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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한국문화 대표?

몇 주 전 이코노미스트는 서울에서 한국 경제 관련 연례 회의를 개최했다. 회의의 대미를 장식한 주제는 ‘미래’였다. 누군가 한국의 교육 체계를 비판했다. 국력과 경제력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꼭 필요한 창의력을 말살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러자 나이 지긋한 은행업계 고위층 한 분이 K팝을 언급하면서 “한국이 창의적이지 않다면 왜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 대중음악을 듣느냐”고 반박했다.

이런 의견을 가진 한국분이 많다. 하지만 근거 없는 믿음은 깨져야 한다. 미안하지만 평범한 유럽 사람들은 한국 대중음악에 대해 거의 모른다. 한국 대중음악 팬들은 있지만 극소수다. 프랑스·아일랜드 현지에서 K팝 매니어들에 대해 보도를 하는 것도 대부분 현지 매체가 아니라 한국 매체들이다. 한류의 해외 진출 시도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K팝이 세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매개체가 돼가는 건 맞는 것 같다. K팝은 실제로 북미와 유럽 지역에 팬을 거느리고 있으며 아시아 전역에선 환상적일 정도로 인기가 많다. 하지만 궁금하다. 이런 현상이 과연 한국에 좋은 걸까?

1998년 즈음부터 2005년까지 한국 영화는 특별한 시기를 맞이했었다. (당시 개봉했던) ‘오아시스’ ‘지구를 지켜라’ 혹은 ‘파이란’에 맞먹을 수 있는 영화들을 만들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한국의 문화적 성취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사람들은 드디어 한국의 창의적인 인디 음악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컴퓨터 게임도 한국에서 만들어진다. 소설가 신경숙씨와 같은 이들은 한국 문학도 인간의 보편적 감성에 호소한다면 어느 나라에서든 매력을 가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박지성 선수는 여전히 내 고향 맨체스터에서 사랑받고 있다. 뽀로로 역시 한국의 주니어 문화 대사 정도는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일어난 현상이다. 한국은 이제 부유하고 민주적이며 개방 속도도 빠르다. 방송인 겸 학자인 박정숙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당시 박씨는 ‘한류’라는 트렌드를 세 단어로 간단히 정리했다. ‘이젠-우리-차례야’. 텔레토비든 버트런드 러셀이든 문화적 영향력은 일정 조건들이 맞으면 자연스럽게 온다. 강요하거나 바란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요즘 한류에 대한 논의의 초점은 ‘한국을 홍보하는 대중음악’에 맞춰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칼럼을 쓰는 지금도 카페 밖에 지나가는 버스엔 정부의 ‘Visit Korea Year(한국 방문의 해) 2010~2012’라는 캠페인의 슬로건이 영어로 씌어져 있다 (2010~2012년은 3년이니까 단수 ‘Year’가 아닌 복수 ‘Years’를 쓰는 게 맞다고 누군가가 얘기해 줬으면 좋겠다). 이 캠페인은 외국인 관광객이 ‘K팝 커버 댄스’라는 이벤트에 참가하도록 독려한다. 서울시는 K팝 댄스 길거리 투어까지 하면서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까지 경연대회를 주최하고 있다.

나로선 안타깝다. 이 전략이 효과를 본다면 외국인들에겐 ‘한국=아이돌 그룹의 나라’라는 단순한 등식이 성립할 것이다. 이런 인식이 어떤 인상을 낳을 것인가? 영국인인 내가 ‘영국=스파이스걸스’라는 정의를 원할 것인가, 아니면 비틀스나 셰익스피어로 정의되는 것을 원할 것인가? 게다가 한국이 아이돌 그룹으로만 대변될 경우 20대 이상의 연령층에게는 한국의 매력을 어떻게 호소할 수 있을까.

나도 K팝을 좋아한다. 하지만 빨리 소비되고 사라지는 음악, 그리고 훈련은 많이 받았지만 옷은 너무 짧게 입는 여성 아이돌 그룹이 한국 문화의 대표가 되긴 어렵다. 한국은 긴 과거와 풍요로운 현재를 가진 나라다. 그런데도 한국은 하이힐을 신고 우쭐대며 걷고 머리를 까딱거리며 ‘사랑해’라는 후렴구가 귀에 맴도는 이미지로 자국을 광고하고 있다.



대니얼 튜더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경제학을 전공한 후 맨체스터대에서 MBA를 땄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처음 방한했으며 지난해 6월부터 서울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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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