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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연의 매력 발전소] “수치 여사, 그저 따뜻이 안아주더군요”


백지연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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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끝나고 검은색 화면에 아웅산 수치가 한 이 말이 화면 가득 떠올랐다. 잠시 머물러 앉아 있었다.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릿속과 가슴속을 헤집고 다녔다.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그녀의 존재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영화를 보면서 많은 사람은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이 과연 알고 있었던 것일까. 잠재적 망각에 있던 그녀를 영화 ‘The Lady’는 깨워내려 애쓰고 있었다.

 몇 달 후 개봉 예정인 영화를 앞당겨 본 것은 이 영화의 감독, 주연배우인 뤼크 베송과 양자경을 인터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겐 영화 ‘예스 마담’ ‘와호장룡’으로 잘 알려진 양자경은 아웅산 수치의 일생을 그린, 그녀가 벌여온 민주투쟁의 역정뿐 아니라 조국을 위해 영국에 있는 가족과 생이별해야 했던 그녀가 남편과 나눈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린(뤼크 베송 감독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에 비교했다) 대본을 받아든 후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자신의 친구이자 세계적 감독인 뤼크 베송을 찾아간다. 뤼크 베송의 제작사가 이 영화를 제작해 주길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본을 받아든 뤼크 베송은 반대로 양자경을 찾아가 제작뿐 아니라 자신이 직접 감독해야 하겠다고 나선다. 아웅산 수치의 이야기는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의 문제, 아니 21세기를 거꾸로 걸어온 미얀마의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웅산 수치
 뤼크 베송은 이 영화를 통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아웅산 수치에 대해 검색해 보는 일이 생기길 희망한다고 말하며 자신이 이 영화를 촬영하는 내내 오직 하나, ‘진실’에 매달렸음을 강조했다.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그것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삶을 살아온 인물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죠. 감금된 생활이 길어 자료도 많지 않았고 주변 인물을 찾기도 쉽지 않았죠. 그러나 사실의 조각이라도 찾아 가장 사실적으로 그려내려 했어요. 예를 들어 영화 속에서 아웅산 수치가 시위대를 향해 발사하려는 군인들을 향해 혼자 맞서 조용히 걸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군인들이 그녀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지만 그녀는 차분히 요동 없이 앞서 나가죠. 이 장면을 촬영해야 하는데 목격자 두 명이 말하는 시간이 달랐어요. 한 명은 오전이라 하고, 다른 한 명은 한밤중이라 하는 거예요. 그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했어야 하죠. 아웅산 수치 여사의 집에서부터 세세한 것까지 모두 사실에 입각해 제작하려 한 것은 그녀가 평생 투쟁한 역사에 누가 되는 일이 없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뤼크 베송과 양자경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들이 만난 아웅산 수치는 어떠했을지, 자신의 삶이 영화화되는 것을 아웅산 수치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영화 촬영 중 가택연금에서 해제된 아웅산 수치를 직접 만날 기회를 갖게 됐던 양자경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촬영을 준비하면서 전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읽는다는 책을 구해 읽었죠. 흉내가 아니라 그녀가 돼야 했습니다. 직접 그분을 뵈었을 때 긴장했어요. 그러나 그분이 따뜻하게 안아줬죠. 자신의 삶이 영화화되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해달라는 부탁도 하지 않으셨죠. 다만 우리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셨어요. 큰 품으로 따뜻하게 안아주시기만 했죠.”

 아웅산 수치가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후 그녀와 통화를 했다는 뤼크 베송 감독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분의 특징 하나는 자신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대체로 다른 사람에 대해, 고통 받고 억압받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을 뿐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죠.”

 지난 십수 년을 전화선도 끊긴 집에서 감금된 채 살아야 했던 그녀. 사랑하는 아들 둘을 영국에 둔 채 삶의 일부를 통째로 빼앗긴 그녀, 지극히 사랑했던 남편이 영국에서 암으로 홀로 죽어갈 때마저도 가지 못했던,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국민들을 향해 군부가 총질을 해대는 것을 피눈물 흘리며 지켜본 그녀가 도대체, 왜 할 말이 없겠는가. 분노는, 혹은 억울함은, 아니면 지독한 슬픔, 슬픔은…. 영화를 통해 세상에 알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개인적인 모든 것은 가슴에만 머금은 채 다만 자신이 아닌, 자신의 조국에만 초점이 맞춰지도록 애쓰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당신의 자유를 미얀마가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써달라고.

 미얀마 정부의 변화나 며칠 전 세인 대통령의 사면조치는 아웅산 수치의 인고의 세월이 연주해 낸 서곡일 뿐이다.

백지연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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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