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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정말 순 진짜 100% 원조 국밥집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진실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존재할 뿐이다. 요란스럽게 꾸미고 치장하는 것은 대부분 거짓이거나 가짜다. 겉만 살짝 금을 입힌 도금(鍍金) 반지가 진짜 황금반지보다 더 번쩍거리듯, 거짓말일수록 화려하고 번지르르하다. 크든 작든, 거짓은 항상 진실의 요소를 훔쳐 쓰기 마련이다. 그래야 남을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 길거리에서 ‘정말 순 진짜 100% 원조 국밥집’이라는 광고지를 건네받은 적이 있다. 재미있기는커녕 참담하다는 느낌이었다. 국밥집이라는 말 한마디를 꾸미기 위해 동원된 정말·순·진짜·100%·원조 따위의 수상쩍은 단어들이 그대로 불신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순(純)자가 붙은 것일수록 순수하지 못한 것이 오늘의 시대상이다. 세속적인 것만이 아니다. 문화적, 정신적, 종교적인 영역도 그 슬픈 현실에서 멀지 않다.

 내 변변찮은 법조 경험에 의하면, 짙은 혐의를 부인하는 피고인일수록 긴 사설(邪說)을 늘어놓기 일쑤다. 한참 듣고 있노라면 앞뒤가 마구 뒤틀리고 교활한 조작의 냄새가 물씬거린다. 거짓말이 통하지 않으면 느닷없이 성경책을 끼고 나와 “하나님 앞에 맹세한다”거나 “양심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등의 ‘확인할 방법이 없는 담보’를 불쑥 내민다. 하늘과 양심은 그네들이 즐겨 쓰는 소도구(小道具)다.

 제 말의 진실성을 자신의 삶과 인격으로 뒷받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양심·도덕·선·인정 같은 고상한 가치를 앞세우곤 한다. 법망(法網)을 피해 은밀히 건넨 억대의 돈이 ‘선의(善意)의 긴급부조’였다는 어느 교육자의 주장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선의에 왜 ‘상호 차용증’이 필요했을까? 선의는 제 입으로 떠벌리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선의는 스스로를 감춘다. 『도덕경』에 선행무철적(善行無轍迹)이라 했다. 선한 행위는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정을 베풀 곳이 넘치도록 많은 터에, 하필이면 뒷전에서 남몰래 주고받지 않으면 안 될 대상이었을까?

 남의 허물에는 성급히 단죄의 칼을 뽑아드는 도덕군자들이, 자신의 흠이 드러나면 아랫사람이 한 일이라고 발뺌하거나 공소시효니 무죄추정의 원칙이니 하며 실정법의 보호막을 둘러치다가, 법리(法理)에 군색해지면 초법적(超法的) 윤리관을 펼치며 법과 상식을 뛰어넘으려 들고, 윤리·도덕도 겸연쩍으면 정당한 사법절차를 아예 정치공작으로 몰아붙인다. 실정법 논쟁이 도덕성 싸움으로 번지다가 정치투쟁으로 옮겨가는 모습이 3류 정치판을 빼닮았다.

 유·무죄 판단은 사법부의 몫이니 누구도 함부로 예단할 수 없다. 다만 자타(自他)에 대한 이중적 기준이나 비상식적 변명으로는 선의를 인정받기 어렵다. 변명이 필요한 선의라면 너절하기 짝이 없다. 선에 대한 모독일 뿐이다. “선한 일에도 신중해야 한다(必愼爲善).”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양주(楊朱)의 충고다.

 법률학에서 선의는 어떤 사정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 악의는 그것을 인식한 상태를 뜻한다. 윤리적 선악(善惡)과는 의미가 다르다. 더욱이 범죄성립 여부는 선의·악의가 아니라 고의·과실에 따라 결정된다. 내심(內心)의 동기는 정상참작 사유일 뿐, 범죄의 고의를 면제하지 못한다. 법률적 고의와 윤리적 선의를 한데 뒤섞어 일반인의 이해에 혼란을 주는 것은 법학자의 자세가 아닐뿐더러 교육자의 도리는 더욱 아니다. 거짓에 휘둘리는 교육현장만큼 절망적인 것은 없다.

 제 잘못은 모두 선의로 덮어버리고 남의 일은 몽땅 악의의 행동으로 내모는 것이 패거리 싸움터의 천박한 습성이다. 야당일 때는 정권의 비리를 모질게 추궁하다, 여당이 되면 권력의 부패를 변호하기에 급급하다. 남의 약점을 샅샅이 파헤치던 사람들이 자신과 관련된 의혹은 어물쩍 넘기려 든다. 똑같은 문제를 제기해도, 내가 하면 정당한 검증이고 남이 하면 네거티브 수법이다. 상대방에게는 고도의 투명성을 요구하면서, 제 얼굴을 가린 불투명한 너울은 좀처럼 벗지 않는다. 한·미FTA나 제주 해군기지의 예에서 보듯, 내가 추진할 때는 옳았던 일도 남이 계속할 때는 그릇된 일로 둔갑한다. 북한은 가공할 핵무기를 만들어도 ‘일리 있는 일’이라고 두둔하면서, 우리 군은 훈련만 해도 북을 자극하는 전쟁 책동이라고 헐뜯는다.

 “아무리 교묘한 거짓말도 어설픈 진실에 미치지 못한다(巧詐不如拙誠).” 한비자(韓非子)의 말이다. 거짓이 나라와 사회를 휘젓고 선이 모독을 당하는 때일수록 우리는 한비자의 저 어설픈 진실을 애써 지켜내지 않으면 안 된다. ‘정말 순 진짜 100% 원조 국밥집’이 아니라 그냥 ‘맛있는 국밥집’을 찾기 위해서라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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