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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와 세종대왕

미국 10달러 지폐 안에 있는 인물은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이다. 34세에 경제사령탑이 된 그는 위스키 소비세 등을 통해 파탄 위기에 처한 신생국가 재정을 안정시켰다. 관세법을 제정해 유치(幼稚)산업을 육성했다. 미 역사상 보호무역주의의 첫 발동이었다. ‘대규모의 국가 채무가 적절히 운영된다면 재해가 아닌 축복’이라는 게 해밀턴파(派)의 생각이었다. 이런 전통을 반영한 탓인지 미국 연방정부 부채는 요즘 국내총생산(GDP)보다 더 많은 15조 달러(약 1경7500조원)나 된다.

이양수의 세상탐사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 정치권이 ‘중국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선거철의 단골 메뉴긴 하지만 요즘에는 해밀턴식(式) 보호무역 논리도 덩달아 부활하는 분위기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14일 “중국이 환율정책을 통해 무역에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지 못하도록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미 상원은 ‘환율감시 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둘 다 중국 위안(元)화 환율이 30% 이상 저평가돼 무역적자 확대, 일자리 감소를 초래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공교롭게도 미국은 지난 8월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456억 달러)의 대중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문제는 위안화 절상이 해법인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위안화 환율은 1990년대 후반 달러당 8.27위안에서 6.38위안으로 떨어졌다. 돈 가치로 따져 23% 올랐다. 그럼에도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쯤 되면 미국의 경쟁력을 되돌아보는 게 정답일 터인데 미국 정치인들의 눈에도 콩깍지가 씌운 모양이다. 미국 베짱이가 중국 개미를 윽박지른다고 빈 곳간이 채워질 리 만무하다. 미국 입장에선 85년 ‘플라자 합의’처럼 달러화 절하를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에 다녀온 한국인 관광객들은 “중국 물가가 싸다는 건 옛날 얘기”라고 입을 모은다. 위안화 돈값이 이미 세졌다는 방증이다.

미·중 환율전쟁은 한국에도 강 건너 불일 수 없다. 중국은 한국 기업들의 최대 투자대상국이자 최대 교역상대국이다. 이미 한·중 교역 2000억 달러 시대가 열렸다. 미·일과의 교역을 합친 것보다 대중(對中) 교역이 더 많다. 한국산 부품·소재를 수입해 만든 중국산 제품이 미·유럽으로 수출되는 삼각(三角)교역 구도까지 감안하면 환율전쟁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복병이다. 한국의 처지는 묘하다. 미국에는 안보, 중국에는 경제를 의존하는 상황이다. 그럴수록 균형 외교의 지혜가 절실하다. 앞으로 지구촌 경제가 악화될수록 보호무역주의와 환율전쟁의 유혹은 커질 것이다.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 사업가는 “몇 년 뒤 달러당 5위안 안팎까지 절상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은 사대교린 정책을 펴 북방 영토를 넓히고 동북아 무역을 주도했다. 굴욕 외교 속에서도 명나라와의 양자 교역을 통해 실리를 챙겼다. 또 명나라 해금(海禁)정책의 허점을 간파해 중개무역에 나섰다. 일본의 은(銀)을 명나라에 보내고, 중국산 명품을 일본에 되파는 방식이었다. 세종 시대의 태평성세에는 이렇게 벌어들인 부(富)도 한몫했다. 명나라의 쇄국정책을 국부 증진의 기회로 활용한 것이다.

답답한 것은 정치권이다. 보호무역주의와 환율전쟁의 파고(波高)가 밀려오는데 안방 정치에만 몰두하고 있다. 야당 정치인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한국 시장을 통째로 내주는 ‘제2의 을사늑약’인 양 국민을 오도한다. 한데 중국 공산혁명의 원로인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중국의 지금 모습은 과연 어땠을까. 문을 닫아걸고 G2(미국+중국)로 올라설 수 있었을까. 미국을 싫어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 FTA를 택한 건 ‘국익’을 위해서였다. 우리에게 FTA는 해외 시장을 뚫고 대중 경제 의존도를 낮출 유력한 카드 중 하나다. 앞으로 10년 후 세상을 생각하면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일본과도 FTA를 체결해야 할지 모른다. FTA를 반대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오늘 밤, 1만원 지폐의 세종대왕께 부국강병의 길이 뭔지 여쭤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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