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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0 다시 세상으로] 배혜정 배혜정도가 대표

4060 다시 세상으로 육아와 내조, 그리고 살림에 ‘올인’하며 살아온 주부들. 마흔이 넘어서면서 삶의 고민이 커진다. 남편도, 자식도 옆에 있지만 내 존재를 대신 증명해주진 않는다. 그렇다고 쇼핑으로, 모임으로 시간을 보내버리기엔 삶이 너무 길다. 그 고민에 대한 답을 늦깎이로 일을 찾아 ‘성공한 프로’로 자리잡은 여성들에게 들어본다. 새로운 길을 열망하는 ‘4060’에게 롤모델이 될 여성들이다.





“마흔 즈음, 뭔가 가치 있는 일 하고 싶더군요”

배혜정(55) 배혜정도가 사장은 전통주의 대가 배상면 국순당 회장의 외동딸이다. 걸음마를 뗄 때부터 술 익는 향을 맡으며 자라 스물셋에 결혼했다. 건설회사 해외영업 담당이었던 남편을 따라 일본·파키스탄 등 여러 나라에서 전업주부로 살았다. 1999년 한국으로 들어와 1년 남짓 아버지로부터 막걸리 빚는 기술을 배운 뒤 사업을 시작했다. 남들이 쓰다 버린 기계 다섯 대를 가져와 남편 회사인 ㈜한국효소 한쪽에 연구실을 차린 게 출발이었다. 이후 영세 사업장이 겪는 갖은 고비를 골고루 경험했다. “무임승차는 없다”는 아버지는 딸에게 막걸리 빚는 기본기와 철학만 물려줬을 뿐 더 이상의 후원은 없었다. 그렇게 10여 년. 그는 이제 성공한 최고경영자(CEO)로 꼽힌다. 그동안 고급 막걸리 ‘부자(富者) 16도’를 비롯해 부자 10도와 13도, 자색고구마 막걸리, 우곡주, 배혜정도가 생막걸리 등 다양한 제품을 출시했고, 일본으로 수출하는 길도 열었다. “막걸리가 와인이나 사케처럼 세계적으로 당당히 대접받는 술이 되기까지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는 그를 만났다.



글=문은영 객원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40대 전업주부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계기는.



 “원래 집에서 편하게 지내는 것도, 멋 부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딸로, 남편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사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나, 배혜정의 삶을 살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큰 바위 얼굴』의 어니스트처럼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면서 ‘훌륭한 사람’이란 목표는 ‘가치 있는 삶’으로 바뀌었다. 마흔 무렵 인간 배혜정으로서의 가치 있는 삶에 대한 갈망이 강렬해졌다. 이때 아버지가 ‘막걸리’로 내 마음에 불을 붙였다.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주이지만 싸구려 술로 여겨졌던 막걸리를 다시 일으켜 명품으로 선보이는 것, 바로 그것이 내가 가치 있게 살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전업주부였을 때 사업을 염두에 두고 준비한 게 있었나.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기회라 생각하고, 끊임없이 공부하고자 했다. 외국 생활을 하면서 그 나라에서 배울 수 있는 건 무엇이든 꼭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먼저 언어를 배워야 했다. 둘째를 갓 낳은 후 일본에서 살게 되었을 땐 독학으로 일본어를 배웠다. 일본어 교본을 달달 외우고 NHK교육방송을 24시간 틀어 놓았다. 분유를 타면서도, 화장실에 가서도 입으로는 일본어를 중얼거렸다. 일본어를 배운 뒤엔 5년 정도 디자인 공부를 했다. 일본에 살며 장인 문화와 사케를 접할 수 있었던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또 다양한 음식을 맛보며 음식과 술의 상관관계도 알게 됐다. 파키스탄에서는 자선단체 ‘세인트 조셉’에서 일했다. 자선단체에서 여성 리더들의 사고방식을 눈여겨보았다.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자주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봉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허례허식 없는 실용적인 사고가 인상적이었다.”



-왜 하필이면 막걸리였나.



 “만약 아버지가 가구 장인이었다면 나도 가구 장인으로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전통주의 기본이 막걸리라 생각하셔서 이미 오래전부터 오빠와 동생에게 막걸리 사업을 제안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오빠(배중호 국순당 사장)는 한창 히트를 치던 ‘백세주’ 때문에 여력이 없었고, 동생(배영호 배상면주가 사장)은 막걸리 말고 ‘산사춘’이나 와인 같은 다른 술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내게 막걸리 사업을 하라고 권하신 것이다. 내 입장에서도 전혀 모르는 분야라면 40대 전업주부가 뛰어들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전통주 만드는 과정과 철학을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웠기에 막걸리는 찬찬히 배워서 시작할 수 있겠다 싶었다.”



-어깨너머로 배운 것과 뛰어들어 승부를 거는 사업 사이에는 간극이 컸을 텐데.



 “만약 내가 사업을 시작하기 전 우리나라 술 시장에 대해 알았더라면 막걸리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 같다.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 수도 없었다. 매일 국순당 연구실로 출근해서 균을 배양하고, 조사하고, 시료지를 만들며 아버지가 50년 넘게 연구한 노하우를 배웠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아버지가 ‘이제 네 술을 빚어라’ 하셨다. 질 좋은 술을 빚는 것도 힘겨운 일이었지만 유통이며 마케팅, 특히 자금 마련은 더욱 어려운 산이었다.”



-그래도 아버지 덕분에 편하게 사업할 수 있지 않았나.



 “아버지는 술에 관한 한 대한민국 으뜸인 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더없이 냉정한 분이다. 아버지는 ‘무임승차는 없다’고 하셨다. 자금뿐만 아니라 유통이나 마케팅 같은 부분의 도움도 없었다. 오빠와 동생은 이미 전통주 분야에서 자리를 잡았지만 아버지는 인터뷰 때마다 ‘백세주’와 ‘산사춘’만 올려놓고 사진을 찍으셨다. 내가 만든 ‘부자’나 ‘우곡주’ 한 병만 같이 올려달라고 부탁 드리면 ‘네 힘으로 일어서라’고만 하셨다. 사업하라고 부추겨 놓고는 어쩜 저렇게 매정하신지 울기도 많이 울었다. 밖에서는 같은 집안인 배상면주가와 국순당에서 지원을 많이 받을 거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소규모 사업장을 위해 지원을 할 때도 나는 열외였다. 하지만 그 덕분에 배혜정도가는 배혜정이 책임져야 하는 회사라는 사실을 늘 명심하게 됐다.”



-전업주부였기 때문에 사업을 시작할 때 접근법이 달랐을 것 같다.



 “소비자 눈높이로 문제를 바라보니 사회생활만 한 사람들과 다른 시각에서 막걸리를 생각하게 됐다. ‘왜 막걸리는 한 가지 도수로만 나올까’ ‘보기 싫은 페트병 대신 유리병에 담으면 안 될까’ ‘막걸리 공장을 치즈 공장처럼 위생적으로 운영할 수는 없을까’ 등의 생각이 내 사업의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 제품을 내놓는 순간부터 좌절의 연속이었다.”



-어떤 순간이 힘들었나.



 “첫 제품이 6도짜리 페트병에 담긴 ‘새콤달콤 옥막걸리’였다. 결과는 참담 그 자체였다. 유통도, 마케팅도 몰라 견고한 기존 유통망을 뚫지 못했다. 옥막걸리가 팔리는 곳은 공장 옆 두부집밖에 없었다. 연구실에서 밤새 울었던 기억이 난다. ”



-좌절의 순간들을 어떻게 이겨냈나.



 “나의 꿈을 포기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것이 아이들에게 포기한 엄마로 남는 것이었다. 다시 힘을 내 최고의 막걸리를 만든다는 꿈을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다들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말렸지만 10도, 13도, 16도 등 다양한 도수의 막걸리를 시장에 내놓았다. 유기농 쌀 100%로 막걸리를 빚고, 아스파탐 대신 고과당으로 감칠맛을 냈다. 포도즙을 넣은 막걸리랑 자색 고구마로 빚은 막걸리도 내놨다. 병이 터지기 쉬운 생막걸리 외에는 모두 깔끔한 유리병에 담았다. 생산 환경도 국내 최고라 자부한다. 규모는 작지만 반들반들 윤이 나는 유럽 치즈 공장처럼 장인정신이 충만한 막걸리 공장을 만드는 꿈이 하나씩 실현되고 있다.”



-일하는 엄마로서 육아 고민은 없었나.



 “큰아들은 대학생이어서 큰 문제가 없었지만 둘째는 중학교 들어갈 무렵에 귀국했다.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 적응하기도 힘겨워하는 예민한 사춘기 아이를 세심하게 돌보지 못하고 연구실에서 막걸리만 끼고 살았다. 아이에게 늘 미안했다. 사업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어중간한 상태에서 포기하고 집으로 되돌아가면 아이들 볼 낯이 없을 것 같았다. 옆에서 챙겨주는 것도 엄마의 몫이지만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주는 것 또한 엄마의 몫이라 생각했다. 서른이 된 큰아들은 이제 내 일을 돕고 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을 내가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뿌듯하다.”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은 전업주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철학이 있어야 한다. 왜 이 일이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확고한 주심(主心)이 있어야 한다. ‘집에서 노느니 사업이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이라면 좌절의 순간을 견디기 어렵다. 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어야 버틸 수 있다. 나는 그럴 때면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정주영 같은 분들의 전기를 읽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그분들이 역경을 이겨낸 순간을 읽다 보면 내 짐이 가볍게 느껴진다. 책을 읽지 않을 때는 그림도 그리고 화초도 돌보며 돌파구를 찾는다. 또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지 않으면 퇴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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