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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남영이 이야기

마동훈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
다큐멘터리 감독 오원환의 2009년 작품 ‘루트리스(rootless)’에 ‘남영(南英)’이가 등장한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와서 새로운 삶의 뿌리를 내리려다 실패하고 결국 탈남(脫南)하여 영국으로 망명한 아이들의 이야기다. 아이들 삶의 굴절과 애환을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만들면서 아이들의 신상보호를 위해 실명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감독은 남한과 영국의 첫 글자를 따서 이들에게 남영이란 집합적 이름을 붙였다.

 2003년 이후 최근까지 영국에 망명을 신청한 남영이의 수는 이미 1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영국의 국내법에 의해 망명 신청자로서 내무부 이민국의 보호를 받으며 난민자격 심사를 기다리게 된다. 심사를 무사히 통과하면 난민 비자를 받아 영국 내 정착이 허용된다. 그러나 이들이 남한을 경유한 것이 발각되면 난민 지위가 주어지지 않고 즉각 남한으로 송환된다. 난민 비자를 받은 남영이들 중에도 결국 마음을 바꿔 다시 남한으로 돌아온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이국땅 영국도 남영이들에게 포근한 삶의 터전이 되기 힘들어서였을 것이다.

 사선(死線)을 넘어 남쪽의 또 다른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아이들이 왜 다시 조국을 등질 수밖에 없었을까? 이들에게 남쪽의 조국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는 남영이에게 묻는 질문임과 동시에, 이들을 보듬어 안고 가야 할 필연적 운명과 책무를 지닌 남쪽 조국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가 과연 언젠가 한밤의 도적같이 찾아올지 모르는 통일 한국 시대를 차분히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이미 2만3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북한 이탈 주민이 남한에서 겪는 삶의 현장은 미래 통일 한국 사회의 미니어처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2009년 개정된 ‘북한이탈 주민의 보호 및 정착에 관한 법률’을 통해 해외 장기체류자 보호범위 확대, 지역적응 교육, 청소년 학교 등의 지원 근거를 대폭 확대했다. 북한 이탈 주민에게는 정착금, 임대아파트와 주거지원금이 제공된다. 취업·의료는 물론 연금 혜택도 주어진다. 대학 특례 입학과 등록금 지원 제도도 시행되고 있다. 남한 사회 초기 적응을 위한 ‘물적 기반’의 제공이라는 점에서 매우 적절한 지원들이었고 그 성과도 컸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북한 이탈 주민의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고 치유하기 위한 ‘정서적 기반’ 조성을 위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한 때다. 이들의 최저 생활 요건 구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의 최적 행복 방정식을 찾는 방향으로 관심을 전환해야 한다. 사람이란 육체의 호흡뿐 아니라 영혼의 호흡으로 사는 존재이기에 당연히 그러하다.

 남영이가 우리 사회에 먹을 것이 없어서 영국 망명을 결심한 것은 아니다. 이들이 기댈 만한 공감과 소통의 토대가 없어서였다. 바로 정서적 기반의 문제다. 이제 우리는 북한 이탈 주민들과 머리가 아닌 가슴의 대화를 연습해야 한다. 이들의 눈높이에서 눈을 마주치는 시선의 연습도 필요하다. 이들이 남쪽 조국에서 경험하는 불안의 요소들과 그 원인에 대한 치밀한 진단도 필요하다. 특히 문화와 가치관, 그리고 일상생활 영역에서 북한 이탈 주민과 남한 주민 사이의 정서적 이격(離隔) 정도에 주목해야 한다. 일단 이들의 정서 상태를 먼저 파악해야 하고, 나아가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다른지를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다음에야 비로소 삶의 정서적 기반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가능하다.

 이제 우리는 통일의 경제적 비용 계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통일의 정서적 비용 계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다. 이를 통일시대 ‘정서 정책’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북한 이탈 주민에게 우리 방식의 문화와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실효가 없을뿐더러 또 다른 남영이를 양산할 우려만 크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경청하고 배려하는 스스로의 훈련이다. 이를 통해 이들과의 정서적 간극을 점진적으로 좁혀가는 방향으로 통일시대 정서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중국 정부가 최근 체포한 탈북자 20여 명을 강제 북송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는 당연히 제3국 송환으로의 행로 선회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통일정책도 통일 이후 정서 정책으로의 방향 선회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 남영이 이야기가 우리 현대 역사의 대표적인 비극 서사로 자리 잡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드리는 제언이다.

마동훈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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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