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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박근혜의 ‘밥 정치’

신용호
정치부문 차장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밥 정치’를 했다. 승부수를 띄울 일이 있으면 주변 인사들과 밥을 먹었다. 거기서 생각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그의 발언은 동석자들을 통해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는 밥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을 골라 했다. 밥 자리는 식사를 위한 게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위한 자리였다.

 ‘대연정 제안’ ‘임기 단축론’ 같이 파문을 일으킨 발언이 식사 자리에서 나왔다.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킨 건 2004년 1월의 일이었다. 그해 4월, 17대 총선을 앞둔 그는 47석에 불과한 열린우리당을 어떻게 제1당으로 만들지가 최대 고민이었다. 그때 측근들과 식사하며 “총선 때 재신임을 묻고 싶다” “대통령 선거개입의 한계를 정해 달라”는 말을 던진다. 그 말도 여지없이 흘러나왔고 곧 탄핵의 빌미가 된다. 하지만 ‘탄핵 역풍’은 오히려 열린우리당에 과반 의석을 안긴다.

 최근엔 박근혜 전 대표도 ‘밥 정치’를 시작했다. 10·26 선거 지원에 나서면서다. 방식과 내용은 노 전 대통령과 딴판이다. 만나서 말을 퍼트리도록 하는 게 아니라 식사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불특정 다수와 소통하는 방식이다. 박 전 대표가 지원 유세 이전에 공개적인 장소에서 밥을 먹은 적은 거의 없다. 2007년 8월 대선 후보 경선 때 이명박 대통령과 경쟁하며 전국을 돌 때도 대부분 정해진 장소에서 약속된 사람들과 식사를 했다. 그가 시장에 앉아 밥을 먹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경남 함양(17일)과 부산(14일)에선 시장에서 순댓국과 칼국수로 식사를 했다. 서울(16일) 종로경찰서 구내식당에선 전경들과 함께 식판에 동태국과 콩나물을 배식받았다. 18일에는 한 술 더 떴다. 서울 시내 유세 중 북창동 낙지집에 들어가 20~30대 젊은이 3명이 있는 자리에 끼어 앉았다. 그러곤 3명이 시킨 낙지볶음에 공기밥을 추가해 같이 먹었다. 그의 밥 정치 메뉴는 대개 단출하고 서민적인 것들이다. 눈 높이 맞추기와 소통을 지향하는 박근혜식 밥 정치다.

 그가 나경원 후보 지원에 나선 명분은 ‘정치권의 변화와 반성’이다. 그가 거리에서 밥을 먹는 건 반성을 위해 국민들의 소리를 듣겠다는 의미가 있다. 한편으론 정치에서 손을 떼고 있는 동안 소통과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기에 이를 의식한 측면도 있을 거다. 평소 보이기 위한 ‘정치적 쇼’를 싫어하는 그가 공개 석상에서 밥을 먹는 것은 의외의 행보다. 보여주기라는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그에게 더 급한 건 반성과 소통인 것 같다.

 그는 지지율이 가장 높은 대선 주자다. 곳곳을 다니며 경청하고 생활 정책을 내놓는 디테일도 좋지만 그의 거대 담론에 갈증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아주 가끔은 박근혜의 밥 정치도 노무현처럼 거침없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신용호 정치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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