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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성지에서 '신의 솜씨'를 만나다

1 스트라디바리가 1677년 제작한 ‘선라이즈’.
원격 레슨 가능한 컴퓨터 내장 피아노
박람회에 다녀간 1만4000여 명의 방문객은 대부분 연주가들이었다. 개중에는 줄곧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 유명 뮤지션인 것 같다. 바이올리니스트와 첼리스트들은 마음에 드는 악기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연주해봤다. 이 때문에 박람회장은 소음처럼 들리는 현악기 연주 소리로 가득했다.

나무로 만든 정통 악기만 연주하던 연주자들은 전자 첼로나 전자 바이올린을 보고서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연주를 하면서도 헤드폰을 끼고 연주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자연스러운지 어색하게 웃곤 했다. 그래도 가족이나 이웃을 방해하지 않고 밤늦게까지 연주할 수 있다며 흥미를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특별 코너에 전시해 놓은 20세기 크레모나 장인들의 작품 중에는 바이올린이나 첼로의 헤드 부분을 동물이나 천사 모양의 조각작품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눈길을 끌었다.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작품들이다. 스페인 기타, 스웨덴의 니켈하르파 등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민속 악기들도 여러 부스에서 제법 눈에 띄었다.

크레모나의 장인들이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나무는 두 가지다. 앞판과 옆판은 북부 이탈리아에서 자라는 스프로스(전나무)를, 뒤판과 목, 헤드 등 나머지 부분은 발칸반도에서 자라는 메이플(단풍나무)을 사용한다. 다른 나라보다 이 두 지역에서 자란 나무들이 더 좋은 소리를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람회장에는 이런 나무들을 크기별로 잘라 바이올린이나 첼로의 형태를 그려서 파는 회사들도 많았다. 활만 전문적으로 제작, 판매하는 장인들도 바이올린 제작자들만큼 많이 참여했다.

2 스트라디바리가 1679년 만든 ‘헬리어’.3 스트라디바리가 1687년 제작한 ‘올레 불’.3 스트라디바리가 1687년 제작한 ‘올레 불’.4,5 스트라디바리가 1709년 만든 ‘그레퓌레’.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유명·무명 바이올린을 팔고 사는 업자들은 부지기수다. 바이올린에는 보통 연대와 제작자가 적혀 있다. 바로크,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기본 정보만 적혀 있는 것도 있었다. 박람회 측은 서비스 차원으로 일랴 그루베르트, 알레나 체르니, 올렉 마르쉐프, 그리고 천재 피아니스트 조반니 알레비 등의 공연도 마련했다.

6 헬리어’의 헤드 부분.
전시장을 거닐다가 몇 백 년은 되어 보이는 상감장식 된 앤티크 바이얼린이 보호벽 없는 장식장에 걸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우리지오 타디올리라는 바이올린 제작자 부스였다. “진짜로 오래된 바이올린이냐”고 물으니 그는 “사우스 다코타대학 음악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안드레아 아마티(현재 사용하는 바이올린 스타일을 개발한 사람)의 바이올린을 내가 복제한 것”이라고 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린을 복제하는 것은 이미 바이올린 제작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가장 유사하게 만든 장인을 뽑는 공모전도 있다고 한다. 이 공모전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한 타디올리는 “지금까지 아마티의 복제본을 4개 만들었는데 판매한 세 개 중 하나의 주인은 한국 바이올리니스트”라고 귀띔했다. 그의 코너에는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넬리우스의 복제본도 있었다.

올해에는 처음으로 피아노 박람회가 함께 열렸다. 크레모나의 크고 작은 피아노 제작사부터 19세기의 앤티크 피아노를 파는 회사들, 그리고 야마하, 롤랜드, 보스턴(스테인웨이 피아노) 등 익숙한 이름의 피아노 회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피아노 내부는 버리고 앤티크 틀만 파는 회사도 있었고, 피아노 내부가 그대로 보이도록 투명 아크릴판으로 제작한 회사들도 있었다. 피아노의 몸통이 모두 나무로 상감 된 19세기 초의 베히슈타인 피아노는 그 자체로 존재감이 상당했다.

야마하는 2년 전부터 디스크라비에(Disklavier)라는 전자 그랜드 피아노를 프로모션하고 있다. 이 기술은 15년 전 개발됐지만 소비자용으로 팔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야마하 C3그랜드 피아노의 형태에 컴퓨터를 내장한 디스크라비에는 두 사람이 같은 피아노만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먼 거리에 있어도 피아노 레슨이 가능하다. 독일 함부르크에 이 피아노를 가지고 있는 선생과 전시회장의 직원이 시연을 했다. 직원이 피아노를 치자 함부르크 선생님 집의 피아노 건반이 동시에 연주됐다. 그러니까 선생은 학생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은 컴퓨터 모니터로 보고 연주는 자신의 피아노로 들으며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지도할 수 있는 셈이다.

21세기 첨단기술로도 ‘신의 솜씨’ 흉내 못내
전시장을 나와 크레모나 시내의 무제오 치비코(Museo Civico) 뮤지엄으로 갔다. 이 전시는 상감 된 최고의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뮤지엄 측은 전시 기간인 9월 15일부터 10월 9일까지 베라 베스, 살바토레 아카르도 등 유명 뮤지션들이 스트라디바리로 연주하는 콘서트도 마련했다.

스트라디바리는 과르네리와 함께 안드레아 아마티의 손자 니콜라의 문하생이었다. 36세가 되던 1680년 자신의 공방을 낸 후 93세까지 살면서 1100여 점의 바이올린을 제작했다. 완벽한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항상 노력했던 스트라디바리. 그의 바이올린은 현재 경매를 통해 수십억원대의 가격에 팔리고 있다. 누가 구입했고 누가, 언제, 무엇을 연주했는지는 항상 세간의 관심거리다.

스트라디바리는 평생 약 10개의 상감장식이 들어간 바이올린을 주요 고객을 위해, 혹은 특별한 경우를 위해 만들었는데 그중 5점이 이번 전시에 소개됐다. 세계 최초로 함께 전시되는 다섯 점의 스트라디바리들은 1677년 작 ‘선라이즈(Sunrise)’(개인 소장), 1679년 작 ‘헬리어(Hellier)’(개인 소장), 1683년 작 ‘치프리아니 포터’(옥스퍼드 애시모리언 뮤지엄), 1687년 작 ‘올레 불(Ole Bull)’(스미스소니언 박물관), 그리고 1709년 작 ‘그레퓌레(Greffuhle)’(스미스소니언 박물관)다.
이 바이올린들의 앞면과 뒷면 가장자리에는 마름모꼴과 원형의 매머드 상아가 검은 띠에 일률적으로 박혀 있다. 가장자리에 홈을 내고 잘게 깎은 상아조각을 집어넣은 것이다. 나무를 태워 갈아 만든 석탄가루에 풀이나 아교를 섞어 빈 공간을 채운 후 다 마르면 사포나 끌로 표면을 긁어 매끄럽게 정리하면 검은 띠 장식이 생긴다. 그후 달궈진 쇠틀에 대고 판을 바이올린 형태로 구부린다. 그리고 모든 판들을 수용성 풀로 접착한다. 이 과정은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 시간 계산을 꼼꼼하게 해야 하는 힘든 작업이다. 요즘도 상감이 들어간 바이올린 제작은 꼬박 6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스트라디바리는 바이올린의 뒤판을 주로 한 조각으로 제작했다. 과르네리가 두 조각으로 제작한 것과 외관적으로 구별되는 부분이다. 좌우 대칭의 구멍 f는 너무 좁아 안을 볼 수 없지만, 완벽주의자였던 스트라디바리는 내부까지도 섬세하게 잘 다듬었다고 한다. 이 부분 또한 아티스트라 불리웠던 과르네리의 거친 내부와 다른 부분이다.

이 다섯 점의 상감 된 바이올린 이외에도 사우윙 람 가족이 소장하고 있는 바이올린 컬렉션 니콜로 아마티의 ‘콜린’(1669), 과르네리 델 제수의 ‘발틱’(1731), 스트라디바리의 ‘바바리안’(1720), 과다니니의 ‘포숑’(1757), 그리고 시혼 마가 소유한 스트라디바리의 ‘조아킴-마’(1714), 헨리 포드 뮤지엄이 소유한 베르곤지의 ‘애크로이드 포드’(1738~1742) 등도 볼 수 있었다. 상설 전시장에는 스트라디바리가 사용했던 오리지널 도구와 스케치, 그리고 바이올린의 크기나 사용에 관한 친필 메모와 서명이 되어 있는 뒤판 부품들도 전시했다. 주문한 바이올린의 배송이 늦어진 점에 대해 사과하는 내용의 친필 편지에는 그의 겸손함이 잘 나타나 있다.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는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바이올린 제작의 대가들이다. 이들이 제작한 몇 안 되는 바이올린들은 제작된 지 3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최고의 바이올린으로 남아 있다. 제작방법 역시 아직도 신비에 싸여 있다. 어떤 이는 습기 등으로부터 바이올린을 보호하는 비밀 성분의 광 칠(바니시)에 있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태양의 불규칙 활동기였던 1645년에서 1715년 사이의 소 빙하기에 자란 나무를 사용해서라고도 했다. 장기간 성장이 감소해 밀도가 높아진 이유란다. 기타 나무의 밀도, 처리과정, 나무를 베어낸 시기 등도 끊임없이 거론되는 내용들이다.

21세기의 수공업자들이 최첨단의 도구를 사용해서도 더 나은 악기를 만들기는커녕 비슷하게도 못 만들고 있으니, 비밀이야 뭐든 최고의 연주자를 통해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의 아름다운 선율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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