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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의 ‘마음아 아프지마’] 의학적으론 멀쩡하신데 …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기가 막힐 노릇이다. 분명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는 멀쩡하다고 하니 말이다. 해결되지 않는 증상만으로도 괴로운데 큰 병원, 이름난 의사를 찾아다니며 ‘닥터 쇼핑’까지 하려니 병이 하나 더 생길 지경이다. 이런 경우에 쓰는 의학 용어가 ‘MUS’다.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증상(Medically Unexplained Symptoms)이란 뜻이다. 생각보다 빈도가 높아 개원의를 찾는 환자 다섯 명 중 한 명 정도는 MUS에 해당된다고 한다.

 정신건강을 다루는 의사로서 MUS로 고생하는 분들을 자주 보게 된다. 이 증상의 상당 부분이 뇌의 심리학적·생물학적 피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충분한 진료·검사를 했는데도 증상의 원인이 잘 발견되지 않는 경우 일부 희귀병을 제외하면 대부분 마음의 괴로움, 즉 뇌의 피로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MUS 증상은 소화불량, 어지럼증, 이명, 만성 기침 등 매우 다양하다. MUS로 고생하는 분들을 치료하면서 나름 이 분야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런데 어느 날 49세의 남자 환자가 ‘발기부전’이라는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문제를 들고 찾아왔다. 큰 대학병원 비뇨기과도 가봤고, 명의라 불리는 분들도 만나봤다고 했다. 용하다는 한의원도, 각종 민간요법도 이미 다 써봤단다. 열심히 인생을 달려와 이제 좀 삶을 누리고 싶은 시점에 남성성의 소실로 당황하는 그분의 안타까움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꼭 이분을 다시 일으켜 세워 드리리라’는 굳은 마음가짐으로 치료에 임했던 이유다. 일단 약물·상담 치료를 병행했다. 하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변화가 없었다. 환자분 뵙기가 여간 부끄럽지 않았다. 그런데 환자가 되레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선생님, 너무 애쓰지 마십시오. 이제 그 문제에 대해 맘도 편해졌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헷갈린다. 나는 이분을 치료한 것인가, 아닌가.

 MUS 치료에 있어 기능적 증상의 치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증상에 대한 환자의 인지·정서적 반응이다. 증상 자체보다는 증상에 대한 불안·공포 같은 정서 반응과 부정적 생각 같은 인지 반응이 삶의 질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변화가 없으면 한 가지 증상이 나아지더라도 또 다른 신체적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속상하거나 억울한 감정이 쌓이면 감성 스트레스 시스템에 과부하를 주고, 이것이 여러 생물학적 반응을 거쳐 신체증상을 만들어낸다. 마음의 ‘화’가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오죽하면 ‘화병’이 의학용어로 인정을 받았겠는가.

 과거 화병의 주인공은 고된 시집살이를 오래한 며느리였다. 이런 부류는 누가 봐도 화병에 걸려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세련된 화병’이 대세라 그냥 봐선 알 수 없다. 남자들도 화병에 많이 걸린다.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다루는 상업적 서비스는 날로 발전하고 있는데, 감정적 ‘한’은 갈수록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는 얘기다.

 인문학자도 철학자도 아닌 휴대전화·컴퓨터 사업을 하던 스티브 잡스가 남긴 명언들이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정치적·심리적 신드롬을 일으켰다. 사람들의 마음 흐름이 주된 관심사인 나는 그들이 실제 어떤 사람들인가보다는 그들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불러온 정서 반응에 더 관심이 많다. 스티브 잡스와 안철수 원장은 야구로 치면 감성적 ‘직구’를 던지는 투수가 아닌가 싶다. 직구는 홈런을 맞을 위험이 크다. 용기가 없으면 던질 수 없다. 세련된 변화구에 지친 우리에게 이들이 시원한 직구의 맛을 보여줬다는 얘기다.

 세상 참 좋아졌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백수를 누리는 게 더 이상 꿈이 아니게 됐다. 하지만 이 장밋빛 약속은 동시에 공포를 키운다. 삶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생존에 대한 본능적 공포는 과거보다 훨씬 무서운 속도로 자란다. 경제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두려움도 더 커졌다. 이렇게 생존과 성공에만 집착하다 보면 직구를 던질 수 없게 된다.

 변화구는 화려하다. 하지만 이 화려함이 우리를 지치게 한다. ‘세련된 화병’인 MUS도 변화구 세상이 만든 감성의 병이다. 슬프면 슬프다고,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화려한 ‘감성 변화구’의 궤도가 꺾이고 꺾여 결국 부메랑이 돼 자신을 때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규율과 규제가 가득한 세상은 직구 던지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배수진을 치고 직구만을 고집했던 잡스의 말들이 가슴을 때리는 이유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돼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우리도 가끔은 세상에 직구를 날려보자.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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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