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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박제가 된 10·27 비상계엄

이정헌
jTBC 사회1부 차장
문서철 번호 FA0000885, 비상계엄선포(대통령공고 제66호)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대통령 권한대행 최규하’-.



 최근 국가기록원의 한 열람실에서 빛 바랜 문서 하나를 발견했다. 1979년 10월27일 새벽 4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문서의 원본이다. 꼭 32년 전 오늘의 기록이다. 유신 체제를 무너뜨린 10·26 직후에 선포된 비상계엄. 마치 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채 박물관 구석에 서 있는 박제 호랑이를 보는 듯했다. 살아서는 동물의 왕국을 호령하던 호랑이.



 제일 먼저 눈이 간 곳은 연이어 서명된 ‘최규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과 국무총리 두 군데 서명한 것이다. 최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처음 한 일이 비상계엄 선포다.



 이어 신현확 경제기획원장관과 박동진 외무부 장관, 노재현 국방부 장관 등 모두 22명이 서명했다. 유일하게 총무처 장관의 서명이 빠져 있다. 그는 무슨 일 때문에 비상 국무회의에 불참했을까. 심의환 총무처 장관은 불과 나흘 전 사망, 역사의 현장에 참석할 수 없었다.



 비상계엄 선포로 모든 언론보도는 사전검열을 받아야 했고, 전국 대학은 일제히 휴교에 들어갔다.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통행금지 시간이 확대됐다. ‘정당한 사유 없는 직장이탈 및 태업행위를 금한다’는 조항도 있었다. ‘대통령 유고’라는 비상사태에서 불가피하게 내려진 계엄 선포, 그 이후 역사는 소용돌이친다.



 한 달 보름 뒤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신군부에 체포되는 12·12 사태가 일어났다. 다음 해 ‘서울의 봄’에는 대학가의 시위가 전국으로 번졌고, 5월17일 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됐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이어 전두환 정권의 탄생까지 굴곡진 한국 현대사가 이어진다.



 당시 서명자 22명은 비상계엄이 또 다른 군사정권의 탄생을 불러오고 역사를 되돌릴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최규하 전 대통령을 비롯해 상당수 국무위원이 세상을 떠났다. 역사의 한가운데 있었던 최 전 대통령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실망스럽다. 얼마 전 유가족이 소장하고 있던 각종 기록을 국가기록원에 넘긴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10·27 비상계엄과 이후 일련의 사건은 지금 몇 장의 기록으로만 남아 있다. 역사는 박제가 되어선 안 된다. 역사는 영원히 살아 있어야 하고 끊임없이 교훈을 줘야 한다. 잘못된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시작만 있을 뿐 중간 과정은 끊겨버린 역사의 단절. 당시 현장에 있었고 진실을 알고 있는 증인들은 이제 입을 열어야 한다.



이정헌 jTBC 사회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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