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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카다피를 미화했던 고은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독재자 최장(最長) 집권 기록은 김일성과 카스트로가 보유한 49년이다. 이를 깰 수 있는 유일한 이가 카다피였다. 그런데 그는 42년에서 멈추고 말았다. 20세기 이후 독재자 중에서 그는 가장 비참하게 죽었다. 차우셰스쿠도 후세인도 죽기 전에 그렇게 개처럼 끌려 다니진 않았다. 자신이 죽였던 수천 명 앞에서 카다피는 지금 천상(天上) 재판을 받고 있을 것이다.



 카다피가 세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쿠데타 10년 만인 1979년이다. 카다피는 70년대 중반부터 아랍의 반(反)미국·이스라엘 강경노선을 주도했다. 급기야 79년 카다피 지지 시위대가 트리폴리에 있는 미국대사관에 불을 질렀다. 이듬해 미국은 단교(斷交)하고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렸다. 리비아에서는 79년 1월부터 북한 조종사 100여 명이 소련제 미그23을 조종하는 훈련에 참가하고 있었다. 뉴욕 타임스 보도로 리비아는 한국인에게도 주목받는 나라가 됐다.



 반미국·이스라엘 바람은 80년대 후반 들어 집중적으로 피를 뿌리기 시작했다. 85년엔 게릴라들이 로마·빈 공항 이스라엘 항공사를 동시에 습격해 17명이 죽었다. 86년 4월엔 미군이 드나드는 베를린 디스코텍에서 폭탄이 터졌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카다피를 ‘중동의 미친 개’라고 부르고 트리폴리를 폭격했다. 카다피 관저가 불에 탔다.



 카다피는 독하게 맞섰다. 88년 12월 런던에서 뉴욕으로 가던 팬암 여객기가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폭파됐다. 모두 270명이 죽었다. 미국은 카다피를 배후로 단정했는데 몇 년 후 이는 사실로 드러났다. 카다피 비행기 테러 1년 전인 87년 12월 김일성·김정일 정권은 대한항공 여객기를 폭파해 115명을 죽였다. 86~88년 카다피와 김일성의 테러로 세계 지도 곳곳에 피가 흥건했던 것이다.



 새로운 해가 떠오른 89년 1월 고은 시인은 한겨레신문에 ‘무아마르 카다피 대령에게’라는 칼럼을 썼다. 그는 미국의 카다피 공격을 일방적으로 비난했다. “당신(카다피)은 까딱했으면 지난해 ‘레이건 람보’한테 죽을 뻔했다.” “미국은 세계 경찰국가의 못된 패권으로부터 그들 자신의 도덕을 회복해야 한다.” “미 해군기가 리비아기를 격추시켰다. 자기네 화학무기는 제쳐두고 리비아 화학무기 생산을 트집 잡아 이런 폭행을 저지른 것이다.” 고은은 한·미 연합 ‘팀스피리트’ 훈련도 비난했다. 최루탄에 대해선 “화학무기와 다름없는 한국의 악질”이라고 표현했다.



 고은은 카다피를 옹호하고 미화했다. “당신이 아직도 대령 계급장을 고수하는 괴벽을 퍽 고무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가 글을 쓴 89년이면 카다피 집권 20년이었다. 고은은 박정희 18년 집권은 비난하면서 테러리스트 독재자 20년은 우호적으로 평가했다. 수백 명을 죽인 카다피와 김정일 테러엔 침묵하면서 미국의 응징과 한·미 연합훈련은 매도했다.



 고은은 2년 전 연작시집 『만인보(萬人譜)』를 완성했다. 한반도 민초 3000여 명을 23년에 걸쳐 노래한 대작이다. 그런데 그런 고은의 인생과 문학에 북한에서 신음하는 2000만 민초는 없다. 2년 전 신문 인터뷰에서 그는 북한주민의 참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파편적으로 들려오거나 소문으로 알 수가 없죠. 내가 현장에 가보지 않는 한….” 수많은 탈북자가 증언하고 동영상과 사진이 있는데도 그는 ‘소문’이란다.



 카다피는 여객기를 폭파해 270명을 죽였다. 감옥에 있던 정적(政敵) 수백 명은 죽여서 땅에 묻었다.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는 전투기를 동원해 폭격했다. 이 모든 일에 대해서도 고은은 “현장에 가보지 않는 한” 모른다고 할 것인가. 그에게 카다피는 여전히 대령 계급장을 고집하는 서민형 지도자인가.



 고은은 2년 전 인터뷰에서 “변한다는 것이야말로 진리”라며 “나는 10년 전의 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카다피를 미화했던 22년 전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때의 나는 누구였고 지금의 나는 무엇인지 말해야 한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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