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조각칼 들고 현란한 문양 ‘일필휘지’ 마음으로 흙을 느끼다

1 백자 창살문 용호 이중투각병
지금 경기도 이천과 여주·광주에선 2011세계도자비엔날레(9월 24일~11월 22일)가 한창이다. ‘불의 여행’이란 주제를 내건 이번 행사에는 세계 71개국에서 1874명의 작가가 경합을 벌인 국제공모전을 비롯해 한·중 도자예술교류전, 프랑스 현대도자공예전 등 다양한 주제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백자 투각 항아리 작가 무토(撫土) 전성근의 작품세계

이번 비엔날레에서 광주의 한·중 교류작가 워크숍과 여주의 국제도자워크숍 등 여러 행사에 참여하며 가장 중요한 도자 작가로 꼽히고 있는 사람이 무토(撫土) 전성근(52)이다. 그는 백자투각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 도자의 본고장 중국에서도 최초의 백자 생산가마로 이름 높은 경덕진에서 초대전을 열 정도다. 2004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친 뉴욕 크리스티경매 출품, 독일 프랑크푸르트 주정부 박물관 소장 등 해외에서 더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숨은 그림 찾기’같다. 민화나 창살문 등 전통소재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그의 조각그림은 투각의 한계를 시험하는 대형 사이즈의 기물 전체를 빈틈없이 메운다. 관람자를 압도하는 꽃과 나무의 정글 사이로 한 마리 새, 물고기가 머리를 내밀어 숨통을 틔운다. 여느 작품과 한눈에 구별되는 투각의 깊이와 난이도는 목각으로 공예에 입문한 그의 이력을 뒷받침한다. 도예라기보다 조각 작품이다.

2 백자 한글 투각병들
“나무는 눈으로 보면서 향과 결을 느끼지만 흙은 마음으로 읽어내게 됩니다. 그 느낌이 좋아서 도자기를 시작했죠. 둘러보니 중국에도 일본에도 순백자 투각 하는 사람을 볼 수 없더군요. 처음엔 흙의 느낌만 살리는 작업을 하려 했지만, (투각 작업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 다시 칼을 잡았어요. 칼로 할 수 있는 한계를 추구하기 위해 투각을 합니다. 스스로 도예가라고 하고 다닌 적은 없어요. 공예란 한 분야에서 정점에 오르면 작은 노력으로도 영역 간을 쉽게 넘나들 수 있거든요. 시대는 예술가를 원하고 있고, 지금 저는 흙과 칼로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입니다.”

미술계 인사들로부터 ‘칼의 춤’ ‘신의 손’ 등의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그의 작품은 비싸다. 웬만한 투각 도자기라면 1000만원이 넘어간다. 그의 작품이 비싼 이유는 투각이란 보통 흙을 긁어내는 일이지 무토처럼 단칼에 오려내는 기술을 보유한 사람이 달리 없을뿐더러, 이중 투각은 소성과정에서 수축률을 맞추기가 어려워 성공률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특히 백자투각은 국내 백자토의 한계 때문에 투각이 더욱 어렵다. 큰 작품의 경우 3년 동안 하나도 건진 것이 없을 정도로 완성작을 내기 어렵다고 그는 말한다.

“쉬운 여자는 매력 없지 않나요? 청자나 백자나 나름 특성이 있지만 청자는 벌어진 틈을 메울 수 있어요. 백자는 안 되죠. 그만큼 까다롭고 힘들기 때문에 백자가 매력적인 겁니다. 초기에는 청화로 색을 넣기도 했지요. 순백의 극단적 화려함을 추구하니 조각의 난이도가 높아지는 것이고요. 물론 이런 까다로운 작업은 늘 적자일 수밖에 없고 돈을 생각하면 포기해야 마땅하지만, 내가 이걸 포기하면 21세기 한국 도자기란 것이 남지 않을 것 같아요. 훗날 기록에 대한 사명감 때문에 하는 겁니다.”

그러나 최근의 달항아리 열풍이나 한국의 멋을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과 동일시하는 풍조에서 보았을 때, ‘백자’ 하면 화려함보다는 소박한 여백의 미를 떠올린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을 한국적이지 않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몇 해 전 외국의 평론가가 달항아리를 최고라 치켜세운 뒤부터 달항아리 열풍입니다. 그 전엔 아무도 만들지 않았죠. 조선시대에도 기술이 부족해서 우연히 그런 형태가 나온 것이고, 여백의 미란 것도 가마를 재빨리 채우려면 장식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외국인이 달항아리를 우연히 재해석했을 뿐이죠. 물론 조선의 달항아리는 나름의 시대성이 반영된 것이라 귀한 것이지만, 지금 우리가 옛것을 답습한 달항아리를 가지고 우리의 시대성을 논할 수 없죠. 시대성이 없는 것이 어떻게 예술입니까. 남의 것을 그대로 베낀 것을 수천만원에 파는 사람들은 사기꾼입니다.”

그는 밑그림 없이 작업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물 전체를 메우는 현란한 문양을 창칼로 단번에 오려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느냐는 물음에 “연필로 그리나 칼로 그리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오히려 밑그림을 그리지 않기 때문에 작품마다 같은 꽃이라도 조금씩 바뀌고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거죠. 저도 우리 꽃창살문의 아름다움에 반해 투각을 시작했고 민화나 전통적인 소재에서 아이디어를 얻지만 답습은 하지 않아요. 국화문이라도 옛날 국화문이 아니라 회화적인 디자인을 새겨내는 거죠. 제가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할 수 있었던 것도 동양적인 사상이 녹아 있기 때문이지만 답습, 전승만 해서는 내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작가라면 자기 생각과 가슴이 담긴 작업을 해야 합니다. 이제 작가들은 미학, 인문학의 바탕이 없는 작업으로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 예술계에선 정교하고 치밀한 작업은 예술이 아닌 기술로, 작가가 아닌 장인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공예를 예술로 인정하지 않는 뿌리 깊은 편견에 크리스티 경매 출품 당시에도 국내에선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누가 봐도 그 사람 작품이란 걸 알 수 있을 만큼 작가정신으로 무장돼 있으면 예술인 겁니다. 완전히 그 사람과 ‘이퀄’이 돼야 하고, 최소한의 감동을 주어야 하는 것이죠. 누가 봐도 ‘아!’ 하는 감탄사가 나와야 합니다. 명장이니 무형문화재란 사람들도 문젭니다. 옛날 사람들이 쓰던 갓이나 은장도를 왜 그대로 만듭니까. 그런 치밀한 기술이 있다면 그 기술을 이용해서 얼마든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데 말이죠. 갓을 만드는 기술로 아름다운 조명기구를 만들고, 은장도를 만드는 기술로 셰프들이 쓸 만한 명품칼을 만들고도 남을 겁니다. 예술가의 이름으로 비싼 도자기만 만드는 건 반댑니다. 일본에서는 포장마차에서도 도자기를 씁니다. 가격대를 맞춰줘야 가능한 일이죠. 쉽게 살 수 있고, 깨져도 별로 안 아까운 대중적이고 아름다운 도자기를 작가들이 많이 만들어야 사람들이 도자기를 더 가까이 할 것입니다. 작가로서도 20%는 자기 작품을 하고 나머지는 생활자기를 만들어야 필드에서 살아남을 수 있죠.”

무토는 청와대 초청작가다. 외국 정상의 국빈선물을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다. 청와대 납품은 알고 보면 국가 예산에 맞춰 턱없이 낮은 가격에 조달해야 하는 힘든 일이다. 얼마 전 외교통상부에서 표창을 시사했지만 그는 마다했다. 대신 문화관광부가 주는 표창이라면 기꺼이 받겠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쳐주는 값은 뺏어가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그렇다고 청와대 후광에 제 작품이 빛나고 잘 팔리게 되는 것도 아니죠. 그저 우리 문화를 알리는데 보탬이 되라고 기꺼이 뺏기는 겁니다. 정상 선물은 개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나라에 주는 거라 결국 박물관 소장이 되거든요. 외국 박물관에 가면 어떻습니까. 한국관이 제일 후지죠? 정부에서 왜 그런 걸 보고만 있느냐는 겁니다. 예전에 독일 마인강변에 있는 수공예박물관에 간 일이 있는데 한국관에 88올림픽마크가 새겨진 버클과 춘화가 그려진 술잔이 덩그러니 놓인 걸 보고 제 작품을 거저 주며 바꿔 달라고 했습니다. 퀄리티가 너무 높다고 프랑크푸르트에 세워진 주정부 박물관에 놓아 주더군요. 우리는 유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영인본이라도 만들어서 외국 전시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 문화를 고급 문화로 인식합니다. 외국에 차 한 대 더 파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 아닌가요.”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