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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2. 서쪽에서 온 마을 (8)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날 잡아가요. 벌 받아야 할 놈은 쌍둥이가 아니라 쇤넵니다.”

 전추산이 사람을 시켜 쌍둥이 형제를 포박하는데 엿장수가 주막집 마당으로 들어서며 펄쩍 뛰었다.

 “… 어제 제가 만든 호박엿을 자시고 스님이 돌아가셨다굽쇼? 아이고 하느님 맙소사. 이 일을 어쩌면 좋대요. 쇤네가 스님을 죽인 셈이네요. 그 엿 당장 내놔요. 쇤네도 먹고 죽어야겠어요.”

 자신을 꼬박꼬박 쇤네라고 이르는 엿장수가 전추산에게 생떼를 썼다. 전추산이 문제의 엿을 종발에 담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더라도 엿장수는 순박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목소리로 볼 때 중늙은이였다.

 “강도에서 온 인보 스님은 낯이 설었을 게다. 그에게 언제 엿을 팔았는지 기억하겠는가?”

 내가 묻자 엿장수는 기억에 없다고 했다. 청림 삼거리 주막 마당에서 광대패들이 놀 때 사람들이 몰려들어 엿판이 금방 동나버렸단다.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탈이 난 사람은 인보밖에 없었다. 엿장수에게 아무런 혐의도 둘 수가 없었다. 엿에 독이 묻었다면 그건 나중의 일이다. 그만 돌아가라 했는데도 엿장수는 막무가내다.

 “어서 그 엿 내놔요. 그 엿 먹고 따라 죽을래요. 그래야 알라하 앞에 면이 서지요.”

 “알라하?”

 어제 아침나절 이 마을에 온 이래 처음 들어보는 경교 용어가 엿장수 입에서 나왔다. 수기 스승과 함께 개경 송악산 아래 안화사에서 본 경교 문헌 구절들이 떠올랐다. 경교도들이 부르는 찬송가에 ‘경례! 알라하[阿羅訶], 메시아[彌施訶], 성령! 이 세 분은 한 몸이시옵니다’는 대목이 있었다. 삼위일체를 말하는 내용이었다.

 “그건….”

 전추산이 머뭇거리자 엿장수가 울먹이며 두런거렸다.

 “쇤네가 만든 호박엿을 먹고 사람이 죽었다면 쇤네는 천벌을 받아 마땅합죠. 그건 하늘에 죄를 지은 거구먼요. 먹는 것이 하늘이니까요.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습죠.”

 “그 엿 제가 드린 거예요, 인보 스님께.”

 그렇게 말하며 가온이 등장했다.

 “옳아. 어제 내가 가온이에게 엿을 주었었지. 우리 가온이에게 맛 좋은 엿을 주는 건 쇤네의 기쁨이랍니다.”

 조금 전까지도 벌벌 떨렸던 엿장수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판 것도 아니고 공짜로 주면서도 기분이 좋은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대장간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스님을 보고 제가 맛 좀 보시라고 드렸어요. 통 안 드셨는지 그 엿 그대로네요.”

 나는 가온이 말한 대장간의 위치를 물었다. 대장간은 약초골 안에 있다고 했다. 삼거리에 있는 대장간도 아니고 그 먼 데까지 인보는 왜 갔던 걸까. 아까 탁연이 찾은 목격자들 가운데는 약초골 대장간에서 인보를 봤다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가온의 증언으로 인보가 밟았던 새로운 동선이 확보되었다. 그리고 인보가 엿을 먹지 않았다는 것도 밝혀졌다.

 “그 스님이 설령 엿을 자셨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거구먼요. 이 목걸이를 걸고 맹세해요.”

 엿장수가 내게 내민 건 나무로 깎은 십자가 목걸이였다. 나는 김승이 경판에 새겨 올린 판화 속 십자가를 꺼내어 만지는 느낌이 들어서 섬뜩했다. 이들에게는 일상생활 속의 일부가 내겐 발칙한 이교도의 징표였기 때문이다.

 “구세주의 혼이 담긴 이 십자가처럼 쇤네가 만든 엿에는 저의 혼이 담겼구먼요. 누구라도 한 볼따구니만 먹으면 이 달콤한 인생 참 살 만한 거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 엿이라고요. 팍팍하고 쓰디쓴 세상살이, 죽지 못해 사는 인생들이 너무 많잖아요. 쇤네는 엿을 밥이자 약으로 쳐요. 옥수수엿, 차조엿, 고구마엿, 호박엿, 콩엿, 보리엿, 쌀엿, 깨엿, 호두엿, 생강엿 계피엿, 대추엿, 연근엿, 심지어는 닭엿, 꿩엿도 만들어요. 웬 줄 알아요? 대물림 노비였던 쇤네와 처자식은 흉년에 주인집에서 쫄쫄 굶주리다가 거리로 쫓겨났거든요.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 엿 한 볼따구니 얻어먹고 용케 살아났답니다. 마누라와 어린 새끼들은 누렇게 떠서 죽고 말았지요. 땅을 치고 하늘에 삿대질을 했어요. 사람이 무서웠어요. 사람이 죽어 나가도 사람을 돌보지 않는 비정한 세상에서 쇤네가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소처럼 부려 먹고 흉년 드니 양식 아깝다며 내친 야박한 주인 양반집 찾아가서 차라리 때려 죽여달라고 매달렸구먼요. 정말로 몰매질을 해서 거적때기에 싸 들판에 버립디다. 장독이 나 송장 다 된 쇤네를 똥물까지 먹여가며 살려낸 사람들이 우리 마을 광대패들여요. 우리 마을에서 쇤네는 천국을 보았네요. 새 터, 새 하늘, 새사람들을 만났네요. 달콤하고 먹음직스러운 엿은 거듭난 쇤네가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바치는 이바지 음식이랍니다. 쇤네는 배곯아 죽은 우리 마누라와 새끼들 먹인다는 생각으로 지극정성 엿을 만들어요. 내가 고아낸 엿, 맛나게 먹는 사람이 내 식구지요. 보람차요. 자꾸 또 만들고 싶어요. 쇤네는 죽는 날까지 엿을 만들어 우리 마을 사람들 입을 즐겁게 할 거구먼요. 이문 남길 생각 같은 건 전혀 안 해요. 나 배 안 고프고 재료 값만 벌면 그만여요. 이렇게 살다가 하늘나라에 돌아가면 알라하께 갖은 엿 만들어 공양할 거구먼요.”

 타령조로 풀어내는 엿장수의 사연은 구구절절했다.

 “광대패라면 쌍둥이 형제도 해당하는가?”

 “그럼요. 쇤네 생명의 은인이라니까요.”

 인보를 독살한 것으로 의심받는 쌍둥이가 들판에 나자빠져 죽어가는 노비를 구한 적이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전국을 유랑 걸식하는 처지에 무슨 여력이 있어서 그런 선행을 했느냐고 물었다. 새끼줄에 손이 묶인 쌍둥이 형제 역시 말없이 십자가 목걸이를 꺼내 보이고 있다고 전추산이 일러줬다. 상처 입고 버림받은 인생을 거두어주고 치유해주는 힘이 십자가에 담겨 있다는 것인가.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불교 신자들은 만(卍)자 표지를 목걸이로 하고 다니거나 거기서 특별한 힘을 얻지는 않는다. 이들 경교도들은 너무 지나치다.

 “전 장군, 그대도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나?”

 불현듯 혹시나 싶어서 물은 말이었다. 그런데 대답이 놀라웠다.

 “이 마을 사람들은 죄다 하고 있습니다. 탁연 스님까지도요.”

 “불교 승려이면서 동시에 경교도일 수도 있는가?”

 탁연 쪽에 대고 물었다.

 “해동에 불교의 등불이 전해진 지 어언 구백 년이나 되었소이다. 다행히 우리의 전통신앙에 불교적 요소가 들어 있어서 바로 불이 붙었지요. 그리하여 인도나 중국을 능가하는 높은 정신문명을 꽃피웠지요. 하지만 시간은 모든 걸 녹슬게 만드오. 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피로가 누적됐고 물때가 슬 만큼 슬었지요. 사람들은 의례적인 행사치레로 변질돼버린 불교에 식상해 있답니다. 지밀 승정이 아시다시피 지금 이 나라에 발로 차이는 게 놀고먹는 불교 승려요. 그들 대부분 껍데기만 승려지 진짜 중이 몇이나 될 것 같소?”

 언제 들어도 현란한 탁연의 변설이었다.

 “그래서 중 옷을 입고 그 해괴한 경교도가 되셨다?”

 나는 그렇게 탁연을 비꼬았다.

 “지밀 승정, 경교가 해괴하다는 건 승정의 그릇된 선입관이오. 낯선 건 언제나 해괴해 보이는 법이지요. 유교도 불교도 이 땅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다 해괴해 보였을 게요. 경교의 본령을 알고 나면 유교나 불교, 도교보다 훨씬 쉽고 친숙해지오. 하나만 물읍시다. 고려국 사람들이 몽골군들에게 짓밟히고 고통 받을 때 부처는 어디에 계셨다죠? 해괴한 건 중생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기들 배만 불리는 불교요.”

 탁연의 논박에 반론하기가 궁색했다. 지금 고려국 불교가 녹슬고 물때 전 건 사실이다. 승려들은 십중팔구 놀고먹는 걸 당연시하고 중생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나는 늘 그게 부끄러웠다.

 내가 감독하고 있는 대장경 판각 불사만 해도 그렇다. 사람들은 불탄 대장경을 다시 새기면 몽골군이 물러갈 거라고 믿고 있다. 이규보 상국은 『대장 각판 군신 기고문』에서 그전에 거란이 쳐들어왔을 때 고려 현종이 남쪽에 피란 와서 대장경을 새겼더니 거란이 물러간 예가 있다고 했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단다.

 솔직히 나는 그 어쭙잖은 논리에 코웃음이 나온다. 부처님께 간절히 빌고 판각 불사를 정성껏 한다고 적들이 물러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들은 전염병과도 같다. 전염병이 기도한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다. 하필이면 왜 이 어수선한 전쟁 중에 이 방대한 판각 불사를 한다고 국력을 소모하는 것인가. 그 힘으로 적들과 맞서 싸울 수는 없는 것인가. 불가항력이니까 기도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고 한다면 또 모르겠다. 힘겨운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야말로 종교의 본령이니까.

 “알라하는 그대들의 고통을 끌어안았다는 말이오?”

 “기적이 우리와 함께했답니다. 그분의 은혜로 우리는 전쟁과 민란, 전염병이 창궐하는 이 지옥 같은 세상의 한 귀퉁이에다 천국을 세웠어요.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고자 합니다.”

 “기적? 내가 눈멀고 내 부하가 독살당한 이 판국에 그런 흰소리가 가당키나 하오? 지금 당장 내 눈을 뜨게 하고 죽은 인보 스님을 살려내 보시오. 그 두 가지가 아니면 내겐 그 어떤 것도 기적이 아니오. 만일 그 기적을 행하면 그대들이 숭배하는 알라하인지 메시아인지를 인정하지.”

 나는 탁연의 변설을 더 듣고 싶지 않아서 조롱하듯 내뱉었다. 마리아가 음과 양의 교접 없이 예수를 잉태했다거나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렸다가 죽은 다음 부활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고달픈 현실을 망각하고 막연한 영생의 꿈을 꾸게 만든다. 내가 아는 경교는 이처럼 허황된 이야기로부터 출발한 종교다.

 “기적은 늘 일어나요. 승정 어른께 기적이 일어나면 그때 가서 딴소리 없기예요? 인정하겠다는 그 말씀 저버리지 마시라고요.”

 가온이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한 말에 쐐기를 박았다.

 “내가 얼마 전, 국제 무역상에게 듣기로 그리스도를 믿는 대진국과 마호메트를 믿는 대식국이 벌써 150년 넘게 끔찍한 십자군전쟁을 해오고 있다더구나. 그리스도교와 너희들 경교가 같은 뿌리임을 안다. 너희가 믿는 신은 전쟁의 신이다!”

 나는 가네야마 강수 밑에서 일하던 인도인 항해사의 말을 기억해내어 통쾌한 반론을 날렸다.

 “스님,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을 수가 있는 거예요. 그들과 우리가 믿는 신은 이름만 같을 뿐이에요. 무엇이 그렇게 두려우신가요? 그처럼 마음을 꼭 닫아걸고서 무엇이 보이기를 원하세요? 지금까지 눈이 보지 못한 것, 귀가 듣지 못한 것, 손이 만지지 못한 것, 마음에 떠오르지 아니한 것이 스님께 다가올 수도 있답니다.”

 어린 가온이 나를 가르치듯이 말했다. 알 수 없는 건 그런 그 아이에게 화를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 아이의 말을 곰곰이 곱씹어보게 된다. 불교의 유식학에서 말하는 8식 너머의 세계가 열릴 수 있다는 얘기를 그 아이는 그렇게 풀어서 말하고 있었다. 8식이 거울처럼 맑아지면 기적 같은 일들이 일상처럼 벌어진다. 사물이 그대로 와서 비치기 때문이다.

 “하긴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걸 믿는 터무니없이 허황된 너희들이니 무엇인들 안 믿겠느냐? 내 눈을 뜨는 것 외엔 다른 건 기적이 아니니 그리 알라.”

 나는 꽉 막힌 시골고라리처럼 일부러 억지를 부렸다.

 “전 장군, 쌍둥이를 묶은 새끼줄은 풀어주게. 달아날 놈들은 아닐 테니까. 그럼 약초골로 저들을 데리고 가서 조사해볼까.”

 나는 마루에서 몸을 일으키려 하였다.

 “점심시간이 다 됐습니다. 요기하고 가시죠.”

 경황이 없어서일까. 좀처럼 시장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눈이 멀어서 상황을 보지 못하기에 배고픈 줄을 모를 수도 있었다. 눈은 세계의 창이자 가치 판단의 기준점이다. 그 눈이 다시 열린다면 어찌 약속을 저버리겠는가. 알라하나 메시아가 아니라 모기나 파리를 믿는 종교라도 기꺼이 인정할 생각이었다.

 구수한 토장국 끓는 냄새가 주막집에 진동했다. 인보의 죽음 때문에 모인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걸 마을에서 대준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나니 전추산이 패독산 탕제를 올려서 놀랐다. 이른 아침에 숙소를 나왔기 때문에 점심때는 당연히 거른다고 생각했었다.

 “약탕기와 약을 말에 싣고 온 건가?”

 약초골로 가면서 내가 전추산에게 물었다.

 “그럼요. 약은 정성이랍니다. 잡숫는 시간을 엄수해야지요.”

 “전 장군, 우리가 만난 지 고작 하루밖에 안 됐는데 친정 식구 같은 신뢰가 쌓였구나.”

 나는 말 위에서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탁연과 가온, 쌍둥이 형제가 동행하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두툼한 전추산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놓는다. 의심과 믿음이 순간순간 뒤섞이고 교차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연꽃 향기가 그윽했다. 곧 약초골에 들어서게 된다. 나는 지난 초파일 전야, 집정 최이, 최항 부자를 앓아 눕게 만든 물동이 독과 인보가 중독된 독이 같다는 점으로 미뤄 쌍둥이가 이 마을 출신임을 밝혀낼 수 있었다. 다른 곳에는 없고 이 마을에만 있는 독초이기 때문이다. 인보는 어쩌다 그 독을 먹게 된 것일까.

일러스트=이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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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