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중앙시평] 진영외교의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학과
정상외교 시대에 전략적 외교를 펼치기 위해서는 정상 간의 신뢰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지난주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개인적 신뢰관계’를 토대로 한·미동맹의 ‘다원적 동맹’화에 합의했다. 13일자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1면 톱기사에서 두 정상 간의 신뢰관계를 레드카펫의 색깔에 비유하여 그 색깔이 “이보다 더 붉을 수는 없다”고 전했다.



 지난 정권 때 이임하는 버시바우 미국 대사에게 물은 적이 있다. 한·미 관계가 왜 그렇게 삐걱거리게 되었느냐고. “두 정상 간에 신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정상 간의 신뢰관계는 한두 번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국내적 입지를 배려해가며, 서로가 직면한 과제들에 대해 공동 대응을 계속해 나갈 때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 배려는 결코 우연적인 것은 아니다. 연초의 연두교서 연설에서 한국을 언급하던 장면이 생생하다. 일본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간 나오토 총리가 “미·일동맹은 일본 외교·안전보장의 기축”이라고 강조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지금 일본 언론들은 한·미 간의 ‘과거에 없었던 밀월 관계’를 보고 크게 낙담하는 모습이다. “한·미동맹이 아시아·태평양 전체 안보의 ‘린치핀(linchpin)’”이라고 한 오바마 대통령의 토론토 G20 정상회의 발언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이명박 정부가 오바마 정부와 가까워지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두 정부 간에 공통점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정권의 기반인 이념적 오리엔테이션이 달랐다. 이명박 정권이 보수 정권인 데 반해, 오바마 정부는 이른바 좌파 정권이었다. 자연 대북정책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바마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는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고위급 회담이었다. 한·미동맹은 뒷전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이 미국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부상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 계기는 2009년 11월 오바마 대통령의 첫 아시아 순방에서 제공된 듯하다. 그의 아시아 순방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우선 일본에서는 미·일동맹 재검토를 시작한 하토야마 총리와 씨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미국의 위안화 절상 압력과 기후변화 대책에 협력하지 않는 후진타오 주석과 신경전을 펼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 대통령으로부터 경기부양에서 아프가니스탄 병력 재파병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정(情)을 느꼈다. 그 때문에 레드카펫보다 더 붉은 인간관계, 나아가 한·미 관계를 구축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앞으로도 이런 한·미동맹이 우리 외교의 기본 축임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다원적 한·미동맹을 다극화하는 국제정치질서에 위치 지을 것이냐에 있다. 11월에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회의와 동아시아 서밋 등 다국 간 외교무대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이 대통령이 이런 일련의 기회를 통해 한국외교의 좌표를 제대로 제시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우려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진영(陣營)외교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듯하기 때문이다.



 진영외교는 미·소가 세계를 지배하던 제로섬적 양극시대의 유물이다. 하지만 G2의 세계는 비록 미·중이 대립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서로의 협조를 필요로 하는 상호의존의 세계다. 이런 세계에서 진영 논리에 빠지면 한·미동맹의 위상은 미묘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한·미동맹과 한·중 협력이 양립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영논리에 빠지면 양립의 길은 매우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한·미동맹을 북·중·러에 대항하는 신냉전적 진영 논리의 틀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지난 월요일 한·중 전략대화 회의에 참여한 중국학자의 코멘트가 흥미롭다. 왜 한국은 싱가포르나 파키스탄과 같이 될 수 없느냐는 것이다. 두 나라 다 미국의 동맹이지만 파키스탄은 미·중 화해를 중재했고, 싱가포르는 중국과 서방, 중국 본토와 대만의 교량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 외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영국 이외의 모든 나라는 적국이다. 따라서 세계의 모든 나라와 잘 지내야 한다”는 처칠의 말이 떠오른다. 그의 충고대로 이제 우리는 진영외교의 사고에서 벗어나 주변국들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 눈을 돌려야 한다. 주변국 정상들과의 인간적인 신뢰 구축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학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