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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삶과 경영 ⑪ “난 내 방식대로 세상을 본다”





사업 막혀 “분신하겠다”는 내게 … 공무원 “여기선 하지 말게”













손정의 회장이 본지 연재를 기념해 써보내 온 좌우명 ‘뜻을 높게(志高く·고코로자시타카쿠)!’



미지의 분야에 신규 투자할 때 작게 시작할까, 아니면 크게 밀어붙여야 할까. 열 중 아홉은 ‘작게 간다’가 답일 것이다. 하지만 한두 번쯤은 큰 승부를 걸어야 한다. 소프트뱅크로 보자면 2001년 초고속인터넷 사업을 시작할 때가 그랬다. 일본 최초로 전국 규모의, 기존보다 5~10배 빠른 서비스를 선뵈는 일이다. 일본 최대 IT기업 NTT의 텃세를 이겨야 한다. 정부 정책도, 네트워크도 미비하다. 경험은 없고 시장도 아직 활성화돼 있지 않다. 누군가는 “그럴수록 반찬 간 보듯 조심스레 가야 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른다. 내 생각은 달랐다. 진입장벽이 높다는 건 그만큼 경쟁자가 적다는 뜻이다. 당장의 시장은 작지만 곧 미래 산업의 핵심 인프라가 될 터이다. 압도적 공세로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 나는 폭풍처럼 몰아쳐 해일처럼 집어삼키기로 했다. 손정의가 아니면, 소프트뱅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리라 마음먹었다.



주가 폭락에도 소프트뱅크 주주들은 ‘일본 최초 초고속인터넷 사업’이란 도전에 박수를 쳐주었다. 2000년 여름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아는 것도, 가진 것도 없었다. 사장실을 뛰쳐나가 사흘 만에 100여 명의 인재를 끌어모았다. 통신 분야 엔지니어라면 무조건 데려다 놨다. 회사 조례 중 “거기 서 있으니 자네가 이 일을 하게” 하며 차출하기도 했다. 초고속인터넷 전문 통신업체 ‘야후BB’의 시작이었다(BB는 초고속인터넷을 뜻하는 ‘브로드밴드’의 약자다).



# 2000년 포브스 선정 ‘올해의 비즈니스맨’



 이때 한국의 도움이 컸다. 나는 “디지털 사업에서 한국이 나의 스승”이란 말을 종종 한다. 당시 한국은 이미 ADSL 방식의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전면 도입한 상황이었다. 네트워크 설계부터 장비 구매, 서비스 운용까지 한국 기업과 전문가들로부터 많이 배웠다.



새 사업 준비로 바쁘던 2000년 말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나를 ‘올해의 비즈니스맨’으로 선정했다. 이유는 이랬다. ‘일본의 경기 회복 지연 속에서도 회사를 의욕적으로 키웠다. 파산한 일본채권은행(현 아조라은행)을 인수해 벤처·중소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융자를 해줬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신규 사업에 힘을 쏟았다. 네트워크 비즈니스를 하려면 NTT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법에 따라 NTT는 신규 업체에 기지국을 임대해주고 네트워크 구축도 대행해줘야 했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은 힘들었고 이런저런 기술적 난관 또한 적지 않았다.



 2001년 6월, 드디어 도쿄 시내에서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나는 처음부터 전국 서비스를 하고 싶었다. 임원들은 격렬히 반대했다. NTT와의 협상이 어려운 데다 기술적 검증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서비스 출시 행사 전날, 나는 야후BB의 모회사이자 서비스 신청 접수를 대행할 야후재팬으로 달려갔다. ADSL 접수 홈페이지 담당자를 직접 찾아 도쿄에서만 서비스 신청을 하게 돼 있는 공지 내용을 전국에서 가능한 것으로 고쳐버렸다. 큰 승부를 위해, ‘규모의 경제’ 실현을 위해 대형 사고를 쳐버린 것이다.



 다음 날인 2001년 6월 19일, 출시 행사가 열리는 도쿄 오쿠라호텔 연회장은 1000여 명의 기자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로 붐볐다. 나는 분홍색 셔츠와 흰 바지 차림으로 당당히 무대에 올랐다. 나는 선언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NTT의 IDSN보다 5배 빠른 초고속인터넷을 NTT 요금의 8분의 1인 월 990엔에 서비스하겠습니다. 초기 설치비는 무료, 프로모션 기간 중엔 가정용 모뎀을 무료로 드리겠습니다!”



 장내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엄청난 선언을 했건만 박수 치는 사람 하나 없었다. 나는 아랑곳 않고 외쳤다.



 “다들 저보고 미쳤다고 합니다.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소프트뱅크는 곧 파산할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전 제 방식대로 세상을 봅니다. 이 사업은 성공합니다!”



# 모건스탠리 “아무리 노력해도 적자” 전망









2007년 5월 한 일본 남성이 소프트뱅크 통신 서비스에 대한 광고 이미지로 감싸여 있는 기둥에 기대 휴대전화 화면을 보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2001년 출시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조기 안착시키면서 단번에 일본의 주요 통신업체로 부상했다. NTT와 경쟁하며 초고속인터넷 2위 업체가 됐고, 2004년 6월에는 일본 국토의 80%를 커버하는 유선전화 네트워크사 일본텔레콤을 인수했다. 2006년에는 보다폰재팬 인수로 이동통신 사업에까지 진출했다. [블룸버그]



 매스컴의 반응은 과연 비판 일색이었다. 모건스탠리는 “소프트뱅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최소 1억2000만 달러의 영업손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소비자 반응은 달랐다. 도쿄는 물론 전국 여기저기서 서비스 신청이 빗발쳤다. 두 달여 만에 신청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 문제는 네트워크였다. 8월 시작하기로 한 정식 서비스를 9월로 미뤘으나 답을 찾기 어려웠다. 신청자들의 항의가 쏟아져 정상 업무를 보기 힘들 정도였다. 가장 큰 이유는 NTT의 지극히 비협조적인 자세였다. 나는 총무성(한국의 행정안전부에 해당)으로 달려갔다. 담당 과장을 찾아 책상을 내리치며 피 토하듯 소리쳤다.



 “여기서 내 몸에 석유를 끼얹고 내 손으로 불을 지르겠소! 총무성 당신들이 NTT에 똑바로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독점적 네트워크를 무기로 이런 불법 행위를 일삼는 걸 묵인한다면 100만 고객을 볼 면목이 없는 나는 죽을 수밖에 없지 않겠소!”



 총무성 관료는 화들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주게. 제발 여기서만은 일을 벌이지 말아주게!”



 나는 더더욱 악에 받쳤다. 그럼 여기 말고 다른 데 가서 죽으면 된단 말인가?



 “무슨 소리요? 지금 그게 문제요? 당신들이 책상이나 차지하고 앉아 책임을 회피할 때 우리는 피가 마른단 말이오!”



 한바탕 난리법석을 피우고서야 ‘항복’을 받을 수 있었다. 담당 과장은 지친 목소리로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물었다. 나는 “댁들이 대단한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인허가권이 있지 않나. NTT 사장에게 전화해 공정하게, 법대로 하라고 한마디만 해달라”고 요청했다. 과장은 그대로 했고, 덕분에 간신히 파국을 면할 수 있었다.



정리=이나리 기자



◆손정의의 ‘늑대론’=손정의 회장은 벅찬 목표에 도전하는 임직원들에게종종 ‘늑대론’을 강조한다. “호랑이나 버펄로가 왜 늑대를 두려워하는지 아는가? 늑대는 한 마리로 안 되면 떼로 덤비고, 그래도 안 되면 그룹으로 에워싸 상대가 지칠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 여러분이 경영하는 회사는 늑대 한 마리가 될 수도, 늑대 떼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덤비다 아예 죽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전체가 똘똘 뭉쳐 열정과 비전으로 몰아붙이면 언젠가 반드시 승리한다. 가족, 친구, 동료에게 존경받고 싶은가? 그렇다면 늑대의 정신을 본받아 열정을 다해 일하라.



◆ADSL과 ISDN=2000년 당시 일본 최대 통신사인 NTT는 인터넷 전송방식으로 ISDN을 채택하고 있었다. 전화 모뎀보다 속도가 4배가량 빨랐다. 소프트뱅크가 이에 맞서 내놓은 일본 최초의 초고속인터넷 서비스가 바로 ADSL이다. 진화한 ADSL은 전화 모뎀보다 속도가 100배 이상 빠르다. 손정의 회장은 “한국이 1990년대 말 ADSL를 적극 도입해 인터넷 강국으로 발돋움한 것에 큰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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