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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널리 세상을 즐겁게 하라







주철환
jTBC 편성본부장




그가 나를 친구로 삼은 적은 없다. 내가 친구하자고 제안한 적도 없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나는 그를 친구로 대우한다. 동갑내기라서가 아니다. 그의 특별한 죽음은 나의 평범한 삶을 돌아보게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전한 메시지는 두 가지. 오늘을 잡아라(Carpe Diem). 평범하게 살지 마라(Make your life extraordinary). 학연, 지연 두루 무관한 내 친구 스티브 잡스는 그렇게 살다 갔다.



 세상은 모범생이 아니라 모험생이 바꾼다. 옛날부터 그랬다. 그들은 고정관념의 삶을 감옥으로 간주한다. 틀 안의 삶은 그 자체가 지옥이다. 모두가 어둠을 손님처럼 공손히 맞을 때 청년 토머스 에디슨은 그에 맞서 저항했다. 암흑의 시간을 못 견뎌 하며 끈질기게 부수고 망가뜨려 마침내 빛을 만들어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험을 즐긴 덕분에 혜택을 본 건 누굴까. 한때 그를 바보가 아닐까 의심했던 이웃들이다. 에디슨은 빛을 남겼고 우리는 그에게 빚졌다.



 모두가 공중전화 부스 앞에 줄 서서 온순하게 차례를 기다렸다면 이동전화는 탄생하지 않았으리라. 그 줄에서 뛰쳐나온 누군가가 우리에게 여분의 시간을 선사했다. 우체국에 가지 않아도 된다. 걸어다니며 전보를 치고 곧바로 답장을 받는다. 음악을 듣고 길을 찾는다.



 위인은 위대한(가끔은 위험한) 말을 남긴다. 그 말이 그의 삶과 일치할 때 문제아가 아닌 위인으로 인증된다. ‘다르게 생각하라’고 외칠 순 있어도 다르게 생각하는 삶을 시종일관 보여주긴 쉽지 않다. 늘 갈망하고 늘 무모하게 도전하라고 권할 순 있지만 그걸 글자 그대로 ‘늘’ 행하긴 어렵다. 잡스는 그걸 해낸 친구다. 그가 바꾼 것은 세상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살아나는 문장이 있다. “바닥 모를 때의 심연은 바로 네 곁에 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페이터의 산문’에 나오는 말이다. 선생님은 ‘바닥 모를 때의 심연’에 밑줄을 그으라고 하셨다. 그날 이후 죽음이 한결 친근해졌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연못 주변에서 나는 오며 가며 노닌다. 죽음이 가까이 있다고 인정하니 미움보다 사랑이 뚜렷해진다. 불안보다 감사의 시간이 늘어난다.



 잡스는 죽음의 이미지를 확장시켰다. 물보다 더 확고하게 구상화시켰다. “죽음은 생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 그렇다. 죽음은 관에 들어가 눕는 게 아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들어가 앉는 것이다. 팰로앨토에 그의 동상을 세울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가 남긴 사과 향기만으로도 사람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의 가치 앞에 경의를 표할 것이다.



 잡스의 선물꾸러미는 지금도 내 주머니 속에서 신호를 보낸다. 밥 먹자고도 하고, 술 마시자고도 한다. 그에게 받은 게 있으니 나도 뭔가 주어야겠지. 이제부터 괴짜를 인정해야겠다.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소년에게 여행 가라고 용돈을 주어야겠다. 표정이 우울한 젊은이들에게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면 죽는 날 그대는 최고가 된다’고 조언해야겠다. 널리 세상을 즐겁게 하자고 부추겨야겠다.



 친구의 묘지 앞에는 오늘도 꽃이 쌓일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나도 꽃 한 송이 얹어주고 싶다. 천국의 입학사정관 앞에서 잡스는 어떤 인터뷰를 진행했을까. 좀 다르게 질문해 보라고 사정관을 곤란하게 만들진 않았을까. 에디슨을 만나서는 어떻게 인사했을까. 며칠 사이 인생을 마감한 친구들을 대표해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진 않을까. 천국이 부쩍 소란스러워졌을 성싶다.



주철환 jTBC 편성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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