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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밀려나는 한국의 시베리아 진출

시베리아 철도를 따라가며 한국·중국 사이에 벌어지는 시베리아 경쟁을 눈여겨본다. 출발지 블라디보스토크. 옛 소련 잠수함이 전시되고 있는 항구로 매일 여러 대 버스가 중국 관광객을 쏟아 놓는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쓸쓸했고 한국인이 많이 찾던 항구를 지금은 중국인이 채운다. 거리엔 중국인 상점이 많이 들어섰다. 가까운 나홋카에는 중국 자본으로 세운 커다란 시장 건물이 있다. 이어 우스리스크엔 대형 중국 야르마르크가 있다. 상인들이 한꺼번에 모여 장사하는 곳인데 우리의 재래식 시장 분위기이면서도 다르다. 그곳에서 러시아인은 사고 중국인은 판다. 그렇게 극동의 생필품 상권의 80%는 중국인 손에 들어갔다.



안성규 칼럼

철도편으로 하루 넘어가면 브라고베센스크가 있다. 동진하던 러시아의 석유 파이프가 확 꺾여 중국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그 앞의 중국 도시는 헤이허(黑河). 우리 역사엔 독립군이 희생된 ‘흑하 또은 자유시 사변’의 무대로 기록된 곳이다. 아무르강을 끼고 마주한 두 도시는 정겹다. 비자 면제 협정이 체결돼 자유롭게 왕래하며 반나절 생활권을 만들었다. 최근 이곳을 방문했던 한 한국인은 “제일 큰 호텔은 중국인이 운영한다. 브라고베신스크 시내에선 중국인이 아파트도 짓는다. 러시아인은 다리 건너 쇼핑한 뒤 외식하고 헤이허시에 집을 사놓기도 한다”고 했다.



브라고베센스크 전에 기차가 서는 비로비잔은 스탈린 시절 강제 이주로 탄생한 유대인 자치주의 주도다. 이 주와 헤이룽장성은 서로 다리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논의한다. 곧 ‘중·러 1일 생활권 도시’ 2호가 나올 태세다. 아무르강의 여의도만 한 섬들을 개발하자고 중국은 러시아에 공세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시베리아 지역에 합법·비합법적으로 머무는 중국인은 30만 명 정도다. 반면 한국 교민 500명은 내륙이 아닌 연안에 주로 산다. 학생·선교사를 빼면 200~300명만이 경제활동인구다.



시베리아 구석을 중국 보통사람이 휘젓는다면 정권 차원에선 상층부와 밀착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지난 11~12일 베이징에서 중국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를 만났다. 떠들썩했다. 인민일보는 ‘중국·러시아가 역사상 최고의 밀월기를 맞았다’고 대서특필했다. 양국은 70억 달러 규모 계약도 체결했다.



돈에 관한 한 중국은 확실히 큰손이다. 예를 들면 2008년 중국은 러시아에 25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했다. 2009년 10월 정상회담 때 양국은 34개 분야 55억 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은 어떨까. 2010년까지 투자액이 20억 달러다.



그런데 중국의 노림수가 시베리아의 에너지 협력이라는 게 포인트다. 차관 형식의 250억 달러도 개발될 시베리아 가스 요금을 선납한 것이다. 2011년 중·러 정상회담의 최대 이슈도 가스관 문제다. 시베리아의 중·러 에너지 협력은 양국의 군사·이념·통상 협력 관계를 끌어가는 원동력이다. 협력이 완성되면 중국 자본과 러시아의 에너지·군사력이 결합해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에 대응한다는 그림을 그려야 할 판이다.



그래서 ‘시베리아가 중요하다는 얘기는 20년 전부터 나왔는데 지금 한국은 뭐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오래전부터 한국을 시베리아로 초대했다. 그러나 20년 전 투덜거림과 지금이 거의 판박이다. 민관 대부분이 “러시아는 위험하고, 투자환경이 문제”라고 한다. 그러니 지금 북한 경유 가스 파이프 문제를 러시아와 논의하는 정도면 잘한 것으로 여겨야 하나. 그렇다면 중국은 왜 시베리아에 적극적이고 어떻게 러시아를 위에서 아래까지 파고들고 있을까.



2000년 출간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책 거대한 체스판에서 한국은 일본에 대한 방어 기지 정도로 왜소하다. 극동 체스판의 선수는 중국·러시아·일본뿐이다. 그러나 낙담만 할 필요는 없다. 러시아는 사회주의 시절 30년간 싸웠던 중국을 여전히 경계한다. 러시아 외교관들은 “중국은 겁나지만 한국은 친구다. 시베리아 개발의 동반자는 한국이 적임자”라고 낮게 말한다. 어떤 외교관은 “시베리아의 러시아 주지사들은 ‘오라는 한국은 안 오고 중국만 쏟아진다’고 말한다”고 했다. 비전을 가다듬고, 전략을 세운다면 시베리아는 아직도 기회의 땅이다.



안성규 외교안보 에디터 ask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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