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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 경제 콘서트(59) “잔 들어 달에 권하니...”


‘꽃밭에 홀로 앉아
한 잔 술을 마시노라.
잔을 들어 달에게 권하니
달과 나 그리고 그림자가 하나 돼 벗이 되누나

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


당(唐)나라 이백(李白·701~762)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의 첫 구절이다. 중국 술은 이렇듯 많은 문인의 친구였고, 예술의 원천이었다. “중국의 인문을 알려면 술을 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중국 비즈니스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술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술 ‘바이주(白酒)’를 얘기해보자.



베이징(北京) 비즈니스 출장 중인 김 사장. 도시가 어스름 저녁으로 빠져들 무렵 중국 측 파트너사와 힘겨운 협상이 끝났다. 양측 직원 일행은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중국에서 만찬은 비즈니스의 연장,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가 시작됐다. 중국 측 협상 대표인 후(胡) 사장이 작심한 듯 술을 챙긴다. 그는 “오늘 협상도 잘 끝났으니 함께 취해 봅시다”며 식당 종업원을 부른다. 바이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김 사장. 이참에 중국 술 공부하겠다는 생각에 후 사장에게 ‘바이주 강의’를 요청한다.

“바이주는 색이 없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보리·밀·옥수수·수수 등을 원료로 쓴다. 발효 후 열을 가해 술을 뽑아내는 증류주다. 브랜디·위스키·럼·보드카·진 등과 함께 세계 6대 증류술로 통한다. 한때 ‘사오주(燒酒·발효 후 열을 가해 증류한 술)’ ‘가오량주(高梁酒·수수로 만든 술)’ 등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1949년 신중국 설립 이후 ‘바이주’ 또는 ‘바이간주(白幹酒)’로 통일됐다.”

김 사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나라에서 중국 술을 한동안 ‘배갈’로 부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바이간(白幹)’이 한국으로 전해지면서 ‘배갈’로 바뀌었던 것이다.

후 사장이 “어떤 술을 하겠느냐”며 술 메뉴판(酒單)을 건넨다. 생소한 술 이름 여럿이 어지럽게 쓰여 있다. 김 사장이 머뭇거리는 사이 후 사장의 설명이 이어진다.

“바이주는 숙성 기간에 따라 몇 가지 종류로 나뉜다. 우선 장샹(醬香)형은 3년 이상 숙성한 술로 맛과 향기가 그윽하고 오래간다는 특징이 있다. ‘귀족주(貴族酒)’로 통한다. 중국 최고의 명주로 꼽히는 마오타이(茅台)가 대표적인 장샹형 술이다. 눙샹(濃香)형은 1~2년 숙성한 것으로 약간 달큼해 맛과 향기가 잘 어우러진다. 쓰촨(四川)의 명주인 루저우라오자오터취(瀘州老?特曲)가 여기에 속한다. 장샹·눙샹 두 종류가 전체 바이주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칭샹(淸香)형은 북부 지방의 술로 향이 비교적 맑다. 1년 정도 숙성하며 산시(山西)의 펀주(汾酒)가 유명하다….”

후 사장의 설명이 길어지자 김 사장은 “그냥 수정방으로 합시다”고 말을 끊었다. 서울 고급 중국 식당에서 가끔 마셔 본 기억이 있어서다. 식당 점원이 “가오두(高度)·디두(低度) 중 어느 것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52도와 38도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얘기. 후 사장은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60도 정도의 독주를 많이 마셨지만 요즘에는 40도 이하의 술이 더 많이 팔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오늘 가오두를 마시자’고 52도짜리를 시켰다.

삼각형 박스에 담긴 수이징팡(水井坊)이 올라왔다. 일행 중 누군가 “중국 술의 첫 잔은 간(干)입니다”고 외친다. 첫 잔은 다 비워야 한다는 뜻. 후 사장은 자신이 먼저 마신 뒤 빈 잔을 거꾸로 들어 머리 위로 올린다. ‘다 마셨으니 당신도 비우라’는 시위다. 수이징팡의 싸늘한 향이 입을 감돈다. 독주가 식도를 자극하며 아래로 흐른다.

“수이징팡은 2000년 8월에 나왔다. 아주 짧은 역사다. 그럼에도 고급 술 시장의 1, 2위를 다툴 만큼 빠르게 시장을 파고들었다. 맛도 맛이거니와 ‘스토리 전략’이 세인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98년 8월 쓰촨성 청두(成都)의 진장(錦江) 주변 수이징제(水井街)에서 양조장 유적이 발견됐다. ‘유명한 술 공장이 있었다’는 전설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발굴 작업이 시작됐다. 원(元)나라 말기에서 청(淸)나라에 이르는 시기의 각종 양조 기기가 쏟아졌다. 600여 년 전 양조장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난 것이다. 수이징제 양조장 유적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술 공장’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이곳에서 발견된 수원(水源)을 다시 살려 지하수를 끌어올렸고, 그 물로 술을 만들었으니 그게 바로 오늘의 수이징팡이다. ‘600년 전 맛을 되살렸다’는 스토리 전략이 주효해 수이징팡은 최고급 바이주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어찌 수이징팡뿐이겠는가. 중국의 모든 바이주에는 고유의 맛과 역사·문화가 담겨 있다고 후 사장은 말한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술은 무엇일까?

“조사하는 기관·시기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지만 79년 제3차 전국주류평가회에서 선정된 8가지 술을 ‘8대 명주’로 꼽는다. ‘국주(國酒)’로 꼽히는 마오타이는 명실공히 중국 최고의 술이다. 이 밖에 쓰촨의 우량예(五粮液)·루저우라오자오터취·젠난춘(劍南春), 구이저우(貴州)의 둥주(董酒), 장쑤(江蘇)의 양허다취(洋河大曲), 안후이(安徽)의 구징궁주(古井貢酒), 산시의 펀주 등이다.”



주변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후 사장의 ‘강의’는 계속된다.

“중국의 대표 술 마오타이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72년 마오쩌둥(毛澤東)과 닉슨이 중·미 수교에서 건배주로 마신 이후 세계적인 술로 유명해졌다. 마오타이의 역사는 BC 13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기록에 따르면 당시 한(漢)나라 장수였던 당몽(唐蒙)은 한무제(漢武帝)의 명을 받고 남쪽 정벌에 나선다. 당몽은 지금의 구이저우 마오타이전(茅台鎭) 유역에 이르러 한 농민이 빚은 술에 감탄했고, 이를 한무제에게 바쳤다. 그 이후 마오타이 지역의 술은 고급 술로 인식돼 청나라에까지 이어졌다. 청나라 시인 정진(鄭珍)이 1843년 마오타이를 들어 ‘술의 최고(酒冠)’라고 했을 정도다. 마오타이 지역의 기온과 습도, 햇볕 등이 독특한 맛을 낳은 것이다. 마오타이가 세계적인 관심을 끈 것은 1915년으로 당시 북양(北洋) 정부는 미국에서 열린 ‘파나마 주류전시회’에 이 술을 출품해 금상을 받았다.”

김 사장은 “돌아갈 때 마오타이 몇 병을 사가야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후 사장은 손을 내젓는다. 가짜가 많다는 것이다.

“진품 마오타이는 원료인 고량을 보리누룩으로 8번 발효하고, 10개월 동안 9번 증류를 되풀이해 만들어진다. 이후 적어도 3년 동안의 밀봉 숙성 기간을 거쳐야 한다. 그 많은 마오타이를 어떻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중국 국가공상관리국 통계에도 시중에서 팔리는 마오타이의 절반 이상이 가짜인 것으로 드러났다. 고가 명주는 반드시 가짜가 있다고 보면 된다. 바이주의 국제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가짜다.”

연거푸 마신 술로 만찬 분위기는 고조되고 있었다. 술이 있으니 시가 없을 리 없다. 후 사장의 눈이 스르르 감기는 듯 싶더니 그의 입에서 한시 한 수가 흘러나온다.

청명절 가는 비 내리니
행인들 마음은 울적해
술집이 어디뇨 물으니
목동은 멀리 행화촌을 가리키네

淸明時節雨紛紛
路上行人欲斷魂
借問酒家河處有
牧童遙指杏花村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청명(淸明)’이라는 시다. 목동이 가리킨 행화촌은 산시(山西)성 펀양(汾陽)시 싱화전(杏花鎭)으로 지금도 술로 유명한 곳이다. 여기에서 4대 명주의 하나인 펀주가 생산되고, 싱화춘(杏花村)이라는 브랜드 술도 나온다. 모름지기 바이주를 음미하려면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모두 취했다. 그럼에도 중국 측 사람들은 목소리가 높아졌을 뿐 어느 누구 하나 흐트러짐이 없다. ‘작은 신선(小糊?仙)’의 경지에 와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렇게 중국인들이 한 해 마시는 술이 얼마나 될까?

“중국에는 약 1만8000개의 바이주 회사가 있다. 이 중 20여 개의 상위 업체가 전체 생산량의 약 75%를 차지한다. 중소업체가 지방 마을마다 깔려 있다고 보면 된다. 지역적으로는 쓰촨성이 전체 술 생산의 20% 이상을 차지해 ‘술의 고향(酒鄕)’으로 통한다. 중국에서 한 해 생산되는 바이주는 약 570만kL. 판매액은 1400억 위안(약 24조5000억원)에 달한다. 그 자체가 하나의 큰 산업이다.”

김 사장은 중국인의 술 소비량이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술에 취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단위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커서다. 대략 따져 보니 350mL들이 소주병 163억 병 정도다.

중국의 술 마시는 습관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중국인들에게 우리 식으로 술을 권하거나 어울리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우선 잔을 돌리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인들이 자기 잔을 상대방에게 넘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친하다고 내 술잔을 상대방에게 권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멀리 앉아 있는 사람에게 술을 권할 때는 그에게 다가가 ‘워징니이베이(我敬?一杯·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라며 술을 청한다. 술은 일반적으로 음식점 직원이 따른다. 고급 식당의 경우 술잔이 조금이라도 비면 종업원이 달려와 잔을 채운다. 술잔에는 언제나 술이 가득해야 한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첨잔’을 한다는 얘기다. 혼자 잔을 들이켜는 것은 실례다. 반드시 마시기 전 상대방과 눈을 맞춘 다음 건배한 뒤 마셔야 한다. 그들은 옆사람이 혼자 빨리 마시면 ‘당신과는 대작하기 싫다’는 의사 표시로 받아들인다. 먼저 마시고 싶다면 옆 좌석에 앉은 사람에게 권하면 된다. 이 정도 얘기를 들으니 김 사장의 몸가짐이 더 엄숙해 진다.

"중국 요리에 꼭 올라오는 생선요리는 머리 부분이 상석을 향하도록 한다. 이때 상석에 앉은 손님은 ‘위터우주(漁頭酒)’라고 하여 먼저 술 한 잔을 비워야 한다."

이튿날 김 사장은 귀국 길에 오른다. 공항 가는 길, 전날 과음에도 불구하고 머리에 부담이 없다. 그게 바이주의 또 다른 매력이다.

중국 비즈니스에서 술과 비즈니스는 불가분의 관계다. 단순이 알코올을 마신데서야 무슨 의미가있겠는가. 우리가 마셔야할 것은 술에 담긴 문화다. 중국을 대하는 만사가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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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