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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니로 밝혀낸 제작 연대… ‘엄복동 자전거’ 비밀 풀었다

1923년 마산체육회 주최 전조선자전차대회 우승 당시 사진. [김근우 교수 제공]
2009년 9월, 한국체대에서 체육사를 가르치는 하웅용(45) 교수는 문화재청에서 연구용역 제안을 받는다. 내용은 ‘일제시대 자전거 영웅이었던 엄복동 선수가 탔던 것으로 알려진 자전거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고 한다. 그 자전거가 실제로 엄복동 선수가 탔던 것인지, 정확한 제조 연도와 국내 반입 과정을 밝혀 달라’는 것이었다. 문화재청은 이 자전거의 역사적 가치가 입증되면 등록문화재로 지정하겠다고 했다.

하 교수도 이 자전거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브레이크가 없이 날렵하게 생긴 이 경주용 자전거는 김근우 전 한국체대 교수가 소장하고 있었고, 그가 퇴임하기 전까지 한국체대 박물관에 전시돼 있었다. 1920년 전후 영국 자전거회사인 러지(Rudge)가 제작했다고 하며, 핸들 아래 기둥에 러지사 로고와 일련번호(시리얼 넘버)가 붙어 있다는 것도 하 교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리얼 넘버만 찾아보면 제조연도를 쉽게 알 수 있겠지’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간단치 않았다. 러지사가 1930년대 폐업했고, 당시 일했던 사람들도 모두 고인이 됐기 때문이다. 하 교수는 연기처럼 흩어져버린 엄복동 자전거의 실체를 찾아 기약 없는 탐색을 시작했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하 교수는 성실한 영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이 자전거가 ‘1910∼14년 사이 영국 러지사에서 만들어 일본을 거쳐 들어온, 희귀한 경주용 제품’임을 입증했다. 엄복동 자전거는 지난해 8월 등록문화재 466호로 지정됐다. 올해 9월 27일부터 10월 16일까지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문화재청 50주년 기념전에도 전시됐다. 이 자전거의 보험 산정가는 3억원이었다.

스포츠 오디세이가 두 교수의 도움을 얻어 엄복동 자전거가 100년 세월의 먼지를 털기까지 과정을 취재했다. 퍼즐 조각을 맞추는 듯한 지적 재미와 미시사(微視史)의 아기자기함을 만끽한 시간이었다.

1910~1914년 일본 판촉위해 특별생산
하 교수는 2009년 10월 김 교수 자택을 방문해 자전거를 자세히 관찰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 자전거는 바퀴 틀이 목재로 돼 있고, 손바닥 모양의 러지사 로고와 회사 이름(RUDGE-WHITWORTH), 그리고 시리얼 넘버(1065274)가 찍힌 동판이 부착돼 있다. 하 교수는 사진과 함께 e-메일과 팩스를 영국에 있는 6개 자전거 박물관에 보냈다.
하지만 연구용역 종료 시점인 11월 말까지 어떤 답변도 오지 않았다.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던 하 교수에게 11월 29일 e-메일이 도착했다. 발신자는 영국 국립 자전거박물관에서 일하는 스콧포드 로런스였다. 그는 ‘매우 흥미 있는 주제다. 자세한 부품 사진과 실측도를 보내 달라’고 했다.

이틀 뒤 로런스가 다시 e-메일을 보냈다.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겠다. 요즘 제작되는 자전거는 체인과 맞물리는 앞 기어 톱니와 톱니 사이가 1/2인치(12.7㎜)인데 1920년까지 생산된 러지 제품은 5/8인치(15.9㎜)다. 그 자전거 기어의 톱니와 톱니 사이 길이를 재서 보내 달라.’ 하 교수가 재 보니 정확히 15.9㎜였다. 이로써 이 자전거는 1920년 이전에 생산된 것임이 확인됐다.

로런스는 12월 3일에 보낸 e-메일에서 러지 자전거 전문가인 마이크 크리스티에게서 얻은 정보를 알려줬다. 이 자전거의 앞 기어에는 러지의 상징인 손바닥 모양 문양이 있는데, 이 디자인은 1910년 이후에 제작된 자전거에만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엄복동 자전거는 1910년부터 1919년 사이에 만든 제품임이 확인됐다.

그런데 영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1914년 8월부터 1919년까지 러지를 포함한 영국의 자전거 회사들은 무기와 군수품을 생산하기 위해 자전거를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로런스의 12월 9일자 e-메일) 따라서 엄복동 자전거는 1910∼14년 사이에 만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다음은 동판에 찍힌 시리얼 넘버다. 자료에 따르면 러지사는 1920년대 전후로 제품에 엠블럼을 부착했는데, 거기에는 회사 이름과 소재지인 코벤트리(COVENTRY)만 찍혀 있지 시리얼 넘버는 없다. 시리얼 넘버는 본체에 새겨져 있는데, 6자릿수였다. 로런스는 ‘혹시 그 자전거 본체에 6자리 숫자가 있는지 살펴보라’고 했는데 엄복동 자전거에는 그런 숫자가 없었다.

로런스는 자전거 전문가들과 여러 차례 논의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보내왔다. ‘그 자전거 동판에 찍힌 7자리 숫자(1065274)는 제품 일련번호도 아니고, 그 당시 생산된 어떤 자전거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 자전거는 영국에도 없는 희귀한 제품이며, 러지가 일본 판촉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서 수입해 엄복동에게 줬을 것”
다음은 이 자전거가 정말 엄복동이 탔던 것인가를 입증하는 작업이었다. 이 자전거에는 엄복동의 사인은커녕 그가 탔다고 증명할 수 있는 어떤 흔적도 없다. 1923년 엄복동이 마산체육회 주최 전조선자전차대회 우승 당시 찍은 사진에 자전거가 나온다. 김 교수가 소장하고 있는 자전거와 모양이 흡사한 경주용이지만 그 자전거는 아니다.
결국 관련자들의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사이클 원로들은 한목소리로 “이 자전거를 엄복동이 탔다는 걸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황상으로도 당시 희귀했던 경기용 자전거를 조선 최고의 자전거 선수인 엄복동이 타지 않았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 자전거의 소유자가 바뀐 경로를 추적해 보면 ‘엄복동 자전거’에 대한 믿음이 커진다. 엄복동은 1920∼30년대 이 자전거를 타다가 후계자이자 뛰어난 자전거 선수였던 조수만에게 넘긴다. 광복 직후 사이클 원로 박승렬이 500원에 이 자전거를 넘겨받아 동생인 박성렬에게 줬다. 당시 신문에는 조수만의 부인이 “이 귀중한 자전거를 박승렬이 사실상 강탈해 갔다”고 크게 화를 냈다는 기사가 나온다. 황해도 사리원이 고향인 박성렬은 1·4후퇴 때 이 자전거를 분해해 월남했고, 2002년에 작고했다. 살림이 궁벽해진 미망인 김경순씨에게 자전거는 애물단지였다. 이에 섭섭지 않게 사례를 하고 김 교수가 넘겨받았다고 한다.

엄복동이 근무하던 일미상회는 일본에서 자전거를 수입해 판매하는 곳이었다. 당시 조선에서는 자전거 대회가 큰 인기를 끌고 있었고, 자전거 선수들은 요즘의 실업팀처럼 업체 소속으로 대회에 출전했다. 일미상회도 회사 홍보를 위해 엄복동에게 투자를 많이 했는데 가장 큰 투자가 바로 ‘최신 경주용 자전거’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영국 러지사가 판촉용으로 일본에 보낸 이 자전거를 일미상회가 수입했고, 일미상회 소속 선수들이 돌려가면서 타다가 대회 때는 엄복동이 탔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엄복동이 워낙 뛰어난 성적을 올려 나중에는 사실상 개인 소유처럼 인정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용택 한국사이클원로회 부회장도 “일부 부품은 갈아끼운 것이겠지만 자전거 자체는 엄복동과 조수만이 탔던 게 틀림없다. 엄복동 자전거는 한국 사이클계는 물론 근대 스포츠사의 귀중한 유물”이라고 말했다.

‘고물’과 ‘보물’은 글자 한 자 차이다. 의미는 천지 차이다. 고물이 될 뻔했던 엄복동 자전거는 뜻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보물이 됐다. 이 자전거를 타고 근대의 뒷골목을 돌아다녀 볼 수 있어서 나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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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