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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바르던 한국인이 …

한국인은 자주 “파이팅”을 외친다. 사실 영어에서 파이팅이란 주먹다짐하고 싸운다는 의미라 좀 머쓱하다. 모르는 외국인 눈에는 한국인이 싸움을 무척 좋아하는 듯 비칠 것이다.

사실 한국인은 다른 동양인에 비해 격해 보이기도 한다. 비행기나 기차가 연착했을 때 빨리 환불하라며 거세게 항의하는 것도 한국에서 유독 많이 보는 장면이다. 갱단이 아닌데도 대낮부터 욕하고 주먹다짐을 하는 풍경도 낯설지 않다. 10대도 아닌 직장인들이 술에 취해 거리와 식당에서 싸움을 거는 것도 선진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다. 파출소나 병원에서도 폭행을 휘두르는 일이 많아 의사들이 환자에게 맞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격한 감정으로 학생을 때리는 선생님도 적지 않지만, 학생과 학부모에게 맞아 정신과를 찾는 교사도 많다.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욕과 주먹질이 일상화된 것이다. 연예인·운동선수·정치인·기업가 등 폭행 가해자의 면면도 화려하다. 때리고 부수는 누군가를 피해 잠적해야 하는 이도 적지 않다. 만인이 만인에게 화내고 욕하고 손찌검하는 사회로 치닫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과격하고 시끄러운 국민성 탓을 하는데, 이는 한국 정서가 원래 어땠는지 역사를 몰라서 하는 얘기다. 공자는 논어에서 예악을 좋아하는 군자의 나라 동이, 즉 한반도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고 적시했다. 패륜아가 나오면 살부리(殺父里) 같은 이름을 붙여 마을 전체가 자자손손 짐을 져야 할 정도로 폭행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잦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심성이 황폐화되지 않고 공동체가 유지된 까닭 중 하나다.

개화기 이전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은 말은 통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매우 점잖고 예의 바르다고 입을 모은다. 조용한 은자(隱者)의 나라란 얘기는 그냥 나온 게 아니다. 20세기 중반까지의 소설에 묘사되는 한국인 역시 조심스럽고, 예의 바르게 남부터 걱정하는 성격이 훨씬 많았다. 오죽하면 화를 표현하지 못한 한(恨)이 한국의 문화 정신병이라고 세계에서 공인되었을까. 1970년대만 해도 가난하지만 노인을 공경하고, 가족과 이웃을 위하는 전통이 한국인의 정신질환을 예방해주는 것 아니냐는 정신의학 논문과 기사가 적지 않았다.

최근 한국인의 모습은 그런 전통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유교로 인한 억압적 체면치레를 억지로 해야 한 것에 대한 반동현상도 있다. 가식적으로 감정을 속이는 것보다 어쨌거나 본능에 충실해야 건강하고 성숙하다고 믿는 얼치기 서양 추종자들의 조언 탓도 있겠다. 수십 년간 축적된 사회적 불평등이나 정의롭지 못한 시스템에 대한 분노도 있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결과적으로는 무시당하고 혼자 고생만 하는 것 같다면 어떤 식으로건 분노와 절망감이 표현된다. 불만층이 많아질수록 사회 전체는 불안정해진다. 툭 하면 부자들이 납치되고 강도를 당하는 중남미에서는 큰 부자들도 결코 안온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

교포나 외국인은 흔히 한국을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말한다. 역동적이고 놀 곳이 많은 대신 갈등과 스트레스도 심하다는 얘기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분노에 사로잡힌 이들이 넘쳐난다면 그 사회는 불행하다. 욕과 폭행이 일상화되고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거친 사회는 유토피아를 꿈꿀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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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