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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시장선거, 분열 아닌 개혁의 계기 되어야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
서울시장 선거가 모레로 다가오면서 차츰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어느 쪽이 이기고 질 것인가를 걱정해서가 아니다. 경제대란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위기상황에서 이번 선거가 국민의 힘을 모으기보다는 분열을 조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우리의 민주정치가 전신마비를 면하려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여야 정당의 획기적인 개혁이 시급한 것이 사실이지만 과연 그것이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장담을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그러기에 내년 총선과 대선의 전초전 같은 서울시장선거가 국민 통합보다는 분열의, 정당 개혁보다는 퇴화의 촉진제가 돼가는 것 같아 우려되는 것이다.

 선거는 그 과정에서 각기 편이 갈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기(武器) 없는 전쟁이 선거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민주국가에서의 선거는 나라 혹은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누가 운전석에 앉아 기수역할을 할 것인가를 합의된 규칙에 따라 선출하는 필수과정이다. 선거에 임하는 궁극적 목표와 명분이 같다면 편을 나누어 싸운다고 해도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기에 어느 편이 이기고 지든 사생결단을 해야 할 이유는 없다. 또한 선거규칙이 공평하고 그 집행이 공정하여 스포츠맨십을 발휘하는 페어플레이가 일상화된 선거라면 국민 분열의 여지도 극소화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 특히 서울시장선거를 앞두고 국민적 불안이 가시지 않는 것은 과연 우리가 같은 목표를 향하여 전진하고 있는지, 선거절차에 대한 공정성과 서로의 페어플레이에 대한 신뢰가 있는지에 대한 국민적 믿음이 흔들리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는 한국의 민주정치, 특히 정당정치를 통한 대의정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하였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어렵사리 이룩한 우리의 민주정치인가. 1987년 민주화의 고비에서 개정된 헌법에서도 좌(左)나 우(右)의 독재로 흐르기 쉬운 직접민주주의를 배제하고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이 의회와 정당을 통해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대의민주주의의 틀을 택하였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의회정치와 정당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나 기대가 크게 추락한 것은 한국적 대통령중심제의 관행으로 말미암은 측면도 없지 않지만 ‘누가 누구를 대표하는가’라는 기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지극히 부실하였던 결과라 하겠다.

 우리 정치사에는 지역대표성에 의존함으로써 지역갈등의 역학을 여야 정당이 각기 권력충전의 방도로 사용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고루한 지역갈등이란 악습을 세계화와 민주화의 세례를 받은 한국인, 특히 젊은 계층이 답습할 리가 있겠는가. 더욱이 이데올로기시대의 퇴조와 남북대결 상황은 이념의 대결을 앞세운 정당의 대표성 확보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우리의 여야 정당은 앞으로 어느 집단, 어느 계층을 대표할 것인가에 대한 검토와 선택의 과정을 발 빠르게 밟아 나가야 할 비상 국면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영국 노동당은 어떻게 하여 노동조합을 중심세력으로 양당제의 한쪽을 맡은 안정된 정당이 될 수 있었는지, 일본의 자민당은 어떻게 농촌지역에 탄탄한 기반을 구축하여 50년 장기집권을 이룰 수 있었는지를 포함한 여러 사례를 벤치마킹하거나 참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미 세계화와 정보화의 진도가 상당히 앞서 나간 우리 한국의 경우엔 대부분의 국민이 성별·연령·재산 및 수입·교육·종교·지역 등 전통적 변수 한둘에 얽매이기보다는 여러 변수의 복합으로 정치성향이 결정되는 단계에 이르렀으므로 정당의 국민대표성 문제는 새로운 차원에서 고려돼야 할 여지가 있다.

 ‘정당이 누구를 대표하는가’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달성하겠는가’라는 문제다. 빈부격차를 줄이고 국민복지를 빠른 속도로 향상시키겠다는 목표설정에 있어서는 한국의 여야 정당 간에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어떻게 그 목표를 달성할 것인가, 어떻게 재정적자나 무역적자를 예방하고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 그러한 목표를 달성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이나 전략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우리 국민이 그러한 정책제시나 이에 대한 책임 있는 약속을 결코 가볍게 보지 않는 시대가 왔음을 정당개혁 과정에서 철저히 유념해야 될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여야 모든 정당은 이번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머뭇거리지 말고 정당개혁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겠다. 민주화 25년이 되는 내년 2012년을 한국의 민주정치·대의정치·정당정치가 본궤도에 오르는 새로운 출발의 해가 될 수 있도록 모두 분발해 주길 기대한다.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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