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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여럿보다 좋다

이른 아침 뉴욕 맨해튼 코리아타운에 위치한 한국음식점에 짙은 색 정장을 차려입은 한국 신사들이 무리를 지어 나타났다. 족히 15명은 넘어 보였다. 언뜻 보기에 누군가 중요한 사람을 수행하는 듯했다. 그때 마침 길 건너 식당 2층 창가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던 필자에게 식당 주인이 물었다. “서울에서 아주 중요한 VIP가 오신 모양이죠? 경호원이 아주 많이 따라 왔네요.”

공교롭게도 그때 이명박 대통령이 뉴욕 방문 중이었다. 식당 주인은 혹시 대통령이 오신 건가 생각했던 것 같다. 이날 광경은 실제로는 우리나라 모 금융기관 수장의 뉴욕 출장 모습이었다. 서울부터 수행한 여러 명 외에도 뉴욕 현지에 파견된 주재원들까지 다 모여든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중국에 새로 부임한 게리 로크 주중 미국대사의 소탈한 모습이 화제다. 그는 출장 다닐 때 곧잘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탄다. 그런 모습을 보고 중국 기자가 “중국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냐”고 묻자 그는 “미국대사관 직원들은 주로 이코노미석을 탄다”고 대수롭지 않게 응수했다. 수행원 없이 단출하게 다니는 모습도 중국인들에게는 좋은 인상을 심어 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중국인들도 출장 다닐 때 격식을 많이 차리고, 대규모로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이 우리보다 한 술 더 뜨는 것 같다.

과거의 기록을 보면 옛날에는 동서양 가릴 것 없이 왕이나 귀족들이 움직일 때 많은 수행원을 대동하고 다녔다.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다녀 온 모습을 묘사한 ‘원행을묘정리 의궤’를 보면 수행원 1779명에 말 770필이 동원됐다. 1795년 화성행차 때는 수행원이 6000명이 넘었다고 전한다. 임금이야 그렇다 치고 행세하는 고위 관리들도 외출 때 가마꾼을 비롯해 시종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녔다.

서양의 경우도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평상 시 수행원이 4000명에 달했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옷을 갈아 입을 때 시중드는 인원만 20명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귀족사회에서도 수행원 수는 권력과 능력의 상징처럼 되어 있었으니, 어느 정도였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동서양 간에 확연한 차이가 생겼다. 서양의 경우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사고가 주류를 이루고, 개인주의가 중시되면서 불필요한 허식이 사라졌다. 반면 동양에는 아직도 허례허식과 가부장적인 권위주의가 남아 있어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현대판 귀족이라 할 수 있는 대기업의 수장들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오래전에 세계 최대 반도체기업 총수인 인텔의 앤디 그로브가 라스베이거스 컴퓨터 박람회 ‘컴덱스’에 갔다가 호텔 체크아웃을 위해 혼자 줄을 서 있는 모습이 기사화된 적이 있다. 몇 년 전 세계 최대 기업인 미국 GE의 제프리 이멀트 회장은 수행원 하나 없이 한국을 방문해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다. 물론 한국에서는 GE코리아 직원이 수행했겠지만 미국에서부터 주렁주렁 수행원을 데리고 올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필자도 업무상 글로벌 금융기관 최고경영자들의 방문을 받을 기회가 있다. 만나본 사람들 중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업무와 직접 관련된 담당 직원 외에 불필요한 수행원들과 함께 온 것을 본 적이 없다. 혼자서 서울지점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 우리나라는 기본이 4, 5명이다. 업무상 꼭 필요한 담당 직원을 동행시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혼자 출장을 다니는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저러면 도리어 더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전을 할 때 과거에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몰려 다니며 요란을 떤 것이 도리어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 주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를 교훈 삼아 이번에는 대통령도 수행원을 3, 4명만 대동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렇게 세심하게 신경을 쓰자 한국이 많이 세련됐다는 평가를 받아 유치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얼마 전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한국인 재미동포 중 주정부 공무원으로서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버지니아주 상무차관을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는다. “일자리 유치 등을 위해 동분서주하느라 출장이 잦은데 경비절감을 위해 웬만한 거리는 직접 차를 운전하고, 당연히 불필요한 수행원 없이 주로 혼자 다닙니다.” 혼자가 여럿보다 좋은 이유다.



유상호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한일은행·대우증권·메리츠증권을 거쳤다. 2002년 한국투자증권 부사장으로 옮긴 뒤 2007년 사장에 취임했다. 증권업계의 대표적인 국제금융 전문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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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