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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월요인터뷰] “청와대, 재벌 총수들 그만 불러라”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이 12일 서울 역삼동 연구원 회의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공정위원장이 장관급으로 격상된 첫해인 1996년 위원장을 지냈다. 공정위 후배들은 그를 ‘역대 최고의 공정위원장’으로 꼽는다. [김도훈 기자]

‘시장(市場)으로의 귀환(歸還)’. 김인호 이사장은 서울 역삼동 시장경제연구원 회의실에 걸려 있는 붓글씨를 오래 쳐다봤다. “1997년 청와대 수석에 임명되던 날, 지인한테 선물로 받은 겁니다.” 문구는 그가 골랐다고 했다. 그다운 문구다. 99년 같은 제목의 책을 냈었다. 그는 늘 “시장에 답이 있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요즘 시장이라는 단어는 빛이 바래고 있다. 시장의 상징 뉴욕 월가를 “시장을 믿을 수 없다”는 시민들이 점령했다. 김 이사장에게 “다들 시장은 실패했다고 합니다”고 물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시장의 힘을 믿고 있었다. “시장이 실패한 게 아닙니다. 시장의 법칙을 지키지 않아 위기가 온 겁니다.”

만난 사람=서경호 경제부문 정책팀장

시장경제연구원 회의실에 걸린 액자. 김인호 이사장은 “30여 년의 공직생활 끝에 얻은 한국 경제에 대한 내 생각은 ‘시장으로의 귀환’으로 집약된다”며 “시장경제라는 ‘길’ 이외에 한국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 출간한 칼럼집 『길을 두고, 왜 길 아닌 데로 가나』에서 시장경제의 본질을 “물 흐르는 듯한 자율의 원리, 정부 역할의 한계, 시장 참가자들의 경쟁과 자기 책임의 원리, 수요자 선택의 원리”로 명쾌하게 정리한 바 있다. 친기업을 표방하며 집권했던 이명박 정부는 그 후 ‘공정사회’와 ‘상생’으로 국정기조가 바뀌면서 아예 ‘시장경제 교과서’를 새로 쓰고 있다.

 -8·15 경축사에서 대통령은 기업의 이윤 동기를 ‘탐욕’으로 표현했습니다. 기업의 ‘탐욕’과 이윤 추구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 겁니까.

 “탐욕과 (정상적인) 이윤 추구의 경계를 구분할 수 있는 건 하나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이 욕심을 안 내면 기업이 되나요. 이윤 추구가 목적인데. 아마 대통령은 ‘정상적 이윤’이라는 표현을 하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탐욕인지 정상적인 이윤 추구인지는 대통령이 아니라 소비자가 판단합니다. 소비자가 선택하면 탐욕이 아닙니다. 싸고 좋으니까 사는 거예요. 정부는 기업을 도덕적인 존재로 볼 필요가 없어요. 세금 내고 법 지키고, 소비자 안전 지키면 되는 거고, 안 지키면 규제하면 돼요.”

 -MB 정부도 초반에는 제 색깔을 지키려는 노력이 있었지요.

 “그랬죠. 아마 경제가 계속 잘됐다면 그렇게 갔을 겁니다. 그런데 사실 어려워졌다고 포기할 원칙이라면 그건 원칙이 아니죠. 문제 생기면 ‘정부가 들어가서 풀어야지’ 하면 시장경제 하는 나라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정부가 대기업을 많이 압박하고 있습니다.

 “난 정부가 대기업에 대해서는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았으면 좋겠어요. 대기업에 ‘정책에 협조해라. 기부해라’ 할 필요가 없어요. 다만 ‘지킬 건 지키고, 안 지키면 외상 없다’ 이러면 되는 거 아니에요. 청와대가 기회 있을 때마다 재벌 총수들 부르는 것도 안 해야 해요. 그러니까 국민 눈에는 ‘아, 재벌들이 정책을 좌우하는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기업은 제도의 틀 안에서 마음껏 뛰어놀면 돼요. 정부도 대기업이 돈 더 냈으면 좋겠다, 싶으면 세금 더 걷으면 되지. 무슨 기부를 하라고 하고 그럽니까. 기부는 자기가 원해서 하는 거지….”

 -초대 장관급 공정거래위원장이시죠. 공정위가 요즘 동반성장·상생 정책을 펴면서 기업을 억지로 끌고 가는 형국인데요, 기업이 자발적으로 하게끔 할 수는 없을까요.

 “가장 어려운 문제예요. 동반성장은 뾰족한 답이 없다는 걸 느낍니다. 기업은 이윤 추구를 하는 집단이고,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하지 않아요. 그러면 동반성장도 어쩔 수 없어요. 하청업체와 손잡는 게 대기업에 도움이 돼야 하죠. 고만고만한 중소기업들 여럿이 있으니까 대기업이 계속 뻣뻣한 거예요.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을 육성하면 저절로 동반성장이 될 텐데…. 힘들어도 제도적인 해법을 생각해야 해요. 소송을 활성화한다든지….”

 공정위는 수수료를 둘러싸고 유통업체와 샅바싸움 중이다. 일종의 시장가격인 수수료 체계에 경쟁당국이 직접 개입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김 이사장은 ‘요즘 공정위’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김동수 위원장 고민이 많을 겁니다. 물가니 상생이니 정책 수요는 많고 자신도 가급적 수용하고 싶은데, 하다 보니까 ‘공정위가 왜 이런 걸 하느냐’라는 문제 제기가 계속 나오잖아요. 사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공정위가 본연의 업무를 할 수 있도록 교통정리를 해줘야 하는데…. 공정위의 정책과 집행 기능을 나눌 필요가 있어요. 정책은 다양한 걸 생각하고 해야 하는데 규제 하는 사람은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칼같이 해야 하거든요.”

 그는 97년 외환위기 직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임명됐고 환란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위기라면 그도 할 말이 많을 터다.

 -97년의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최근의 글로벌 재정위기는 어떻게 다릅니까.

 “97년 위기는 우리에게 내재된 문제가 있어서 왔습니다. 2008년 위기는 세계적 위기입니다. 그것도 시장경제의 종주국 미국에서 발생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위기는 훨씬 심각합니다.”(그는 이번 글로벌 재정위기를 2008년 위기의 연장으로 봤다.)

 -본질이 다르다는 거네요.

 “문제를 정확하게 알아야 답이 나옵니다. 요즘 위기를 두고 ‘자본주의 시스템의 위기’라는 시각이 있는데, 이건 세계적 오류예요. 이번 위기는 지구적 불균형에서 비롯됐습니다. 한쪽에서는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쓰겠다고 나오고, 또 다른 쪽은 버는 걸 다 안 써요. 미국·그리스·포르투갈…. 이 나라들은 돈은 안 벌고 쓰겠다는 나랍니다. 한국·중국·일본은 외환보유액만 착착 쌓아놓지요. 이 불균형이 곪아터진 겁니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을 안 해 위기가 온 건 아닙니까.

 “반대예요. 시장 법칙에 맞지 않는 정책 때문입니다. 미국 서브프라임이 그거예요.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모든 사람이 집을 갖게 해 주겠다’고 했지요. 소득이나 자산, 신용이 없어도 돈을 빌려서 집을 샀어요. 그러다가 터졌습니다. 시장경제 어디에 ‘소득 자산도 없는 사람이 집을 가질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까.”

 -요즘 분위기는 ‘시장경제=정글’이라고 치부해 버립니다. 월가의 시위 논리가 그거고, 오바마나 일부 학자까지 그 시위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리더십의 위기예요. 정치가들이 할 말은 해야 해요. ‘고충은 이해하겠지만 문제 해결 방법은 이게 아니다’고 선을 그어야 해요. 자유기업 체제, 기업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는 없어요.”

정리=임미진 기자

초대 공정위원장 … 외환위기 때 경제수석

김인호 이사장은


1942년 경남 밀양생. 경기중·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66년 행시 4회에 합격해 67년 경제기획원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물가정책국장, 경제기획국장, 차관보, 대외경제조정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공정위원장이 장관급으로 격상된 첫해인 96년 위원장을 지냈다.

 97년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았다가 외환위기로 경질되는 등 곤욕을 치렀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듬해 5월 강경식 전 부총리와 함께 구속됐다.

새 정부가 외환위기에 대한 국민 불만을 없애기 위해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정책적 판단에 사법적 잣대를 들이댔다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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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