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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적 상상력이 한옥 설계의 기본” 명장의 설명은 명쾌했다

조전환(맨 왼쪽)씨가 학생들과 함께 창덕궁을 돌아보며 전날 수업시간에 만들어본 사개맞춤 짜임 구조가 궁 안 건물에 어떻게 적용됐는지 설명하고 있다.


“뚝딱뚝딱” “슥삭슥삭” 12일 오후, 요란한 소리를 따라 들어간 서울 인덕공고 목공실. 목재를 깎을 때 나는 특유의 냄새가 가득했다. 각자 대패와 끌을 들고 바쁘게 나무를 깎고 다듬는 학생 20여 명의 눈빛이 진지했다. 명예교사로 나선 한옥 명장 조전환씨가 ‘한옥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제목의 수업으로 고교생들에게 재능나눔을 하는 현장이다.

글=설승은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조씨(오른쪽)는 목공실 수업에서도 대패질에서 끌질에 이르기까지 학생들 곁에서 꼼꼼한 조언을 했다. [최명헌 기자]
수업은 3일 동안 계속됐다. 건축에 관심 있는 인덕공고 2, 3학년 학생들이 참여했다. 명예교사 조씨는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한옥 명장이다. 경복궁 복원에도 참여한 대목장(大木匠)이다. 11일 첫 수업에서 조씨는 한옥의 역사와 기본적인 건축 요소, 세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한옥 건축에 대해 강의했다. 한옥 설계를 3D 방식으로 구현하는 프로그램(Hanok Information Modeling)을 사용해 어떻게 한옥을 현대적으로 설계하고 있는지도 함께 살폈다.

한옥의 기본 사개맞춤 구조 만들어봐

이날 목공실에서의 수업은 두 번째 시간이었다. 직접 한옥의 골격을 만들기로 했다. 학생들이 목재를 깎고 다듬어 한옥의 기본 뼈대를 만들었다. 못을 쓰지 않는 한옥 건축 방식으로, 한옥의 기본 뼈대를 이루는 보(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을 건너지르는 나무)와 도리(서까래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에 건너지르는 나무), 기둥이 서로 잘 맞춰지도록 머리를 따내 엇갈리게 끼우는 ‘사개맞춤’ 형식을 체험했다.

실제 한옥 건축 현장처럼 건축을 지휘하는 우두머리 목수인 도편수도 뽑았다. 일일 도편수로는 왕성윤(3학년)군이 투표로 뽑혔다. 학생들은 도편수의 지휘에 맞춰 크게 세 팀으로 나눠 나무를 깎아 보와 도리, 기둥을 만들었다. 설계도대로 치수를 정확히 잰 다음 나무를 깎아내기 시작했다. 각자 맡은 부분을 다 만든 뒤에는 한데 모여 이를 조립했다.

“너무 힘을 주면 안 돼. 손잡이를 쥐고 이렇게 가볍게 틀어야지.” 기계톱으로 보의 홈(주먹장:다른 부재와 엇갈려 끼울 수 있도록 가늘고 길게 만든 끝 부분)을 만들던 한 학생이 머리를 긁적이며 기계를 조씨에게 내밀었다. 이를 받아든 조씨의 숙련된 솜씨에 환호성이 터졌다. 명예교사 조씨는 작업대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학생들의 대패질 하나 하나까지 세심히 살피고 조언을 했다.

첫 톱질이 시작된 지 4시간이 지났다. 다 만든 뼈대를 들고 목공실 중앙으로 모여들어 조립을 하기 시작했다. 보와 도리, 기둥이 어우러져 3차원 구조물이 완성됐다. 조씨는 “머릿속에 3차원으로 계산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설계를 할 수 없다”며 “이게 바로 한옥의 기본 구조”라고 말했다.

“우리 한옥이 얼마나 튼튼한지 느껴 보라”며 조씨는 구조물 위로 올라섰다. 뒤를 따라 머뭇대며 학생들이 하나 둘 오르기 시작했다. 20여 명의 남자 고교생과 조씨가 올라갔지만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김영호(2학년)군은 “이게 정말 내가 만든 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뿌듯하다”며 “한옥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창덕궁 찾아 전통 건축 살펴

14일 마지막 수업에는 창덕궁을 찾았다. 주변 지형과 조화를 잘 이뤄 자연스러운 한국 건축의 미를 보여주는 이곳에서 아름다운 한국 건축을 직접 눈으로 살펴봤다. 정회원(2학년)군은 “내 손으로 이틀 전 만들어 봤던 사개맞춤 짜임 구조를 이곳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신기하다”고 말했다.

조씨는 학생들에게 한옥의 설계기법뿐 아니라 한국 건축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들려줬다. 연경당 건물 앞. 조씨는 대청마루를 가리키며 “이렇게 마루와 온돌이 한 집에 함께 있는 것이 한옥의 특징”이라며 “북방계의 특징인 온돌과 남방계의 특징인 대청마루가 한데 어우러진 복합적인 문화를 목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조전환 대목장과의 만남은 김영승(2학년)군의 꿈을 바꿨다. “당연히 건축 하면 서양 건축이 제일이라고 여겼는데 생각이 바뀌었다”며 “무궁무진한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발전 가능성을 발견해 한옥 건축으로 진로를 정했다”고 말했다. 도편수를 맡았던 왕군도 “한옥을 지어 보고 싶다”며 한옥의 매력에 빠졌다고 했다. “서양건축과 달리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던 한옥에 대해 알게 됐다”며 “막연히 건축가를 꿈꿨는데 어떤 건축을 할 것인지 내 꿈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왕군은 말했다. 박우빈(3학년)군은 “이렇게 한옥 명장을 실제로 만나 수업을 들으니 생생하게 와닿는다”며 “수업에 참가하길 잘했다”고 말했다.

3일 내내 수업에 함께한 인덕공고 김영일 건축과 부장교사는 “이처럼 고무된 학생들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며 “교실 수업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준 기회였다”고 말했다.

명예교사 조씨는 “학생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니 처음 대패를 잡았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고 했다. 이어 학생들에게 “나무의 마음을 느끼며 온몸으로 설계하고 시공하는 한옥 건축의 매력을 알았으면 한다”며 “책도 많이 읽고 외국에도 나가 보며 견문을 넓히면 내가 누군지, 한국의 건축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예술계 인사 100명 명예교사로 재능나눔

지난 4월부터 조씨 같은 문화예술계 명사들이 나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특별한 하루’는 문화계 저명인사와 예술인 100명을 문화예술 명예교사로 위촉해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예술인들이 직접 예술 교육을 진행하며 문화 예술 교육의 저변을 넓히는 것이 목표다.

지휘자 금난새, 발레리나 강수진, 번역가 이미도, 첼리스트 장한나, 소설가 박범신, 사진가 배병우 같은 유명인을 비롯해 국악·디자인·만화·무용·문학·미술·사진·연극·뮤지컬·영화·음악 등 예술계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참여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주관하며 올 12월까지 학교와 박물관, 문화회관을 돌며 어린이와 청소년,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내년 4월에 다시 시작하며 문의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대외협력팀(02-6209-5922)으로 하면 된다.

☞◆재능나눔= 자신이 가진 전문 지식이나 기술, 노하우를 활용해 사회에 기여하는 사회공헌 활동이다. 프로보노(공익을 위하여)라고도 부른다. 돈을 내는 기부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형태의 기부다. 각자가 가진 재능을 사람들에게 나눠줘 사회에 공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료 변론이나 법률 상담을 해 주거나, 유명 소설가가 대중에게 문학 강연을 여는 식이다. 재능기부(Talent Donation)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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