을 의논하고 있는 알베르토 알레시의 모습.
-그렇다면 ‘생활용품’이 예술이란 얘긴가.



“공이나 접시를 예로 들어보자. 옛날부터 공은 공 모양이었고 접시는 접시 역할을 하도록 넓고 평평한 형태였다. 지금까지 마찬가지다. 수백, 수천 년 동안 변함없는 모양이다. 여기에 디자인이 가미되었을 때, 즉 ‘예술적 요소’가 들어가야 좋은 디자인 생활용품이 나온다는 얘기다.”



-알레시 제품이야 세계적 산업 디자이너들이 만들고 있으니 예술성을 갖출 수밖에 없지 않나.



“그들이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1000개의 디자인을 한다면 정작 그 디자인이 상품이 돼 나오는 것은 한두 개뿐이다. 굉장히 낮은 성공률이다. 하지만 이런 실패, 이탈리아어로 ‘피아스코(fiasco)’에서 우린 많은 것을 배운다.”



-어떤 실패 사례가 있나.



“아버지(카를로 알레시) 밑에서 일하기 시작했던 1970년대 나는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갈고리가 달린 빗’을 만들고 싶어 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추진했고 갈고리 5만 개를 생산했다. 그런데 제품 출시를 얼마 앞두고 아버지가 만류했다. 견본을 보며 ‘팔릴 만한 걸 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포기했다. 이 갈고리 생산분은 여전히 우리 창고에 가득 쌓여 있다.”



-그걸로 끝인가.



“물론 아니다. 당시만 해도 스테인리스 스틸로 갈고리 모양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술이 그만큼 발달하지 못해서다. 정확한 곡선을 그리도록 깎아내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하지만 5만 개의 갈고리를 만들면서 우리 공장의 기술력이 향상됐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디자인’이 ‘더 나은 기술’로 이끈다는 걸 알게 됐다.”



최근 중국 베이징 시내 ‘이더 스페이스 갤러리’에서 열린 ‘알레시 특별전’에서 알베르토 알레시가 청중에게 디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건 너무 뻔한 수사다.



“그래도 진실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알레시 일가가 모인 자리에서 난 그 갈고리로 열쇠고리를 만들어 모두에게 선물했다. ‘실패를 통해 기술적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었고 또 이것이 우리 성공의 발판이 돼주었다’는 걸 모두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다.”



-그렇다 해도 사업가로서 실패는 큰 위험 부담일 텐데.



“실패 역시 내 업무의 일부분이다. 모든 디자인엔 성공과 실패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경계는 정말 묘한 것이다. 경계를 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실패를 많이 하게 되면 희미했던 경계선이 조금 더 뚜렷하게 보인다.”



-성공 사례는 뭔가.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는 늘 ‘난 안 팔리는 것만 디자인한다’고 하고 다녔다. 우리와 작업할 때였다. 그러나 1994년 내놓은 ‘안나 지 스크루(와인 병따개)’는 인기가 매우 좋아 전 세계에서 1분에 한 개꼴로 팔린 ‘밀리언 셀러’가 됐다. 생활용품인데도 팬이 생겨 병마개·라이터·도시락 등이 시리즈로 나왔고, 남자친구 ‘알레산드로 엠’도 만들게 됐다. 너무 잘 팔린 디자인을 했으니 멘디니의 말대로라면 ‘예외’ 사례인 셈이다(웃음).”



-‘알레시’란 브랜드엔 자체 디자이너가 없다. 왜 디자이너를 고용하지 않나?



“그들이 고용되길 원하지 않아서다(웃음). 그들을 고용하기보다 자유롭게 디자인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는다. 훌륭한 디자이너들이 다른 경험과 환경에서 디자인을 창조하고 거기서 얻은 명성으로 알레시와 협업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알레시의 역할은 무엇인가.



“디자이너의 창의성이 실제로 대중적 소비자에게 팔릴 수 있게 만드는 ‘상품화’가 우리 역할이다. 말하자면 ‘중재자(mediator)’다.”



-‘이탈리아 디자인’이 생활용품 디자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비결은 뭔가.



“전쟁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생활용품 업계가 어려움을 겪었다. 사람들이 소비를 하지 않아서다. ‘새로운 수요’를 이끌어내려면 독창적이고 더욱 눈에 띄는 제품 카탈로그를 만들어내야 했다. 모든 회사가 이런 전략을 썼다. 그 결과가 지금 ‘이탈리아 디자인’의 성장을 이끈 힘이다.”



-알레시에서 당신이 추구한 것은 무엇이었나.



“‘생활용품으로 진짜 예술을 느끼게 하자. 대량생산 소비재로 예술을!’ 이게 내 목표였다. 그래서 살바도르 달리와 작업했던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에 소장할 수 있는 예술품을 만들고 싶어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도 생활용품인데 ‘예술성’을 강조하다 보니 주방이나 식탁에서 알레시 제품만 너무 튀어 보이지 않나.



“우리 제품이 탁월한 감각으로 ‘현대성’이란 걸 잘 해석했다고 본다. 그러니 알레시 제품은 그 어떤 주방에도 행복과 시적인 감성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우아하게 꾸민 식탁에 토끼 모양으로 된 형광색 플라스틱 ‘버니 이쑤시개통’을 두는 것은 어색할 것 같다.



“무슨 소리. 테이블 위 고전적이고 우아한 것 옆에 재미난 걸 둬봐라. 왜 안 된다고 생각하나. 상반된 분위기의 제품을 한데 두는 것, 이것이 알레시의 디자인 접근법이다.”



-그럼 주방 전체를 알레시의 독특한 제품으로만 채운다 해도 동의하겠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재미있는 작품들. 생각만 해도 즐겁다.”



-생활용품일 뿐인 알레시를 유독 좋아하고 심지어 미니어처를 수집하는 사람까지 있는 이유가 뭘까.



“디자이너 필리프 스타크는 알레시를 ‘행복을 파는 상인’이라고 얘기한다. 나는 디자인이 우리 시대 가장 대표적 예술 형태라고 생각한다. 회화나 조각처럼 전통적 개념의 예술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디자인이란 게 ‘본래 대단히 예술성을 갖춘 것(a supreme artistic nature)’인 걸 어쩌겠나.”



-알레시 브랜드로 생활용품 외에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패션 세계를 탐험해보고 싶다.”



베이징=강승민 기자



단발머리 안나, 무한 반복 킹콩, 거미 모양 레몬짜개 … 알레시는 히트작 제조기



‘알레시’는 디자인 생활용품 분야에서 히트작이 많은 브랜드다. 산업디자인계의 거장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안나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1977년부터 알레시와 협업한 멘디니는 94년 발레리나 ‘안나’를 내세워 코르크 따개를 만들었다. ‘안나’는 멘디니가 상정한 가상의 인물 이름이다. 단발머리, 동그란 눈과 미소 짓는 입만 형상화한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밋밋한 코르크 따개의 얼굴로 디자인됐다. 시장에서 인기가 높아 이후 병마개, 후추통, 도시락통, 주방용 타이머 등 시리즈가 됐고 9년 후 안나의 남자친구 격인 ‘알레산드로 엠’도 시리즈로 나왔다. 알베르토 알레시에 따르면 “팬들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멘디니가 알레시에 끌어들인 건축가 스테파노 조반니와 기도 벤투리니도 히트작 제조기다. 대표로 꼽히는 것은 89년 처음 선보인 ‘킹콩 시리즈’로, 단순화한 사람 모양을 무한 반복시킨 접시가 가장 유명하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접시의 가장자리가 ‘작은 킹콩’으로 명명한 사람 모양으로 뚫려 있다. 알베르토 알레시는 “단순한 디자인이 이토록 성공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킹콩 시리즈’ 혹은 ‘지로톤도’라 불리는 이 디자인은 접시·쟁반 외에도 열쇠고리나 목걸이 등에도 사용됐고, 아직도 계속 상품으로 개발되고 있다. 스테파노 조반니는 ‘생활용품 디자인에 색깔 혁명을 일으켰다’고 평가받는다. 알레시와 협업해 내놓은 형광색 플라스틱 제품이 조반니 디자인이다. 긴 토끼 귀로 우리나라 소비자에게 널리 알려진 ‘매직 버니 시리즈’가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필리프 스타크도 알레시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프랑스 출신의 산업디자이너 스타크는 다리가 긴 거미를 연상케 하는 ‘레몬즙 짜개’로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 90년 선보인 이 기구는 출시 10주년을 맞아 금도금 한정판 제품이 생산되기도 했다. 알베르토 알레시는 “실제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서재에 전시해도 훌륭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알레시=1921년 이탈리아 노바라 지역 오메냐 마을에서 조반니 알레시에 의해 설립됐다. 선반을 만들던 장인 조반니는 1930년대 구리·황동·니켈·은 등으로 주방 및 생활용품을 만들어 명성을 얻었다. 1930년대 초 산업디자인을 공부한 조반니의 장남 카를로가 사업에 합류해 디자인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생산되고 있는 ‘스테디 셀러’ 주전자 ‘봄베 시리즈’가 카를로의 작품이다. 3세인 알베르토는 카를로의 아들이다. 슬하에 딸 둘을 둔 알베르토는 인터뷰에서 “딸들이 사업을 잇지 않더라도 ‘알레시’ 가문의 후손이 많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 후손 중 누군가 사업을 더욱 발전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지난해 9월부터 부루벨코리아가 들여와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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