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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화백의 세계건축문화재 펜화 기행] 진주성과 촉석루

종이에 먹펜, 26×60㎝, 2011


첫 손자의 작명을 승제 한정훈 선생에게 부탁드렸습니다. 작명소를 운영하지는 않지만 이름만 보고도 문제점을 족집게처럼 맞혀 놀란 적이 여러 번 있었거든요. 생년월일을 보고는 “요즈음 태어나는 아이들 사주가 무척 좋은 걸 보면 한국이 아주 잘살게 될 모양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명한 외국 연구기관이 ‘한국이 세계 2대 강국이 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도 있습니다. 국운이 좋아서일까요. 국민의 특성이 강하기 때문일까요.

2만 왜군 물리친 진주대첩
곳곳에 서린 의병의 혼



 6·25전쟁 때 주한미군사령관이었던 밴플리트 장군이 “서구 군대는 패하면 뿔뿔이 흩어져 버리는데, 한국군은 패잔병들이 모여 부대를 만들고, 다시 패해도 또 모여 싸운다”라고 하였습니다. 오합지졸이었던 한국군은 이런 정신으로 단련되어 국공내전을 거치며 전투 경험이 쌓인 중공군과 맞겨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 관군이 패하고 임금은 피란을 갔어도 백성들이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킵니다. 1592년(선조 25) 10월 2만여 명의 일본군이 진주성을 공격합니다. 조선 관군과 의병 3800여 명이 6일간의 전투 끝에 이를 물리칩니다. 백성들까지 나서 돌을 던지고 끓는 물을 부으며 싸워서 성 안에 기와와 돌이 남아있지 않았답니다. 이를 ‘진주대첩’이라 합니다.



 남강변 언덕 위 촉석루는 당시 전투 지휘소였습니다. 1241년(고려 고종 28)에 창건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18년(광해군 10)에 중건하였으나 6·25전쟁 때 또 불에 타 1960년 다시 지은 것입니다.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넓이가 20칸인 큰 누각입니다. 진주성 안에는 임진왜란 유물이 많습니다. 찬찬히 둘러보며 우리 민족의 미래를 상상해 보세요.



김영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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