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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부는 영성(靈性) 바람 <중> 되살아난 『월든』의 힘

미국 보스턴의 월든 호수와 숲은 생태와 영성의 순례지였다. 할머니부터 손녀까지 대가족도 보였고, 인근 사립 고등학교에서 단체로 이곳을 찾기도 했다.

미국 보스턴에서 북서 방향으로 20분 정도 달렸다. ‘생태주의 운동가이자 영성가’로 불리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62)가 살았던 월든 호수가 나타났다. 하버드대에서 멀지 않은 거리였다. 호수는 맑고 숲은 풍성했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소로는 홀로 숲에 들어갔다. 직접 오두막을 짓고 2년간 살며 자연의 삶, 숲의 영성을 글로 옮겼다. 그게 법정(法頂·1932~2010) 스님이 생전에 사랑했던 책 『월든』이다. 데일 카네기는 “불멸의 책”이라고 평했고, 마하트마 간디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소로의 숲 생활은 단순한 귀농 차원이 아니었다. 소로는 “내가 월든 호수에 사는 것보다 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는 없다”고 고백했다. 그가 월든에서 토해냈던 명상의 눈, 영적인 감성은 미국 역사를 관통하는 영성의 주춧돌이 됐다. 이달 초 두근대는 가슴으로 월든의 숲에 도착했다.

 숲으로 들어갔다. 소로의 오두막이 있었다. 좁은 공간에 침대 하나, 책상 하나, 난로와 의자가 있었다. 소로가 살던 당시의 모습이었다. 소로는 여기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두 번 나며 숲과 호수에 깃든 ‘영원’을 만났다. 오두막 뒤에는 지금도 장작이 높다랗게 쌓여 있었다. 150년 전에는 훨씬 외진 숲이었을 터다.

 소로는 숲에서 시간과 영원을 묵상했다. “시간은 내가 낚시질하는 강을 흐르는 물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 강물을 마신다. 그러나 물을 마실 때 모래 바닥을 보고, 이 강이 얼마나 얕은가를 깨닫는다. 시간의 얕은 물은 흘러가 버리지만 영원은 남는다. 나는 더 깊은 물을 들이켜고 싶다. 별들이 조약돌처럼 깔린 하늘의 강에서 낚시를 하고 싶다.” 소로가 숲에 들어온 이유는 명쾌했다. ‘더 깊은 물’을 마시고, ‘영원’을 낚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소로의 ‘영원’은 관념에 머물거나, 추상에 함몰되지 않았다.

소로가 살았던 오두막의 내부. 가구가 단출하다.
 소로는 딱 하루 감옥에 수감된 적이 있었다. 월든의 오두막에서 살기 시작한 1845년 늦여름이었다. 흑인 노예제도에 반대했던 소로는 항의의 표시로 세금 납부를 거부했다. 하루는 구둣방에 맡겨 놓은 신발을 찾으러 마을에 들렀다가 체포돼 수감됐다. 친척이 몰래 세금을 대신 내는 바람에 이튿날 풀려나긴 했지만 말이다. 소로는 자신의 생각을 ‘시민의 불복종’이란 글로 발표했고, 톨스토이와 간디는 여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저항운동도 소로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시민권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소로는 노예제도에 반대했다. 월든의 숲과 호수에 살았던 숱한 생명에 보냈던 그의 시선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월든 호수에는 자잘한 물고기가 활기차게 놀고 있었다. 숲에는 ‘삐~옥 삐옥’하며 수시로 새들이 울어댔다. 소로는 월든의 평화를 이렇게 노래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던 그 봄날에도 월든 호수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안개와 남풍, 봄비를 맞으며 얼음이 녹고 있었을 것이다.”

 숲 길을 걸으며 묵상했다. 그랬다. 어찌 보면 월든 호수는 지금도 ‘에덴동산’이었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 먹고 동산에서 쫓겨났다. 나와 자연, 에고와 우주를 둘로 쪼개버렸기 때문이다. 소로는 월든의 숲에서 그런 ‘쪼개짐’ 이전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래서 소로는 자연의 속살, 월든의 속살로 녹아 들었다.

 소로 당시 호수 근처로 열차가 지나갔다. 소로는 “열차는 호수를 보기 위해 멈추는 일이 결코 없다”고 지적했다. 허둥대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그렇다. 열차처럼 앞만 보고 달린다. 칙칙폭폭, 정해진 시각에 정해진 역에 닿고자 필사적으로 달린다. 그렇게 달리다가 ‘월든의 숲과 호수’를 놓치고 만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직접 지어서 살았던 오두막. 뒤편의 창고에는 장작이 쌓여 있다.
 오솔길을 걸었다. 소나무 가지에 앉아서 ‘뿌르륵, 뿌르륵’ 산비둘기가 울었다. 비둘기는 열차처럼 달리지 않았다. 그 위로 내리는 가을 햇살도 그랬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풍뎅이도 앞만 보며 살진 않았다. 그들은 월든의 숲, 월든의 자연과 소통하며 살았다. 그래서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도 월든의 호수는 ‘본래의 온전함’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소로는 자연을 통해, 호수를 통해, 숲을 통해, 다람쥐를 통해 그런 온전함 속으로 녹아들고자 했다. 그것이 소로에겐 수행의 길이었다. 다시 말해 신(神)을 만나는 통로였던 셈이다.

 소로는 그 길로 가는 여정을 “Simplify! Simplify!(소박하라, 소박하라)”라고 압축했다. 150년 전에 살았던 이들도 당시에는 ‘현대인’이었고, 2011년을 살아가는 우리도 ‘현대인’이다. 소로는 “우리 뉴잉글랜드 주민들이 비천한 생활을 하는 이유는 사물의 표면을 꿰뚫어보는 눈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고 진단했다. 15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진리를 멀리서 찾는다. 소로는 “우주의 외곽 어디에, 가장 멀리 있는 별 너머에, 아담의 이전에, 혹은 최후의 인간 다음에 진리가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아니다. 이 모든 시간과 공간과 사건은 ‘지금 여기’에 있다”고 선언했다. 지금, 그리고 여기!

 오두막에서 나와 월든 호수로 갔다. 30~4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마이애미에서 온 미국인 가족이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할머니부터 손녀까지 대가족이었다. 아이들은 호수에서 피라미를 잡고, 할머니는 지긋한 눈으로 월든 호수의 물결을 바라봤다. 월든 호수는 미국의 ‘영적 고향’이다. 연간 방문객이 50만 명에 달한다. 특히 여름철에는 혼잡을 방지하기 위해 일일 방문객 1000명, 방문차량 300대로 제한할 정도다.

 돌아가는 길에 숲 속의 월든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소로의 저서와 티셔츠 등을 팔고 있었다. 티셔츠에 새겨진 큼지막한 글귀가 눈에 확 들어왔다. “Simplify! Simplify! (소박하라! 소박하라!)” 그건 월든의 숲과 호수의 바닥까지 내려가 소로가 길어 올렸던 깨달음의 정수였다. 또한 순례객을 향해 던지는 삶의 외침이기도 했다. 이달 초 뉴욕에서 젊은이들이 모여 월스트리트의 탐욕과 시스템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소로의 메시지는 1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관통한다. “Simplify! Simplify! (소박하라! 소박하라!)”

보스턴=글·사진 백성호 기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년 미국 메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생각이 깊었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철학자·시인·수필가로 활동했다. 45세가 되던 1862년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인 월트 휘트먼(1819~92)과 함께 19세기 미국 초절주의(超絶主義) 사상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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