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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목요문화산책] 고도는 안 온다 … 지금, 네 삶을 살라





문소영의 명화로 읽는 고전
금융위기 터널의 끝은 어디에 …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그림 ① 달을 응시하는 두 남자(1819년께),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 작, 캔버스에 유채, 35x44㎝, 신거장미술관, 드레스덴.





최근 서구의 여러 매체는 유럽발 금융위기의 포괄적 해법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게 마치 “고도(Godot)를 기다리는 것” 같다는 표현을 썼다. 간절히 기다려도 좀처럼 오지 않는 것의 대명사 고도. 마침, 한국 초연 42주년을 맞는 극단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오늘(13일)부터 상연된다. 내용은 이렇다. 어느 저녁, 앙상한 나무 한 그루만 있는 어느 황량한 곳에서, 나이든 두 남자가 고도를 기다리지만 그는 끝내 오지 않고 한 소년이 와서 그가 내일은 꼭 온다고 전한다. 다음날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그들은 또 고도를 기다리고, 또 소년이 와서 고도는 내일 온다고 전한다. 이것으로 끝. 이 썰렁한 연극이 1953년 파리에서 초연된 이래 전 세계를 사로잡고 한국에서도 이렇게 오래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일랜드 출신 프랑스 작가 사뮈엘 베케트(Samuel B. Beckett·1906~ 1989·사진)가 쓴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1952)에는 작가의 체험이 깔려 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프랑스에서 지하 저항단체의 일원으로 일하다가 단체가 발각되는 바람에 미점령 지역인 외딴 시골로 피신했다. 거기에서 전쟁이 끝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다른 피란민들과 끝없이 이 얘기 저 얘기 하는 것으로 시간을 때웠다고 한다.



 에스트라공(애칭 고고)과 블라디미르(애칭 디디)가 고도라는 미지의 인물을 기다리며 지루함과 허무감을 견디기 위해 온갖 잡담과 슬랩스틱을 하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그렇다고 고도가 2차대전의 종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베케트는 그런 구체적 요소를 지워버리고, 시공간적 배경과 등장인물의 신분 등 모든 것을 불분명하게 해서 인간의 보편적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인간의 삶 자체가 자잘한 기다림의 연속인 데다 더 크게는 삶의 변화를 가져올 무엇을 막연하게 기대하는 상태니까.









사진 ② 산울림의 2008년 ‘고도를 기다리며’(임영웅 연출)의 한 장면.











그림 ③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1817~1818), 프리드리히 작, 캔버스에 유채, 94.8x74.8㎝, 쿤스트할레 함부르크.



 재미있는 것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필수 요소인 두 주인공과 나무 한 그루(사진② 참고), 그리고 1막과 2막 끝부분에 떠오르는 달이 19세기 독일 낭만주의(Romanticism) 풍경화의 대가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달을 응시하는 두 남자’(그림①)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무덤덤한 얼굴로 농담하는 것 같은 이 연극의 전체적 분위기와 프리드리히 그림의 숭엄한 분위기는 영 딴판인데 말이다. 베케트는 1936년 독일을 여행하면서 프리드리히의 그림들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 그림의 두 남자가 입은 옷은 당대의 일반적 복식이 아니라 보수적 정책에 반대하던 학생운동가들이 즐겨 입어서 정부 당국에서 금지까지 한 복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그림에서 가운데 무너져가는 떡갈나무 고목은 구시대적 가치관을 상징하며 왼쪽의 푸른 소나무는 독일의 새 세대를 상징한다는 정치적 해석이 있다. 반면 이 그림이 프리드리히의 다른 대표작(그림③)처럼 신성하고 신비로운 자연 속에서 자기 존재의 이유와 궁극의 섭리를 고독하게 찾아 헤매는 구도자들을 나타낸다는 해석도 있다.



 베케트에게는 프리드히리의 ‘달을 응시하는 두 남자’가 그 반항적 복장에도 불구하고 “작고 힘없는” 존재들로 보였다. 그래서 이 두 남자는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무력하고 우스꽝스러우면서 서글픈 고고와 디디가 되었다. 또 그림 가운데 고목은 더 초라한 나무가 되어 무대 가운데 서게 되었다. 프리드리히의 숭고함을 비틀어 패러디한 셈이지만 그 존재에 대한 의문과 고독의 정서는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고고와 디디는 끝없이 말을 주고받지만 소통과 교감이 아주 잘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독하다. 고고는 극 중에서 몇 번이고 “우리가 헤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말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그들은 또 다음과 같은 대사를 여러 번 반복한다. “떠나자고.” “그럴 순 없어.” “왜?” “고도를 기다리잖아.” “아 참, 그렇지.” 즉, 이들에게는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가, 나아가 존재의 이유가 고도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럼 정녕 고도는 누구란 말인가? 어떤 평론가들은 고도(Godot)라는 말이 영어의 ‘God’과 프랑스어의 같은 말 ‘Dieu’의 합성이며, 고도는 신(神), 간절히 기다려도 오지 않는 구세주라고 말한다.



 베케트 자신은 이 연극이 특정 종교와 별 상관없다고 했다. 그러면 대체 고도가 누구냐는 질문에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면 작품에 썼지”라고 대꾸했다.



 부조리극(Theatre of the Absurd)이란 말을 만들어 베케트의 연극을 설명한 영국의 연출가이자 평론가 마틴 J 에슬린(1918~2002)은 이런 말을 했다. 1960년대 폴란드 관객은 고도가 옛 소련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생각했고, 알제리 농부들은 고도가 공염불이 된 토지개혁이라고 생각했다고. 이처럼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 있는 인간이건 그들이 처한 현실에 대입이 가능하다는 점이 ‘고도를 기다리며’의 매력이다. 70~80년대 한국인에게는 고도가 누구였을까. 다수의 사람에게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내일, 또 다수의 사람에게 민주화를 의미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의 우리에게 고도는 누구인가. 예전처럼 공통적으로 갈구하는 것이 없는 가치 혼재의 시대, 우리는 막연히 무언가를 기대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가 많다. 사실 이것이 ‘고도를 기다리며’의 상황과 더 잘 맞는다. 고고와 디디는 고도를 간절히 기다리지만 또 다른 인물 포조가 “고도가 누구요?” 하고 묻자 디디는 “그냥 아는 사람이죠”라고 하고, 고고는 “아니지. 거의 모르는 사람이죠”라고 대답한다.



 이것이 웃기면서도 눈물 나는 일이다. 그래서 베케트는 이 극의 부제를 ‘비희극(A Tragic-comedy)’라고 했다. 인간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면서 세상에 내던져진 자체가 비희극인 것이다. 베케트는 그런 자신의 연극을 그저 재미있게 즐기라고 말했다. 에슬린은 이것이 베케트의 삶에 대한 태도, ‘유쾌한 허무주의(cheerful nihilism)’라고 보았다. 글쎄, 그래도 ‘고도를 기다리며’를 유쾌하게만 보기는 쉽지 않다. 고고와 디디가 나무 아래 우두커니 선 채 2막이 끝날 때,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볼 때 느끼는 고독과 우수 속의 묘한 기쁨보다는 디디가 극 중에서 말한 대로 “내가 불행한지 아닌지도 잘 알 수 없는” 복잡한 느낌이 들게 되는 것이다.



문소영 기자



1969년 노벨문학상 … “작품 전념” 시상식 불참



『고도 … 』의 작가 사뮈엘 베케트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가 1953년 파리의 소극장 공연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고도를 기다리며’도 매우 미니멀하고 추상화된 작품이지만 후기의 작품들은 더욱 간결과 여백을 지향한다. ‘고도…’ 다음으로 유명한 그의 희곡 ‘승부의 끝(Fin de partie)’(1957)은 단막극이고 말기 작품 중 하나인 1인극 ‘자장가(Rockaby)’(1980)는 상연시간이 15분에 불과하다. 베케트는 작품에 전념하느라 대중매체 출연을 꺼렸고 심지어 196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도 상은 받아들였지만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한편 지난 42년간 ‘고도를 기다리며’ 연출을 해온 임영웅 산울림 대표는 국내 초연을 준비할 때 베케트의 노벨상 수상 덕분에 표가 매진되는 행운이 따랐다고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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