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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청렴한 선비의 귀임 행장은 병이 나은 듯 맑고 깨끗해 낡은 수레 야윈 말로 족하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1995년 5월 17일 오전 대통령 전용차인 검은색 르노 한 대가 엘리제궁을 미끄러져 나왔다. 전용차는 경찰 모터사이클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포부르 생토노레 길을 지나 루아얄 길로 우회전한 뒤 콩코드 광장에 접어들었다. 이윽고 콩코드 다리 앞에 이르자 전용차가 멈춰 섰다. 뒷문이 열리고 구부정한 어깨에 늙수그레한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이젠 전임자가 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었다.

 미테랑은 몇 발자국을 걸어 다리 앞에 주차돼 있던 소형 르노 생크로 옮겨 탔다. 마티즈 정도 크기의 이 차는 프랑스 사회당이 14년 동안 프랑스를 이끈 미테랑에게 감사하며 외출할 때 타라고 선물한 것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아들이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형차는 센 강을 건너 파리 7구로 향했다. 막 퇴임식을 마친 전직 대통령을 태운 차는 사저인 아파트에 도착할 때까지 몇 차례나 교통신호에 걸려 멈춰서야 했다. 프랑스 최장수 대통령으로서 공정하고 통합된 프랑스를 일궈낸 미테랑은 그렇게 평범한 시민으로 되돌아갔다.

 미테랑이 대통령이 된 지 30주년인 올해 프랑스 언론들은 앞다퉈 그의 삶을 재조명했다. 프랑스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여전히 미테랑이 드골과 수위 다툼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두 집 살림을 하느라 엘리제궁을 자주 비웠던 그였지만, 장례식 때 숨겨둔 딸이 나타나 사람들을 놀랜 그였지만, 프랑스 국민들 가슴에 여전히 ‘몽셰르통통(우리 아저씨)’으로 남아 있다.

 그 이유는 드골이 설명해준다. 드골은 퇴임 후 파리에서 300㎞ 떨어진 고향집으로 돌아갔다. 패전국 프랑스를 승전국으로 일으켜 세운 그였지만 위인들의 무덤인 팡테옹을 거부하고 어려서 죽은 딸 옆에 묻혔다. 관 역시 마을 사람들이 쓰는 것보다 1㎝도 더 크지 않았고 청동조각 하나 더 장식돼 있지 않았다. 이처럼 현직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한 뒤 미련 없이 ‘빈손’의 시민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지도자의 모습을 프랑스 국민들은 (좌우를 떠나) 사랑하고 추억하는 게 아닐까.

 그런 마음이야 우리 백성들도 다를 게 없을진대 어찌 우리네 지도자들은 임기를 마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오기가 이토록 어려운지 모르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저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지만 이미 국민들 가슴속에 길게 난 생채기는 쉽게 아물지 않을 터다. 행여 이런 일이 생길까 다산 정약용이 써서 남긴 『목민심서』를 겉핥기로라도 읽었더라면 없었을 일이다.

 지금이라도 읽는다면 생채기에 소금 뿌리는 짓은 않을 수도 있겠다. 차기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함께 읽을 일이다. 다산은 그들이 따라야 할 처신을 아름다운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있다. “청렴한 선비의 돌아가는 행장은 병이 나은 듯 맑고 깨끗해 낡은 수레에 야윈 말로 족하며 그 맑은 바람이 사람들에게 스며든다.”

이훈범 j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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