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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바람’이 불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




정치란 무엇인가. 한국에 있어 정치는 선거고 선거란 이기기 위해 사생결단하는 어떤 것이다. 이쯤 되면 정치는 운동경기와 다를 바 없다. 승자만 있을 뿐 패자는 할 말이 없는 게 운동경기다. 이런 승부욕은 선거 때면 실감난다. 화려한 단일화 쇼도, 기발한 출판기념회도 이기기 위함이다.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일까. 역사를 보면 그런 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정치란 이성이 살아 숨쉬는 무대였다. 이성은 곧 말로 나타나는 것이기에 담대한 연설이 주효했다. 데모스테네스와 페리클레스는 정치가이자 위대한 연설가였다. 투표라면 독재의 가능성을 가진 사람을 10년간 해외로 추방하는, 이른바 ‘도편투표’만 있었을 뿐이다. 로마는 어땠나. 로마의 정치에서는 조국애가 핵심이었다. 초기 집정관이었던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자신의 아들들이 갓 태어난 공화정을 폐지하고 왕정복고의 음모를 꾀했다고 해 유죄판결을 내리고 자신이 직접 사형감독관이 되었다. 또 카르타고의 포로가 되었으면서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로마로 보내진 레굴루스는 막상 원로원에서 평화협정은 안 된다고 연설하고 나서 카르타고로 돌아가 죽음을 맞이했다. 로마인들의 그런 행동은 애국심 말고 설명할 길이 없다.



 하지만 한국정치에는 그리스적인 이성도, 로마적인 조국애도 없다. 승리에만 허기져 있을 뿐이다. 그런 선거 후보들이 간절히 빌고 있는 것이 있다면 바람이다. 바람이 불면 이긴다며 모두가 ‘바람의 아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동안 수많은 바람이 불었다. ‘이인제 바람’ ‘노무현 바람’이 그렇지 않은가.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누구의 바람이 불까. ‘박근혜 바람’일까, 아니면 ‘안철수 바람’일까. 옛날 조조와의 싸움에서 동남풍이 불기를 바랐던 제갈량은 제단을 쌓고 빌었는데, 우리 정치인들은 무엇으로 바람이 불기를 기원하는가. 트위터와 같은 SNS일까. 아니면 유명인사들의 인증샷일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바람을 신의 행위로 생각했다. 신만이 바람을 불게 하고 또 막을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헬레네와 더불어 야반도주를 하자 아르고스의 왕 아가멤논은 그리스 원정단의 총사령관이 되어 1000여 척의 배를 거느리고 출정에 나섰다. 이른바 트로이 전쟁이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출항에 필요한 바람이 불지 않은 것이다. 다급해진 아가멤논은 신탁을 구한다. 신탁의 내용은 뜻밖에도 아가멤논이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모욕하는 불경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사슴 사냥 후 기분이 좋아 “아르테미스 여신도 나만큼 멋지게 사슴을 잡지는 못했을 거야”라고 뽐낸 것이 동티가 난 것이다. 결국 딸을 제물로 바치고서야 바람이 불어 출항할 수 있었다.



 물론 21세기 우리 한국인들도 나름대로 신의 이야기를 하지만 ‘사냥의 신’이나 ‘태양의 신’을 섬기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잘하는 ‘공신’, 대우가 좋은 ‘신의 직장’, 경영을 잘하는 ‘경영의 신’이 고작이다. 여기에 비하면 그리스의 신들은 보다 엄숙하고 초월적인 존재였다. 그리스의 신들이 인간사에 개입한 것은 인간의 오만함을 벌주기 위함이었다. 아라크네는 물레질을 아테나 여신보다도 더 잘한다고 떠벌리고 다녔기에 거미가 되는 벌을 받았고, 마르시아스는 사람들이 자신의 피리 솜씨를 칭찬하자 교만해져서 아폴로 신에게 내기를 하자고 했다가 살가죽이 벗겨졌다.



 선거에 나선 서울시장 후보들이여! 바람을 원한다면 신 앞에 겸손하고 또 겸손하라! 아테네에 올리브 나무의 풍요를 가져다준 수호신 아테나가 있었다면, 대한민국에 자유와 번영을 가져다준 수호신이 왜 없겠는가. 그럼에도 조국의 안전을 위해 산화한 천안함 용사의 애국심에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진 못할지언정 정부가 북한을 자극해 억울하게 수장되었다고 말한다면 대한민국의 수호신을 모욕하는 처사다. 또 정부가 신뢰를 잃어 천안함의 진실을 믿기 어렵다고 말한다면 안보의 진실 앞에 겸손하지 못한 태도다. 정부의 지지율이 낮으면 천안함은 물론 6·25의 진실도, 연평해전의 진실도 믿지 않을 참인가.



 아폴로 신보다 피리를 더 잘 불고 아테나 신보다 베를 더 잘 짜며, 아르테미스보다 더 사냥을 잘한다고 자랑한 자들은 모두 벌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피와 땀으로 자유를 지켜낸 대한민국의 거인들 어깨 위에 놓여 있는 ‘난쟁이’라고 생각해야지 보잘것없는 대한민국의 난쟁이들 어깨 위에 놓여 있는 ‘거인’이라고 우쭐대서는 안 된다. 자신을 지켜준 대한민국의 수호신에 감사하기는커녕 “나는 피리를 잘 부니 사람들을 한곳으로 움직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한, 원하는 바람은 불지 않을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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