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삶의 향기] 진정 외로운 사람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일 년 전 번잡한 도시가 싫어서 쉴 곳을 찾아 양평 한 외진 곳에 흙집을 지었다. 돈은 벌어야 생활을 할 터이니 아주 서울을 떠날 수는 없는 처지. 할 수 없이 양평과 서울. 두 곳에 양다리를 걸치기로 했다. 주말만 되면 주중에 일하느라 지친 몸을 배터리 나간 전화기 충전기에 꽂아 충전하듯 쏜살같이 그곳으로 달려간다. 내게 배터리 충전기 역할을 톡톡히 하는 수녀 친구는 내 오두막 흙집 바로 옆 수녀원에 계신다. 동갑이라 슬쩍슬쩍 반말도 하고 마음속 얘기도 풀어놓는 사이다. 주말에 갈 때면 수녀님 자유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산책도 하고 종종 라면도 같이 먹는다. 지난봄에는 쑥을 같이 뜯다가 보랏빛 쑥부쟁이 꽃을 따서 귀 옆에 서로 꽂아 주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어쩌다가 바비큐 고기를 수녀님께 드리면 “이런 건 내게 안 맞나 봐. 먹을 때마다 탈이 나서 무공해 야채만 먹어” 한다. 하긴 기름진 음식을 즐기던 내 몸도 이제는 그만 먹겠다고 혈당과 혈압이 오르락내리락 말을 하더라. 가끔씩 엉뚱한 질문도 한다. 2000 만원도 안 되는 차를 “이거 일억 넘어?” 하기도 하고. 십만원 주고 산 발마사지 기계를 보고 “이거 백만원은 할 거야, 그치?” 하기도 하고. 10만원 넘는 단위는 감이 없나 보다.



 얼마 전에 산책을 하다가 내가 물었다. “혼자 늘 기도만 하다 보면 외롭지 않아?” “외롭지. 하지만 그때마다 내 자신 속의 주님을 만나니 외로움도 내겐 축복이야.” “맞아, 늘 바쁘게 살면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긴 하지.”



 그로부터 한 달 뒤. 수녀님이 다른 곳으로 가게 되어 헤어지는 날 아침. 기분이 우울했다. 앞마당에 떨어진 손톱만 한 밤과 고구마를 함께 삶기 시작했다. 껍질 까기 힘든 것이 까기 쉬운 것보다 더 맛있다. 고구마랑 바나나보다 밤이랑 꽃게가 더 맛있는 걸 보면 말이다. 고생한 보람은 확실히 있나 보다. 삶은 밤을 숟가락으로 열심히 파 먹고 있는데 수녀님이 책을 한 권 가슴에 안고 나타났다. 이틀 후에 간다며 내미는 책의 표지에는 ‘내가 선택한 가장 소중한 것’이라 적혀 있다. 제목만으로도 벌써 뭉클하다. 나도 꽃 모양의 양초와 하얀 소국 화분을 내밀었다. “아, 냄새 좋다. 봄부터 소쩍새가 울 만해, 그치?” 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내가 준 소국 꽃가지 몇 개를 따서 내민다. “예쁜 유리컵에 담아놓고 나 생각해.” 헤어지는 순간은 짧을수록 좋다 했던가. 서로의 눈 속에 뭔지 모를 수분이 늘어감에 따라 “알았어, 나중에 한번 찾아갈게. 철 지난 하얀 국화꽃 들고.” “난 자기 위해서 기도할게.”



 지지고 볶고 싸우고 고소하고. 결혼이 뭐 그리 남는 장사이기야 하겠느냐만은 나이 든 수녀님들 뒷모습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이 쓸쓸하다. 신부님들은 술도 잘 드시고 여자 신자들과 대화도 많이 하던데. 같은 여자라 내가 여자 편인가. 수녀님과 나.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주고받았다. 속세에 찌들고 기름진 것이나 입에 달달한 것을 난 그녀에게 주었고, 그녀는 가슴 한 귀퉁이에 영영 지워지지 않을 말을 내게 새겨주고는 떠났다.



뒤돌아 가는 그녀에게 한마디 던졌다. 뭐든 힘든 일이 있으면 나를 불러 달라고. 뒤돌아서서 미소를 짓는다. 뭐든 힘든 일이 생기면 그녀는 기도를 할 것이다. 그녀 뒤통수에 던진 내 말의 속뜻은, 뭐든 힘든 일이 내게 생기면 그녀를 부르겠다는 말이었던 게다. 진짜 외로운 사람은 바로 나였다.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